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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Mar 21. 2020

당신은 "평생 친구"가 있나요?  

이 글을 읽으며 자신의 친구를 떠올려 보세요.


친구

 :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네이버 국어사전>



친구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몇 명 있을 것이다. 친구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다. 인간은 부모의 사랑으로 만들어져 부모의 관심으로 성장하고 친구를 통해 세상을 알아가며 가족의 품에서 죽는다. 삶은 결국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이같은 인간관계의 반복 속에서 친구라는 존재가 탄생한다.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고등학교 때 사귀는 친구가 평생 친구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내 기억에 그 말을 처음 들었던 것은 아마도 중학생이었던 것 같다. 아직 만나지도 못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라서 와닿지 않았고, 당시 나와 함께 어울리던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흘러 넘겼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가게 되면서 나는 초/ 중학교를 함께 다니던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다른 학군으로 배치를 받았다. 전교생 중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학교에서 시작된 3년간의 고등학교 생활. 1학년 초에는 예전의 친구들이 그리워 자주 옛날 동네로 놀러 가기도 했지만, 벚꽃이 흩날리고 교정 앞 철쭉의 꽃망울이 터질 때 즈음에는 새로운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예전의 친구들은 추억 속에서 가끔 꺼내보는 사이가 되었다. 이렇게 새로운 동네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시작되어 영글어진 고등학교 3년이라는 시간은 아버지의 예언대로 같은 고등학교 친구 1명과 같은 동네의 고등학교 친구 5명, 나를 포함해 7명의 남자들을 평생 하나의 관계로 묶었다.


우리는 매일 함께 웃고, 떠들고, 공부하고, 싸우고, 운동하고, 밥 먹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선 7명 중 5명은 서울로 대학을 갔고, 1명은 외국으로, 또 한 명은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나는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대학생활보다 함께하는 서울 생활에 더 재미를 붙여갔다. 대학은 달랐지만 서로의 대학 친구들과도 관계를 텄고, 친구의 하숙집 사람들과도 호형호제하며 우정을 쌓았다. 군 입대 전 2년간 우리는 정말 방종 비슷한 자유를 만끽하며 함께 지냈다. 나와 같은 날 함께 같은 훈련소로 입대한 두 녀석과 같은 날 제대해서 함께 복학을 준비했고, 그들과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했고, 한 친구가 다녀왔던 미국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내가 참여했었다.


함께했던 시간도 많았지만 각자 다른 지역과 장소에서 각자의 삶도 꾸려가고 있었고, 각자 개척한 길이 서로에게 미묘하게 도움을 주는 관계로 발전해가고 있음을 조금씩 느껴가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모두 결혼을 했고, 우리들의 반려자가 된 사람들 역시 그 시기에 함께 했던 친구들인 경우가 많았다.





올해 내 나이가 마흔다섯. 이 친구들과 벌써 30년이 되어간다. 건강을 걱정해야 하는 친구도 있고, 머리가 제법 많이 비어버린 친구도 있다. 좋은 회사의 임원이 된 친구도 있고, 의사가 되어 때가 되면 약을 보내주는 친구도 있다. 물론 나는 샐러리맨이면서도 글 쓰는 작가라고 떠벌리고 다닌다. ^^ 녀석들을 생각할 때면 슬몃 웃음이 난다.


고3 때 다니던 독서실 실장님이 우리들에게 붙여줬던 Family Name : ES(Everyday Sunday, 고3이 이렇게 놀아도 되냐? 그러고도 대학갈 수 있나?며 붙여준 이름). 이젠 녀석들과 분기에 한번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각자의 가정과 각자의 일, 그리고 각자의 삶. 그래도 얼굴을 보는 날이면 아침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예전에 자주 가던 종로의 부침개집, 한양대 감자탕 집, 사당의 해장국집, 강남의 고깃집, 중대 앞 껍데기 집. 마흔을  흘쩍 넘긴 중년이 만나 술잔을 기울이지만 그 시간 우리들은 여전히 10대의 그 모습과 말투, 행동으로 그 자리에 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여전히 버릇없고, 개념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 놈이다. 그래도 그들의 기억 속에 자리해있는 내 모습이 좋다.


이젠 뜬금없이 전화하면 "무슨 일 있냐?"라며 놀라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가끔 술에 취하면 밤늦게 전화해 사투리로 욕을 해대면서 우정을 과시한다. 예전엔 가족과의 시간보다 녀석들과의 약속을 더 우선시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못하는 위치가 되었다. 자주 보지는 못해도, 자주 안부를 전하지는 못해도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평생 친구로 남아있다. 녀석들과 오래 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한 친구가 얼큰해져서 슬몃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


"내 너밖에 없다 아이가"


난 진짜 평생 친구가 있는 것 같다. 눈물 나게 행복하다.


#친구 #친구라는말

#한달 #한달쓰기 #작가김경태

#글쓰기 #매일쓰기 #Handal

#닥치고독서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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