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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Mar 20. 2020

일을 그만두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

<꾸뻬 씨의 행복 여행> 중에서


[ 일의 역설 ] 일을 그만두기 위해 일을 한다



몇 년 전부터 내가 계속 해오던 고민을 <꾸뻬 씨의 행복 여행>에서 만났다. 이럴 때 책 읽는 맛이 난다. #꾸뻬 의 작가 #프랑수아를로르 는 이런 모순된 삶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궁금한 마음에 책장을 넘기기에 분주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부조리한 존재다.”라고  <시시포스 신화>에서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죽지 않기 위해 밥을 먹고, 더 윤택한 삶을 위해 돈을 벌고 사다리의 끝을 향해 질주하지만, 결국 인간은 영생이 아닌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삶이다. 카뮈의 책을 읽다 보면 인생이 참 우울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꾸뻬 씨의 여행은 안타까운 수많은 장면 속에서도 그의 마음은 참 노랗고 초록 초록하고 또한 파랗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칫 우울한 이야기를 우울하지 않게 잘 표현해 놓았다.



내가 이 챕터 “일을 그만두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구절을 목차에서 읽었을 때, 회사 후배 녀석이 생각났다. 녀석은 욕심도 있고, 능력도 있는데 좀처럼 회사일에 흥미를 붙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보면 젊어서 돈 많이 벌어서 하루라도 빨리 경제적 자유를 얻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인내하는 중이라고 했다. 난 그에게 지금이 즐겁지 않은데, 미래가 즐거울 수 있을까?라고 되물었는데 명확한 대답을 듣지 못했던 것인지 내 기억에는 남아있지는 않다. 아직도 후배 녀석은 자신의 신념을 믿고 있는 것 같다.



몇 년 전까지 나도 이 챕터의 제목 같은 삶을 살았다. “아름다운 노후를 위해 지금 열심히 희생하는 것” 말이다. 지칠 줄 모르는 내 안의 물욕과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필요한 돈. 봉급쟁이라서 딱 적당히 살 만큼의 돈으로 살아가는 현재. (물론 더 줄일 수 있지만 봉급이 오르는 만큼 품위유지비도 오르게 마련이라...)

하루하루 업무 시간을 채우고 나서야 시작되는 미래의 나를 위한 진짜 공부의 시간. 나이를 먹어갈수록, 직급이 올라갈수록 점점 불안해지는 미래. 회사에서 내 업을 찾을 수 없다는 관념 속에 퇴직과 동시에 시작될 화창 빵빵한 미래를 꿈꿨다. 바깥은 전쟁터라는 말도 나에게는 예외일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한몫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봉급쟁이다.



17년간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회사를 자의로 또는 타의로 떠난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다. 그들 중에는 크게 성공하신 분도, 다시 다른 회사로 가신 분도, 자영업을 하시는 분도, 공부를 하시는 분도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준비 없는 퇴사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는 것과 일찍 자신의 일을 다시 발견하지 못하면 늙는다는 것이었다. 이 회사는 업무 강도가 높은 탓에 대부분 사람들이 긴장감을 갖고 생활하고 있다. 이런 높은 텐션의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유지해야 할 텐션이 사라지면 아랫배에 힘이 빠지고 엉덩이가 쳐지고 눈에 힘을 잃어간다. 퇴사 후 6개월 정도 쉬고 있는 선배들을 만나보면 여지없다. 몸과 마음은 결국 하나듯 하늘을 찌르던 그들의 자존심과 자신감도 조금씩 색이 바랬음을 직감한다. 이런 선배들의 모습에서 더욱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앞에서 내가 언급했던 모든 것들은 결국 내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이지 그들의 참모습이 아니다. 내 판단으로 그들의 상황을 계층화 시켜버린 것이다.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나는 회사 생활에 더 열정을 갖게 되었고, 충실하게 되었고, 회사에서의 시간과 퇴근 후 시간에 대한 밸런스가 맞춰질 수 있었다.



우리는 하나의 사다리를 오르는 인생을 사는 게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방향으로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한 줄을 세우며 옆 친구를 제치지 않으면 내가 뒤처지는 경쟁 사회에 길들여져 하나의 잣대 속에서 나와 내 주변의 사람을 놓고 내 위치를 가늠하며 살았다. 하지만 누구는 밭을 갈면서도 행복이 가득한 삶을 살고, 또 어떤 이는 평생 다 쓰지 못할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울하고 불안해한다. 과연 어떤 게 진짜 삶인지? 어떤 게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인지? 꾸뻬 씨의 이 한 챕터를 읽으면서 한참 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생각을 되씹고 있다.


이 책은 참 좋은 책이고,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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