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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Mar 20. 2020

나의 번아웃 증후군 보고서

잠시멈춤(STOP) & 새로고침(REFRESH)


* 번아웃 증후군 (Burnout Syndrome)

 -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

   <네이버 지식백과>



한달쓰기 [Day 0]에서 언급했던 7개의 주제를 두고 현재 각 챕터의 꼭지를 구상 중에 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글을 쓰게 되면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사례와 내용을 더 보완해야겠지만) 한달쓰기를 통해 다음번 개인 저서의 초고를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타자치는 손가락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신난다. ^^


(* 7개의 주제 : 여행/ 독서/ 글쓰기/ 인생/ 친구/ 가족/ 행복)




오늘은 인생(LIFE)이라는 주제를 두고 첫 번째 글을 써보려고 한다. 이 주제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작년 이맘때 내가 겪었던 번아웃증후군이었다. 사실 그때의 내 정신적 혼란이 번아웃이었는지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명확하지 않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 상황을 이야기하게 되면서 그들이 내게 #번아웃증후군 이라고 했다.





시작 (START)


2019년 2월 집 앞 도서관 열람실. 갑자기 눈앞이 하얘졌다. 열심히 두드리던 키보드에서 손을 내렸다. 화면 속에 살아 숨 쉬던 내 글의 조각들이 까만 점으로 보였다. 갑자기 시력이 나빠진 것일까? 뭐지? 자리에서 일어나 열람실을 나왔다. 어두컴컴한 도서관 앞 공원 벤치에 앉아서 이 상황을 관찰했다. 왜 내가 이런 더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무기력도 아닌 이런 이상한 상태에 직면하게 됐는지 짚어보기 시작했다.


2개월 전, 2018년 12월부터 나는 두 번째 개인 저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첫 책을 출간하면서 매년 한 권씩 출간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었고, 출간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이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나 스스로를 채근했다. 제목을 정하고, 장제목을 짓고, 꼭지를 만들면서 하나하나 순조롭게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에 기뻤다. 첫 책은 책쓰기 수업을 받으며 전문가의 도움 속에서 썼지만, 꾸준히 책을 쓰려면 결국 나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나 혼자만의 힘으로 해 내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그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난 시점에 책의 전체적인 청사진이 완성되었고, 이제는 매일매일 한 꼭지씩 쓰기만 하면 되었다. 주말에는 2~3 꼭지를 쓸 수 있겠다고 가정해보면 대략 한 달이면 초고가 완성될 것 같았다. 보름 정도 퇴고를 고려하면 늦어도 2월 말이나 3월 초면 출판사에 원고를 넘길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월간 계획표에 날짜별로 써야 할 분량을 기록했고 매일매일 쉬지 않고 쓰기 시작했다. 




멈춤 (STOP)


2019년 2월,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퇴근을 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늘 한 꼭지를 쓰면 두 번째 장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열람실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어제 썼던 글을 복기하면서 오늘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도서관 폐장까지 3시간이 남았으니 시간은 충분했다. A4용지를 한 페이지 정도 채웠을까? 갑자기 눈앞이 하얘졌다. 갑자기 왜 이렇지? 일단 멈췄다.


그날 나는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바깥바람을 쐬며 정신을 가다듬고서는 다시 책상에 앉았지만 노트북의 글을 쳐다보니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조금씩 숨이 가빠 왔다. 뭘까? 어떡하지? 더 이상 앉아있을 수 없었다. 짐을 챙겨 열람실을 나왔고 그대로 차를 몰고 집에 왔다.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는 생각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선 바로 잠을 청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날부터 계절이 바뀌어 여름이 올 때까지 나는 두 번째 책에 대한 글은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 새벽 시간에 일어나 써보려고 시도했지만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내가 쓰고 있는 "독서"에 관한 글들이 모두 어딘가에서 본 듯한 내용이고, 내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쓰고 있었지만 어느 책에서 읽은 타인의 이야기를 내가 각색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주인공의 각본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중단했다. 





멈춤 2 (Pause)


초조했다. 내가 설정해 둔 일정이 틀어진다는 것, 이대로 쉬면 계속 쉬게 될 것 같다는 것, 이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의 저자 제임스 클리어는 "하루는 쉬어도 이틀은 절대 쉬지 마라"라고 했는데, 어떡하지. 가슴이 답답해서 현재를 잠시 떠나고 싶었다.


