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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Sep 27. 2020

드라이브가 좋은 3가지 이유

생각 / 시간 / 음악 그리고 길



오늘도 6시간을 운전했다. 아니 드라이브했다. 

네 식구를 차에 태우고 고속도로와 국도를 달렸다. 


이른 시간에 출발해서였는지 도로는 한산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각자 자신의 일요일을 그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즐기고 있었다. 


나는 뻥뚤린 길을 달리며 나만의 방식으로 드라이브를 즐겼다. 


오늘 목적지는 순천이었다. 무언가 특별한 일이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곳에서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 해 질 녘이면 다시 세 시간 정도를 달려 집으로 온다. 드라이브하는 시간이 좋고, 잠시잠시 일어나는 대화가 좋고, 불쑥 찾아드는 생각에 스며드는 게 좋다.


그래서 나는 드라이브를 즐긴다. 


속도감을 즐기지는 않는다. 


내가 좋은 차를 원하게 되는 이유는 확실한 외부와의 차단과 안락함 그리고 차 안에서 울려 퍼지는 좋은 음악소리를 원하기 때문이다. 


차를 운전하게 된 것은 20년이 넘었다. 이제는 운전이 전혀 부담 없이 내가 원하는 곳에 나를 데려갈 수 있는 좋은 기술의 영역이 되었다. 핸들을 잡은 손에 힘도 적당히 빠져있고 여유 있게 차선과 간격을 조절하며 물 흐르듯 운전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드라이브가 좋다.


처음 내 차가 생기고 혼자서 먼 길을 차를 가지고 나선 것은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이었다. 휴일이었는데 그냥 바람이 그리웠고 잠시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목적지를 정한 것도 아니었는데 길을 달리다 보니 이정표에 안면도라는 글씨가 보였고 나는 그곳으로 핸들을 돌렸다.


운전석 옆자리에는 카메라 한대가 있었다. 나는 바닷가 사진이나 몇 장 찍자는 마음으로 달려갔는데 의외로 그곳에서 혼자 사진기를 메고 다닌 덕분에 여러 명의 낯선 사진사들을 만났다. 여러 명이 함께 오면 말 붙이기 어렵지만 혼자 있는 내게는 같은 취미가 있는 분들이 쉽게 말을 붙여왔다.

사진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혼자서 두 시간 반을 달려온 것에 신기하면서도 이해하는 그들의 눈빛이 좋았다.

사진도 좋았지만 오가며 차 속에서 했던 생각들과 특히 내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이 좋았다. 아마도 제이슨 므라즈나 마룬파이브 음악을 들었던 것 같다. 그 시점 이후로 가끔 혼자 차를 몰고 드라이브를 나서곤 했다.


운전이 내 몸에 맞고,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끼게 된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습관적으로 드라이브를 나섰다. 차 열쇠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차량의 시동을 거는 그 순간 벌써 나는 세상의 모습과는 차폐된 나만의 공간에서 시원한 바람과 향기로운 음악과 흥겨운 생각으로 들뜬다.


나는 점점 드라이브에 빠져간다.




1. 잡념을 잊게 만든다

처음 운전을 배웠을 때 내 차는 스틱 차량이었다. 클러치를 밟고 1~5단 기어를 열심히 넣어가면서 운전했다. 운전이 서툴렀을 때는 다음 기어를 어떻게 넣을지 미리 생각하느라 바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생각 너머의 본능이 알아서 손을 움직여 기어를 바꾸고 왼발은 클러치를 누르고 있었다. 그때부터 운전은 더 이상 노동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차량에 집중하는 것이 좋았다. 전방을 주시하며 내가 누르는 엑셀레이터만큼 차가 속도를 내는 게 좋았다. 속도에 맞춰 내 기분도 업되었다. 터널을 들어가는 순간에는 내 몸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게 좋았다. 그렇게 나는 점점 드라이브를 즐기게 되었다. 


운전을 하면 잡념을 잊을 수 있었다. 집에서 뒹굴거릴 때는 멍하니 앉아있어도 시시각각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결국 드러누워 이것저것 뒤적거리며 해보는 둥 마는 둥 하는 나였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으면 집중이 되었다. 나는 길을 달리고 길에 그려져 있는 선을 따라 나는 점점 몰입했다. 점선의 개수를 세어보기도 하고 목적지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운전에 조금 더 빠져들면 점점 모든 걸 잊고 아무런 생각 없이 나는 그냥 길을 달리고 있었다. 당시는 내비게이션도 없었기 때문에 내 운전에 개입하는 그 무엇도 없었다. 나는 철저하게 나와 길에 집중할 수 있는 그 순간이 좋았다. 그렇게 잠시 드라이브를 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졌다. 그전에 가졌던 고민들은 사라지고 다시 고민을 고민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기분전환 후 산적했던 문제들을 살펴보면 가끔씩 생각지도 못했던 해답을 찾아내곤 했다. 




2. 시간에 쫓기지 않는 느낌은 여유를 깨닫게 한다

운전을 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내를 보면 아내는 아직도 차를 가지고 길을 나서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 같다. 경력은 오래되었지만 많은 시간을 운전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운전은 그녀에게는 일이다. 

난 운전이 더 이상 일이 아닌 습관이 되었다. (물론 내가 운전을 잘한다는 건 아니다.) 그렇게 되면서부터 출퇴근이나 약속을 위한 이동이 아닌 내 기분 전환을 위한 운전은 나에게 "여유로움"을 선사한다. 일부러 책을 읽으려고 차를 몰고 먼 길을 나서고, 일부러 음악을 즐기려고 차를 몰고 먼 길을 나선다. 장소가 바뀌면 생각이 바뀌듯 생각에 여유가 들어서면 눈에 들어오는 사물이 달라 보인다. 


오늘도 그랬다. 여유롭게 고속도로를 달리며 창 밖으로 보는 하늘은 여느 가을 하늘보다 맑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서산 너머 붉게 물든 노을은 정말 장관이었다. 길이 막혀도 상관없다. 길이 뚫려있어 더 좋기만 하다. 그냥 드라이브 자체가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여유다. 




3. 음악을 들어도, 음악이 없어도 길을 따라 가는 것은 즐겁다.

그렇다. 드라이브는 즐겁다. 특히 음악이 있어서 더 즐겁다. 내가 좋은 스피커가 있는 차량을 원하는 이유는 운전하는 내 시간적 여유로움에 첨가할 수 있는 절묘한 사치품이기 때문이다. "심장을 울리는 멋진 중저음" 이런 게 아니다. 헤드폰으로 들으며 감동받던 그 악기 소리와 보컬의 성량을 나만의 작은 공간에서 까랑까랑한 사운드로 만들어 요리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빠 차에서 듣던 훌리오의 미려한 목소리를 좀 더 그때의 그 느낌과 가깝게 잡아보고 싶고, 대학시절 콘서트에서 보았던 폭발력 있는 김윤아의 목소리를 비슷하게 나만의 공간에 재현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드라이브 중 셔플로 듣는 음악에서 어느 순간 생각지도 못한 곡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4월의 어느 멋진 날 소개팅 갈 때 갖게 되었던 두근거림과 흡사하다. 

물론 음악이 없어 좋다. 길을 따라 나는 바람을 가로지르며 앞으로 질주한다. 저 멀리 한 꼭짓점을 향해 내달리는 것은 목적이 없어도 목적이 있는 것처럼 맹렬하다. 난 그냥 그게 좋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드라이브 #운전 #여유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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