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쟁을 끊었더니 만족이 찾아왔다
Reputation : 평판, 세평, 명성, 영예
참 고생스러운 삶이다. 아니 고통스러운 삶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매일 안절부절못하며 욕망과 욕구에 좌절과 시련의 파도를 넘는다. 끝없이 펼쳐진 산맥이고, 한없이 깊은 바닷속이다. 그렇게 내 인생 속에서 도전과 경쟁은 어쩌면 내 삶과 동일시하면서 찾아오고 또 찾아간다. 탁! 하고 팽팽했던 낚싯줄이 끊어지듯 지난한 경쟁을 끊어내고 싶지만 배우고 익힌 게 이것뿐이라서 차마 끊지를 못한다.
최근 바쁘던 회사일이 끝났다. 해방감이라고 할까? 시간에 과몰입해서 일을 할 때는 이것만 끝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몇 주간 쉬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었다. 그런데 폭풍이 지난뒤 언제 그랬냐는 듯 바쁨이 사라진 일상이 다가오자 조금씩 불안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이것저것 사이트를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그동안 못 봤던 뉴스도 보고, 정리해야 했던 개인적인 노트도 다시 정리를 시작했다. 최근 컴퓨터 성능이 나빠진 것 같아서 이것도 손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씩 불안하다. 일이 없으면 행복해야 하는데 불안하다. 뭘까?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는 동료들은 분주하다. 업의 특성상 그들의 바쁨과 내 바쁨은 다르다. 그런데 내가 바쁘지 않음이 괜히 눈치가 보인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아무도 내게 뭐라는 사람은 없다. 다들 자기 일에 바쁘다. 근데 불안하다. 후배들과 커피 한잔하면서 이 기분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해답도 함께 말했다. "회사에서 바쁠 일은 얼마든 있으니, 눈치 보지 말고 쉴 수 있을 때 쉬려고!" 그런데, 말끝이 자꾸만 자꾸만 흐려진다.
생각이 많아졌다. 생각이 많아져야 한다고 하던데, 역시 몰입할 대상이 사라지니 잡념이 많아졌다. 올 들어 내가 했던 일과 개인적인 성과들을 하나 둘 정리해본다. 그리고 매일 들고 다니던 다이어리에 몇 가지 질문을 썼다.
3개월 뒤, 6개월 뒤 나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 내 머리를 스치고 있는 이런 생각들 중 얼마나 챙겨볼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분주하길 바라는 걸까?
나는 누구와 경쟁하고 있는 걸까?
예상치 못하는 것을 경계해온 인생이라고 생각했지만, 항상 내 삶은 예기치 못한 곳으로 흘러왔다. 취업, 결혼, 육아... 모두 내가 주도한 행동이었고 이끌어온 삶이었다. 그런데 언제나 기대와는 많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왔고 그 자리에 지금 내가 서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예상한 것처럼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살아내는 삶이다. 이런 삶 가운데는 바로 사람들의 시선이 있었다. "나는 이래야 한다." "나는 이럴 것이다."라며 나 스스로 타인의 시선을 재단해버린 채 그들의 예상에 맞춰낸 삶을 살았다. 내가 주도한 것 같지만, 내가 주도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 속엔 내가 많이 부족하다.
어제 연봉 계약을 했다. 매년 3월 중순이면 해오던 계약인데 올해는 임금협상 때문에 1개월 늦었다. 협상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협상은 없다. 여기서도 여전히 나는 주체가 아니다. 대리인이 협상하고 나는 그 결과로 찍힌 숫자를 건네받을 뿐이다. 18년 차 직장인이면 이 정도 받는 게 맞는 것인가? 이직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연봉의 적절성을 모르겠다. 단지 내가 네 식구를 부양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정도다. 물론 씀씀이가 커서일 거다.
연차를 냈다. 머리가 복잡해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쉬고 있는 지금 나는 이렇게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그리고 또 한 번 결심한다.
"눈치 볼 것 없다. 내 인생 내가 사는 거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보자."
그래서 나는 경쟁을 끊어내기로 했다. 이제 경쟁하지 않아도 혼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경쟁하느라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경쟁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꼭 순위를 매기지 않아도 충분히 좋을 거라는 기대를 해본다. 잘한다는 것, 잘하고 싶다는 것을 타인의 눈이 아닌 내 눈으로 바라보고 싶다. 내가 좋아야 진짜 좋은 것 아닌가?
그래서 경쟁을 잘라내기로 했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경쟁 #몰입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