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Y 9 | 내가 코딩을 놓지 못하는 이유
기억을 되짚어보면 처음으로 컴퓨터를 배웠던 건 초등학교 5학년때이다.(1987년)
당시 컴퓨터는 굉장히 비싼 물건이었고, 가끔 친구집에 가면 한번씩 구경할 수 있었다. 패미콤이나 재믹스 같이 오락실에서 동전을 넣고 하던 오락을 롬팩을 꽂아서 할 수 있는 기술이 한창 유행하던 시절에 컴퓨터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물건 같은 것이었다.
엄마가 무슨 이유로 나를 컴퓨터 학원에 보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도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이나 가야했던 곳인데 나는 그곳을 참 열심히 다녔다. 컴퓨터에 대한 개념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키보드로 자판을 두드리면 TV와 비슷한 화면에 녹색 커서가 깜빡거리면서 숫자와 영어가 새겨지는 것이 신기했었다. 무척이나 그 재미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학원의 컴퓨터는 아이큐1000 이라는 제품이었다. 토요일이면 자율학습이라 학원에 오고 싶은 학생들은 와서 몇시간이고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었는데, 난 열심히도 학원을 찾아가 몇시간씩 오락을 했고 배웠던 반복문으로 선을 이용해 그림을 그려댔다. 대우통신에서 출시한 아이큐1000에서는 당시 재믹스 롬팩을 꽂는 카트리지가 있었고 컴퓨터를 활용해 재믹스 오락을 할 수 있었다. 집에 재믹스가 있었기 때문에 갖고 있던 롬팩 몇개를 가지고 학원에 가면 친구들에게 인기만점이었다. 아무튼 그때 선생님이 가르쳐줬던 프로그램 언어가 BASIC 이었다. 그걸 알게된 것은 한참 뒤였지만. 그렇게 나는 2년 넘게 학원을 옮겨가며 컴퓨터를 배웠는데, 당시 학원 선생님들이 나에게 반복문(FOR ~ NEXT)을 참 잘쓴다고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졸업이후 다시 컴퓨터를 만지게 된 것은 고 2때다.
두살터울 누나가 대학에 합격한 뒤 집에 컴퓨터가 생겼다. 물론 중학교 때 잘사는 친구집에가서 열심히 컴퓨터 오락을 구경했던 기억은 있다. 룸(LOOM), 페르시아의 왕자, 원숭이 섬의 비밀, 인디아나 존스 같은 어드벤처 오락을 좋아해서 열심히 <마이컴>같은 컴퓨터 잡지를 사모았던 기억도 떠오른다. 내가 처음 샀던 <마이컴> 잡지의 표지가 카스테라로 MS-DOS 글자가 찍혀있던 책인데(구글에서도 찾을수가 없네요) 그 책을 통해 처음으로 청년 빌게이츠를 만났다. 아무튼 오락 덕분에 나는 컴퓨터와 친해졌고, 누나 덕분에 점점 컴퓨터 오락에 빠져들어 값비싼 오락기를 사용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코딩의 시작은 대학 교양수업 시간에 배우게 된 < C 프로그래밍 > 이었다. 교재도 < A Book on C >라는 원서였는데, 공부에 전혀 취미가 없었던 나는 과제만 겨우 제출해서 C정도의 학점을 받는 학생이었다. 훗날 내가 이 프로그래밍 언어로 밥을 먹고 살 줄은 꿈에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본격적으로 프로그램과 친해지게 된 계기는 회사 일 때문이었다.
난 프로그램으로 무언가를 개발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개발된 프로그램을 잘 사용하는 일종의 파워유저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회사일에서 동일한 작업이 반복되는 것에 싫증을 느꼈고 이것을 계속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엑셀파일의 특정 칸을 복사해서 다른 시트에 계속 붙여넣기 한다거나, 여러 파일들 중에서 특정 키워드가 담긴 문장을 발췌해서 하나의 파일에 만든다거나...와 같은 반복적인 일 말이다. 사람보다 기계가 더 잘할것 같은 일을 하고 있다보니 이건 사람이 할 일은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주변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선배에게 문의해서 이런 일련의 과정을 자동화 하는 방법을 알아가기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VB(Visual BASIC)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제조업 회사에서 산출되는 DATA의 대부분은 표 형식으로 저장이 되고 있었고, 사람들은 이것을 엑셀에 담아 여러방법으로 계산하고 조합해서 결과물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해본 사람들은 알지만 이건 지식 노가다 영역이다. 엑셀을 잘 다루는 사람들은 10분이면 해내는 일을 나같은 초짜는 두세시간 걸려서 처리했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다루는 사람들은 10분이 걸리는 이 일을 클릭 1번으로 끝냈다. (물론 프로그램을 짜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런 놀라운 일의 효율성을 접하고 나니 나도 이렇게 나이스하게 일을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관련된 책을 구입하고 선배들에게 귀동냥해서 차츰차츰 배워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했던 코딩 덕분에 나는 부서에서 몇 안되는 인재가 되었다. 특히 내가 다루는 프로그램 영역은 Database 부분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C언어나 java와는 다른 SQL 이라는 질의 응답 형태의 언어였다. 당시 소수들만 할 줄아는 매우 전문적인 분야였고 거기서 나는 재능을 보았다. 그렇게 10년가까이 열심히 Database를 활용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숫자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현재, 직무가 바뀐 최근 3년간 나는 프로그램에서 손을 놓고 지냈다. 그러다 얼마전 열심히 가르쳤던 후배들이 다른 사업장으로 전배를 가게 되었고, 위임했던 일들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족하게 되면서 다시 내가 그 일을 맡게 되었다. 물론 예전처럼 열심히 Coding을 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에 새로운 후배들에게 그 일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또, 그러다보니 최신 기술인 A.I와 Database의 접목을 위해 파이썬(Python)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다섯, 파이썬을 시작하려고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집과 회사의 컴퓨터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인스톨했다. 이 과정을 진행하면서 조금씩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10년전 Visual Basic과 C++을 배우면서 힘들어했던 순간들이 조금씩 되살아난다. 하나의 프로그램에 정통하게 되면 다른 프로그램으로의 접근이 쉽다는 말이 제법 이해가 된다. 파이썬을 들여다보면서 C언어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프로그램의 동작 원리와 메모리 운영같은 기본 지식이 내 머릿속에 체계가 잡혀있는 덕분에 언어를 이해하기 용이했다.
최근 회사에서 진행하는 관련된 자격시험도 응시하여 자격증을 획득했고, 더 높은 등급을 달성하기 위해 공부한다. 혹자들은 “부장인데 다 늙어서 이거 배워서 어디 써먹을려고 그러냐?”라고 말하지만 누구처럼 죽기전에 안배운 걸 후회하기 싫다.
또, 혹시 모르잖는가? 처음 SQL이 회사 일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꿔주었듯, 이번에 진행하고 있는 파이썬과 A.I 공부가 내 부장 이후의 업무나 그외 내 삶 전반에 대한 변화를 야기할지.
삶은 기회의 연속이고, 기회는 행동하는 사람이 움켜쥔다. 또 현재는 통섭(consilience, 막힘 없이 여러 사물에 두루 통함)이라는 가치가 무엇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 기존에 가졌던 내 관념과 독서와 글쓰기, 거기에 금번에 더하게 될 인공지능에 대한 학습과 생각법(알고리즘)그리고 프로그래밍 이것이 버무려지면 과연 어떤 좋은 통찰을 가져다 줄지 생각만해도 가슴이 뛴다.
좋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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