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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Jan 18. 2021

20년 만에 다시 읽은 <죄와 벌>에서 발견한 3가지

| 고전을 고전이라고 부르는 이유에 관한 생각 1그램



    2020년 연말에 나는 민음사에서 출간된 세계문학전집 284~285권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었다. 내 기억으로는 두 번째 읽는 <죄와 벌>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학 도서관에서 빌려 있었던 기억이 있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줄거리도 기억이 났고 무엇보다 주인공 이름이 "라스콜리니코프"라는 것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유시민 <청춘의 독서> 중 죄와 벌

    이 년 전쯤 운동을 하면서 오디오 북으로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를 들었었다. 러닝머신에서 빠르게 걷고 있었지만 이어폰 속에서 흘러나오는 성우의 목소리에 빠져들어 내가 운동 중인지 책을 읽는 것인지를 잊는 순간이 있었다. 그만큼 유시민 작가가 소개하는 <죄와 벌>은 내가 느끼고 있던 책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청춘의 독서>를 집필하면서 갓 대학생이 된 자신의 딸이 걷게 될 인생에 조금은 더 살아본 부모로서 도움이 될만한 책을 몇 권 골랐고 그 첫 번째 책이 바로 <죄와 벌>이었다. 


    그는 1977년 대입을 앞둔 고3 시절 어느 가을 토요일에 이 책을 들었고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30년 뒤 이 책을 다시 읽어보면서 그때와는 많이 달라진 자신을 느끼게 된다.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가난과 죄와 벌에 대한 당황, 모순, 격정만큼 현재 자신은 고민하면서 살아보고 시도도 해보았고 때론 잊어버리기도 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읽게 된 이 책에서 그는 30년 전 발견하지 못했던 한 인물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그 인물은 30년 전에도 분명 <죄와 벌>에 존재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유시민 그가 십 대에 처음 읽었던 <죄와 벌>에서의 질문은 이 책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던질 수 있는 질문이다. 


"선한 목적은 악한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그리고 30년 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도스토예프스키가 20세기를 목격했다면, 그는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 


    2008년.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신의 저울>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사법연수원생들의 이야기였는데, 당시 신인들을 캐스팅하였지만 스토리의 탄탄함과 몰입력 있는 연기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였다. 당시 회사원이었던 나는 연휴 간에 몰아보기로 이 드라마 16편을 다 봤다. 그리고 그때 이 책 <죄와 벌>이 떠올랐다. 


    가난한 고시생과 법조계 집안의 잘 나가는 법대생. 이 두 주인공을 교차시키면서 우발적 살인이 만들어낸 피해자의 분노와 좌절, 고통.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살인을 덮으려고 하는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내가 눈여겨보았던 지점은 죄를 지은 주인공의 심리였다. 죄를 잊고 싶지만 생각과 몸이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는 표정과 정신적 고통 그리고 착란. 이걸 지켜보면서 대학생 때 읽었던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떠올랐다.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이 드라마에서도 <죄와 벌>에 관한 모의재판이 나왔던 것 같다.  이 드라마에 몰입하면서 나는 <죄와 벌>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2020년 12월. 드디어 <죄와 벌>을 다시 손에 잡았다. 적어도 10년은 미룬 숙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작년(2019년) 민음사 연간회원 가입을 하면서 선물로 선택했던 세계문학 두 권이 <죄와 벌>이었던 것은 아마도 내 생각 깊은 곳에 이 책을 반드시 다시 읽어야겠다는 강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주일이 걸렸다. 다시 읽은 <죄와 벌>은 사뭇 낯설었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와 소냐, 라주미힌 정도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이름의 전부였다. 주인공이 도끼로 전당포 주인을 살해하다 우발적으로 한 명을 더 죽인다는 것과 살인 후 굉장한 정신적 괴로움을 겪는다는 것 정도를 되뇌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시 읽게 된 <죄와 벌>에서 처음 내가 느낀 낯섦은 "날씨"였다. 일단 러시아는 추워야 한다. 여러분들의 머릿속 러시아는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어있나? 춥지 않은가? 살을 에는듯한 추위, 꽁꽁 얼어있는 얼음, 시베리아, 보드카, 털모자, 붉은 깃발, 낫과 망치, 고르바초프,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 푸틴... 이 정도가 내 머릿속 러시아(소련)다. 그래서 러시아는 추워야 했다. 

