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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Mar 22. 2020

가족의 탄생

이렇게 조금씩 가족이 되어간다



알고 보니 나는 행운아였다.  



내 인생에서의 가장 첫 기억은 누나가 유치원을 다니던 그 시기다. 물론 그 이전의 기억이 남아 있을 수 있지만 그건 더 어릴 적 사진첩에 남아있는 내 모습을 통해서 어렴풋이 '그랬던 것도 같다' 정도다. 내 첫 기억이라고 말하던 그날은 아빠가 새로 지었던 집에서 누나가 유치원 복을 입고 유치원을 가려고 대문 밖을 나서던 날이다. 대문 밖 담장에는 벽을 따라 나팔꽃이 피어있었고, 할머니와 나는 대문 앞 조그만 화단에 채송화와 봉숭아를 심으며 돌을 줍고 있었다. 아빠가 사진기를 들고 나와서 그때 우리의 모습을 남기기 시작했다. 손에 잡힐 듯 생생한 그때는 5살 어느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언젠가 TV 프로그램에서 신해철 씨가 자신의 인생 첫 기억에 대해 이야기 한 적 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는 엄마 뱃속에서의 순간을 기억한다고 했다. 함께한 패널들이 말도 안 된다며 핀잔을 줬지만 그는 사뭇 진지하게 그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때 생각했다. '역시 신해철 이 사람은 상식 너머의 관점(See the Unseen)을 갖고 사는 사람이구나.'  그때 나는 생각했다.비록 나의 첫 기억은 5살 즈음에 머물러 있지만 내 아이는 좀 더 이른 기억을 찾아 주고 싶다는 생각을.


미국에서 처음 홈스테이를 하던 그때 주인아주머니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었다. 당시 17살이었는데 어린놈의 자식이 지독하게도 엄마 말을 안 들었다. 엄마 차 몰래 몰고 나가서 혼나기 일쑤였고, 혼자 지하에 틀어박혀 뭘 하는지 밥 먹으라고 불러도 대답이 없고, 온종일 자고... 저놈이 고등학생이 맞나? 생각했었다. 그 집에서 내가 생활하던 방이 아들 녀석의 방이었는데 (녀석은 내게 방을 내주고 지하실에서 살았다.) 그 방의 특징이 벽 한쪽 편에 아들의 사진이 쭉 붙어있었다는 거다. 매년 생일마다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어서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뒀는데, 귀엽고 앳된 아이가 점점 남자로 변해가는 과정이 썩 괜찮아 보였다. 그때 나도 훗날 결혼하면 내 아이들 사진을 이렇게 찍어서 걸어볼까 생각했었다.


2006년 1월에 결혼했다. 그리고 2007년 1월에 첫 아들을 낳았다. 아내랑 둘이 지낼 때는 몰랐는데, 아이가 태어나니 이상하게도 가족이라는 소속감이 들기 시작했다. 결혼을 했어도 나는 내 아빠/ 엄마의 아들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자식이 생기자 내 부모보다 내 아이라는 생각이 먼저라고 할까? 이제 나도 "가장"이 되어가는 것인가 생각했었다. 1년전 혼인신고할 때는 별 느낌이 없었다. 등본을 떼어보니 배우자에 아내 이름이 들어있다는 정도. 하지만 아들 녀석의 출생신고를 한 후 떼어본 등본은 사뭇 달랐다.


<블로그가 참 좋은 게 기록을 해두면 추억이 다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년 결혼기념일이 되면 가족사진을 찍자고 다짐했다. 나와 아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아이는 자랄 것이고 그 변화를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그리고 2년 뒤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는 딸이었다. 자녀가 둘이 되고부터 이상하게도 부모라는 단어에 익숙해졌다. 어쩌면 그때부터 첫째가 집 밖을 나섰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자신의 이름 대신 아이 이름 뒤에 붙는 누구엄마라는 명칭에 익숙해졌다.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라며 지금도 나는 아내를 “아내”라고 부르거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결혼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이제 아이들도 많이 자랐다. 속상하게 하는 자식들을 보고 있으면 '저래가지고 세상 살아가겠나?' 걱정이 앞서지만, 내 부모님들도 그 시기에 지금 나와 똑같은 걱정을 했으리라. 그리고 아직 난 부모님 속 안 썩이고 잘 살고 있지 않은가? (나만의 생각일지도)


부모가 되고, 자녀들이 자라고, 아내가 나이 들고, 부모님이 자꾸 아픈 곳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점점 진짜 가족을 경험한다. 그때 내 아버지가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 때문이었다는 것도 깨우치게 되었고, 내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보여준 수많은 웃음들이  아빠와 엄마가 누나와 나를 키우면서 얻었던 삶의 활력소였음을 느낀다.


그걸 몸으로 깨닫게 되면서 나는 점점 아들에서 아빠가 되고, 또 할아버지가 되어 갈 것이다.


이렇게 가족이 탄생하나 보다.


- 작가 김경태





사진 기술이 점점 좋아지긴 하나보다.


#한달 #한달쓰기 #작가김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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