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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Mar 21. 2020

두려움 해체법

두려움을 없애려면 그것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 <스타워즈 - 제국의 역습>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타이탄의 도구들> 이 챕터를 읽으면서 스타워즈에서 제다이 마스터 요다가 루크 스카이워커를 수련시키며 말했던 바로 이 장면을 떠올렸다. 막연히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그것을 형상화시키고 구체화시켜서 넘어서는 법뿐이라는 의미다.


마스터 요다의 이 말에 내가 완전 공감을 하는 이유는 나 역시 보이지 않는 두려움 때문에 방황을 해 본 경험이 있고, 이것을  이겨낸 뒤 돌이켜보니 그의 말과 아주 유사한 방법으로 이겨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십 년 전, 회사 생활 5년 차이자 대리 1년 차. 난 회사에 대한 불만이 절정에 달했다. 입사 후 5년째 3교대 근무를 하고 있었고, 근무 시간의 로테이션(06~14/ 14~22/ 22~06시 1주 단위 변경)으로 인해 내 삶은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었다. 주 단위로 바뀌는 수면시간 때문에 몸은 만신창이가 되다.


특히 야간 근무가 쥐약이었다. 잔뜩 예민한 탓에 약한 불빛이라도 비치면 잠을 못 자서 내 방엔 암막 커튼을 달았고, 바깥에서 들리는 약간의 잡소리에도 잠을 깨기 일쑤였다. 당시 첫째가 어린이집도 다니지 않을 때라 거실에서 엄마와 아들의 말소리 때문에 낮에는 잠을 잘 수 없었고, 그런 날이 지속되자 나는 신경쇠약이 걸린 듯 극도로 날카로웠다. 아내도 내 고통을 알기에 야간 근무일 때면 구석방에서 아들과 조용히 낮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배려를 해줬어도 하루에 3시간을 채 못 잤다. 그리고 출근을 했고, 일을 시작할 때부터 나는 피곤한 채 업무를 했기 때문에 점점 몸이 지쳐가고 있었다. 특히 새벽 1시 정도에 밥을 먹게 되는데 식후엔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식사를 스킵 했고, 퇴근 후 바로 잠을 청하기 위해 집에 오면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선 곧바로 빈속에 소주를 연거푸 몇 잔 들이켠 후 취기에 잠이 드는 일상을 살았다. 그렇게 지냈던 게 5년째였다.





몸이 마르고, 삶이 피폐해질 때쯤 나는 더 이상 이 근무는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직장을 옮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회사 내에서 가능한 부서 이동을 위해 여러 번 사내 공모를 신청했지만 매번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러자 점점 자신감도 줄어서 그냥 회사를 관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설마 처자식을 굶길까?

막상 퇴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뒤 하나씩 준비를 시작할 때 갑자기 내게 두려움이 찾아왔다.


“이대로 나가서 다시 직장을 못 구하면 어떡하지?”, “아내 뱃속에는 둘째도 있는데, 퇴직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부모님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하지? 정말 힘들었다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처가에는 또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면서 점점 손이 떨려오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우울함이 엄습해왔다. 두려움이 머릿속에 똬리를 틀자 점점 생각은 부정적으로 치달았고 나중에는 회사를 관두지도 다니지도 못하겠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어느 날 저녁, 가족을 태우고 귀가하던 중에 높은 다리 위를 지나고 있었는데 이대로 핸들을 틀어 ‘다 같이 죽어버릴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길로 집에 와서는 혼자 서재에서 진심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정말 실망했다. 그리고 마음으로나마 진심으로 가족에게 사과했다.


정말 사랑해서 한 결혼이고, 나를 믿고 천안까지 와서 친구하나 없는 이곳에서 살고 있는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다.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난 아들과 태어날 둘째에게 아빠라는 사람이 힘들어서 더는 못하겠다는 한 번의 결정으로 그들의 삶에 커다란 변곡점을 주게 된다는 것에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그날 결심했다.





시작은 내 안의 두려움을 정면으로 쳐다보는 것부터였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두려움에 나를 잠식 당하기 싫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출근길 운전대를 잡고서는 출근하는 시간 동안 차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나에게 욕을 해댔다. 내 불평불만을 소리쳐 쏟아내고 나면 후련했다. 그렇게 비우고 출근하면 좀 나았다. 한동안 그렇게 차 안에서 쌍욕 비슷하게 나에게 욕을 해대면서 깨우치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매번 내 뱉고 있는 말이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회사 책상에서 메모장을 열어 내 불평불만을 손으로 직접 썼다.


불만을 직접 손으로 써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머릿속 가득했던 불만도 직접 문장으로 만들어보면 몇 줄이 안된다. 나는 10줄도 채 안 되는 내 불만을 머릿속에 가득 담은 채 무거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점을 글로 마주하자 내가 가진 두려움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 내 두려움의 근원은 바로 “자존심”이었다.


몸이 힘들어서라고 말했지만, 실상은 내 자존심이 내가 교대 근무한다는 것을 허락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이 재미가 없고, 흥미를 못 느끼니 자꾸 주변에 다른 일을 하는 동료들이 부러워 보였던 것이다. 그 시간이 축적되면서 급기야 나는 막다른 결정을 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체를 알고 나서는 그러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부서의 이동이나 퇴사 같은 회피 전략이 아닌 정면으로 맞서는 정공법을 찾기로 했다. 부서 상급자들과 현재의 내 문제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를 하던 중 의외로 길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 3개월간 해외 출장 갈 인력이 필요했는데 거기에 가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그때 3개월간 해외출장을 다녀왔고, 출장지에서 규칙적인 근무를 하면서 좋은 성과를 냈다. 그 결과 좋은 인사고과를 받았고 발탁되어 본사 사업장의 사무직 근무로 옮겨올 수 있었다. 그때부터 더욱 나는 업무에서 좋은 성과를 많이 낼 수 있었다.


결국 내 자존심 때문에 감춰두고 혼자 풀어보고자 했던 것을 드러내고  조언을 구하며 정면으로 응시하자 상황이 변하게 된 것이다. 좋은 상황은 긍정적인 생각을 불렀고, 긍정은 좋은 성과를 이끌었다. 선순환 구조의 사이클을 타면서 내 자신감은 차츰 회복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자기계발과 심리 부분에 관심을 가지며 현재의 내 삶의 키워드인 “독서”에 한 걸음씩 다가가게 되었다.



인생은 짧게 보면 비극이고, 길게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그래서 힘들어도 살아볼 만한 게 인생인가 보다.


별 재미없는 에피소드지만 <타이탄의 도구들> 때문에 잠시 그때의 나를 소환할 수 있었다. 참 고마운 책이다.


그때를 생각하면서 나는 지금도 항상 내 문제를 깊게 그리고 정면으로 들여다보려고 한다. 나는 매일 한 뼘씩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


- 작가 김경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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