    그런데 <죄와 벌>의 무대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덥다. 글을 읽는 내내, 허름한 하숙집들이 모여있는 뒷골목의 시궁창 냄새와 끈적끈적한 땀냄새가 났다. 어쩌면 주인공들의 대화와 심리상태에서 느껴지는 정신적 고통이 눅진한 냄새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이 시베리아로 떠나게 된다. 글의 말미에 겨우 추워진다. 그제야 역한 냄새가 가시고 발이 시리고 입김을 호호 불어야 온기가 느껴지는 그런 일반적인 러시아로 돌아온다. 물론 러시아도 계절이 있어서 더위와 추위가 공존한다. 그런데 유독 내가 더운 날씨에 반응하게 된 것이 어쩌면 작가의 플롯 아닐까? 



    두 번째 깨달은 것은 "가난"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 대부분은 가난하다. 가난 때문에 모든 사건들이 일어난다. 주인공이 걸어 다니는 공간 속에서 가난이 묻어났다. 그런데 20년 전 나는 "가난"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책의 전반에 깔려있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가난인데 나는 가난을 무시했고 살인에 몰두했었다. 내 기억 속에 가난이라는 키워드가 없는 것 보면 분명 맞다. 하지만 다시 읽게 된 <죄와 벌>에서는 살인보다 가난이 먼저 보였다. 

    로쟈(라스콜리니코프 애칭 - 러시아 소설은 이게 문제다. 애칭이 너무 많아서 누가 누구인지 헷갈린다는 점)가 살인을 저지른 것도 사실 돈 때문이다. 자신의 공부를 위해 동생이 돈을 벌어 지원하지만 그는 공부에서 점점 멀어지고만 있다. 보내준 돈도 떨어져 하숙집 주인아줌마를 피해 다닌다. 그의 동생 두냐가 50대 페트로비치 루쥔과 결혼을 결심한 것도 엄마와 오빠의 뒷바라지 때문이다. 마르멜라도프가 마차에 치여 죽음을 맞이하고 그 상황에 가진돈을 털어 그의 장례를 돕는 로쟈와 거기서 만나게 되는 그녀의 딸 소냐. 소냐 역시 가난 때문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몸을 팔아 돈을 벌고 있다. 이렇듯 <죄와 벌>은 살인 이전에 그 모든 계기가 되는 가난이 만들어내는 현실을 드러내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새롭게 발견한 것은 바로 "스미드리가일로프"다. 다시 읽기 전에 나는 이 책에 스미드리가일로프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만큼 20년 전에는 안중에도 없던 인물이다. 그는 부자이며 타락한 인간군상의 전형이다. 적어도 두 명의 살인에 연결되어있고 (그의 아내와 하인) 여자아이를 성적으로 능욕했던 인물이다. 주인공 로쟈의 동생 두냐(두네치카, 아브도치아 로마노브나 라스콜리니코바... 이게 이름이다. ㅠㅠ)가 그의 집 가정교사다. 그리고 두냐의 약혼자 페트로비치 루쥔과 먼 친척 관계다. 


    이 책에서 스미드리가일로프는 강한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어찌 보면 지금 우리나라의 뉴스에도 많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기득권이다.(유전무죄 무전유죄) 자신이 옳다는 신념에 쌓여 악행을 권리로 생각하며 강하게 상대를 몰아붙이지만 결국 자신의 잘못이 돌아돌아 다시 부메랑처럼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상황을 만든다. 처음에는 강한 모습으로 비치지만 점점 그의 유약한 모습이 드러난다. 사랑이라는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느껴본 적 없는 그가 두냐(주인공 동생)를 사랑하게 된다. 그 감정 속에서 그는 정신적 혼란을 느끼며 예전에 해왔던 것처럼 두냐를 가둬 범하려 하지만 결국 그러지 못하고 그녀를 보낸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자살 전 그가 하는 행동과 자살하는 장소 모두가 큰 의미를 가지는데 다시 읽은 이 소설의 백미였다.

 

    이 존재감 가득한 주인공을 왜 나는 20년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을까? 한참 동안 생각해봤다. 스무 살의 나는 세상을 잘 몰랐다는 생각에 닿았다. 부모님의 보호 아래 내 권리만을 누리며 살았기 때문에 스미드리가일로프의 말과 행동은 여느 소설이나 영화에서 있음 직한 악인들 중 하나였다고 생각했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부정부패에 화낼 줄 알고, 적어도 나만의 신념이 있고, 그 기준에서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생각의 성장이 그를 발견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 <죄와 벌>을 읽으면서 인간관계도가 머릿속에 들어왔다. 이 관계도가 사라지기 전에 스케치해두었고, 기억이 흐릿해지기 전에 다시 한번 읽어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항상 그렇지만 고전문학은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책이다. 그래서 고전인지? 아니면 그렇게 생각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만드는 상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암튼 20년 만에 읽었던 <죄와 벌>에서 가장 중요한 "선한 목적은 악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되짚어봄과 동시에 여러가지 새로운 생각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참 좋은 책이다. 



