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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Sep 26. 2020

불멍(불을 보며 멍 때리기)에 관하여

| 왜 불을 보면 시간을 잊게 될까?



어제 회사의 좋은 후배 덕분에 퇴근 후 집 근처의 캠핑장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녀석은 캠핑을 너무 좋아해 주말이면 혼자서라도 (가족을 놔두고서) 캠핑장이나 노지에서 간단히 장비를 펼친 후 1박을 한다. 얼마 전 녀석이 DIY로 마련한 화로대 자랑에 (이중 연소 구조로 연기가 안 난다고 어찌나 자랑을 하던지 ^^) 한번 노지에서 화로를 켜고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이번 초대는 두 번째로 이번에도 역시 그 화로대가 등장했고, 멋진 요리들로 배를 채운 후 해가 산 너머로 사라지자 나는 불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사진에서 보듯 오렌지색의 불씨는 멈출 줄 모르고 모양을 바꿔가며 내 눈을 이끌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나는 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불은 변화였다. 화로대 안의 작은 공간 속 불씨지만 불은 단 한 번도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계속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내 시선은 이쪽 불 저쪽 불을 좇으며 불의 한가운데로 점점 모여지고 있었다.


마음이 차분해졌다가 다시 폭풍 같은 변화가 일었다가를 반복하고, 생각은 조금씩 아무런 생각이 없는 상태인 “무”의 상태로 향해갔다.


세 시간 정도를 쳐다본 것 같다.


눈이 제법 아팠는데 멍~하며 보낸 시간 덕분에  머리가 굉장히 맑아졌다. 그리고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흘러가버렸는지를 생각했다.


불은 근본적으로 계속 변한다. 변화는 시간을 통해 드러나고 나는 내 시간을 태우면서 불을 관찰했다. 마치 집중해서 무언가를 하고 나면 시간을 훌쩍 흘러가 버린 것 같은 느낌을 불을 보면서 느꼈다. 맞다. 나는 불에 굉장히 몰입했던 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flow를 느꼈다.


불을 본다는 건 내 머릿속 생각을 불에 맞추는 것이자 불길에 나를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잊게 된 것이다.


이 작은 화로 속 세상도 끝없는 변화의 공간이듯, 지금 내 움직임도 모든 변화의 중심이다.


그래서 불을 통해 나를 본 것이다.


나를 보면서 나를 태워 나를 잊는다. 그렇게 나는 나에게 집중한다. 그래서 나는 불에 빠지는 것이다.


좋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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