주말을 이용해 가족과 함께 부산을 찾았다. 부산은 어릴 때부터 살아왔고 부모님이 계시는 내게 피난처나 안식처 같은 포근함과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그래서 기분전환이 필요하거나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는 순간에 나는 습관적으로 부산을 찾는다. 그래서 지금의 이 문제도 부산에 가면 무언가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계속"왜?"를 생각했지만 답은 찾지는 못했다. 


다음 날 새벽 황령산을 올랐다. 그곳에 가면, 그곳에서 뻥 뚫린 부산 바다를 바라보면 무슨 생각이 날 것 같았다. 


황령산은 너무 추웠다. 매서운 칼바람에 머릿속에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15분쯤 바다를 보았을까? 추위를 피하고자 차로 돌아와 시동을 걸었다.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이곳에 올 때면 항상 들게 되는 러브홀릭스의 "Butterfly"를 눌렀다. 


두두 두둥~~~~ "심장의 소릴 느껴봐!! ~~~ 벅차도록 아름다운 그대여, 이 세상이 차갑게 등을 보여도~~~ 눈부신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뭔가 탁하고 팽팽했던 실이 끊어지는 느낌! 


휴대폰에서 음악을 켜면서 보았던 마크가 내 생각을 이끌었다. 가운데 있는 저 두 줄( || ).  PAUSE. 그래 저거다.



사실 그때 난 내가 멈출 거라는(STOP) 불안감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마크를 보게 되면서 멈춤(PAUSE)를 발견했다. 그렇다. 잠시 쉴 수 있는 거다. 잊지 않고 유념하고 있으면 된다. 저 버튼을 누르면 처음이 아닌 내가 멈췄던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아니던가.


이걸 머릿속에서 떠올리게 되자 갑자기 내 정신은 엄청난 청량감을 맛본듯했다. 그리고 더 이상 두려움에 나를 가두지 않고 '잠시 멈추게 되었는데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라며 다음을 계획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수혈 (FILL UP)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4개월이 훌쩍 지난 뒤였다. 그동안 나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았다. 참아왔던 비디오게임 몇 편의 엔딩을 보았다. 신나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달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인내하며 참고 지냈는데, 한껏 조였던 허리띠를 풀고 츄리닝(트레이닝 보다 이게 여기 더 잘 어울린다 ^^)을 입었다. 독서도 자기 계발서 위주의 편식만 하다가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는데 독서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봐야겠다고 정리해 둔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삶과 생각에 공감했다. 


몇 개월을 쓰는 걸 멀리하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채우다 보니 어느 날 글이 쓰고 싶다는 생각이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고 있음을 느꼈다. 이미 계획은 틀어진 상태였기에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천천히 준비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예전의 원고를 다시 읽었다. 썼던 글 대부분을 지웠고 다시 쓰기를 계획했다. 그렇게 4개월이 흘렀고 나는 A4 용지 120매의 초고를 완성했다. 





새로고침 (REFRESH)


초고를 완성하고 다시 한 달을 쉬었다. 그동안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했다. 그리고 다시 썼던 원고를 읽으며 지난한 퇴고를 시작했다. 완벽하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자꾸 욕심이 났다. 썼던 글을 계속 고치고 있던 시기에 아내가 말했다. 


“이제 그만 쓰고 출판사에 보내라. 마부작침의 자세로 벼리다가 바늘 사라진다.”


난 고치기를 중단하고 출판사에 투고했다.




이제는 쉼이라는 것의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컴퓨터 펑션키 F5번. 바로 #새로고침 이다. 쉼 없는 달리기는 없다. 일하기 위해 쉬는 것인지, 쉬기 위해 일하는 것인지 아직 모호하긴 하지만 현재를 인내한다는 건 나 자신을  갈아없애는 것 같다는 걸 느낀다. 지금이 즐겁지 않은데 미래가 즐거울 수 있을까? 과정이 만족스럽지 않은데, 결과에 만족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난 이제 가끔 새로고침을 한다. 아주 가끔은 전원을 끄고 재부팅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다시 새것처럼 쌩쌩한 나를 발견한다. 


좋다. 이러면서 사는 맛을 알아가고 있다. 






#한달 #한달쓰기 #작가김경태

#글쓰기 #매일쓰기 #Han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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