#죄와벌 #도스토예프스키 #고전문학


마지막으로 좋았던 문장 몇 개 발췌해본다.


"자신을, 일신의 안락을 위해서라면, 심지어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파는 일은 없을 아이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면 자, 이렇게 판다는 것이다." (p.84 - 1권)


"내일 저녁 7시 정각에 노파의 동생이자 유일한 동거인인 리자베타가 집을 비울 것이며 따라서 저녁 7시 정각에 노파는 집에 혼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더욱이 갑자기, 느닷없이, 그야말로 뜻밖에 알게 된 것이다." (p.117)


"하나의 하찮은 범죄가 수천 개의 선한 일로 무마될 수는 없을까? 하나의 생명을 희생시켜 수천 개의 생명을 부패와 해체에서 구하는 거지. 하나의 죽음과 백 개의 생명을 서로 맞바꾸는 건데, 사실 이거야말로 대수학이지 뭐야!" (p.123)


"군중을 헤치고 한 처녀가 소리도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나타났는데, 빈곤과 누더기와 죽음과 절망이 만연한 이 방에 그녀의 돌연한 출현은 이상야릇한 것이었다. 그녀도 역시 누더기를 걸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차림새를 보면 비록 싸구려이긴 해도 특수한 세계에서 형성된 취향과 규범에 걸맞게 거리의 여자처럼 야하고 치욕스러운 목적이 드러나도록 치장을 해 놓았다." (p.331)


"대체 왜 오빠는 나한테 영웅적인 행동을, 오빠한테도 없을 것 같은 그런 것을 요구하는 거야? 이건 횡포야, 폭력이야! 만일 내가 누구를 파멸시킨다면 오직 나 하나만 파멸시키는 거야... 나는 아직 아무도 찔러 죽이지 않았어...! 왜 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거야? 얼굴은 또 왜 그렇게 창백해졌어? 로쟈, 왜 이래? 로쟈, 오빠...!" (p.419)


" '행실이 더럽기로 유명하다.'라는 표현에 대해 전혀 반박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상기했다. 이 모든 것이 일순간 희뿌옇게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좀 더 찬찬히 살펴보다가 갑자기 굴욕에 짓눌린 이 존재가 이미 너무도 굴욕에 짓눌렸음을 깨달았고 때문에 갑자기 그녀가 가엾어졌다. 그녀가 너무 무서웠던 나머지 도망치려는 몸짓을 했을 때는 그의 내부에서 뭔가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p.426)


"핵심이 뭐냐면, 이분의 논문에서는 모든 사람이 어찌어찌하여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분류돼. 평범한 사람은 순종하며 살아야 하고 법률을 뛰어넘을 권리가 없는데, 그 이유는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야. 반면, 비범한 사람은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온갖 방식으로 법률을 뛰어넘을 권리가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비범한 사람이기 때문이야." (p.467)


"그 생각이란, 그때 제가 커피를 마시면서 사적인 대화를 나누던 중 부인에게 얘기했던 것, 즉 이미 인생의 쓴맛을 다 경험한 가난한 처녀와 결혼하는 것이 별 부족 없이 자란 처녀보다 내 생각으론 부부 관계에서 더 이로울 것 같다, 도덕성의 측면에서 더 유용하기 때문이다. 하는 것이었지요." (p.51 - 2권)


"즉 특수한 경우에 해당하는 한 인간이 멋들어지게,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거짓말을 한다고 칩시다. 승리의 쾌재를 울리며 자신의 재치의 열매를 음미하는 찰나, 웬걸, 그는 탁 걸리고 맙니다! 그것도 가장 흥미진진한, 가장 자극적인 순간에 기절을 할 것이란 말입니다. 이거야 병 때문일 수도, 또 때로는 방 안이 너무 갑갑한 탓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어쨌거나 생각의 빌미는 제공한 셈이지요! 거짓말이야 더할 나위 없이 잘했지만 천성을 계산에 넣을 줄 몰랐던 겁니다." (p.123)


"있잖아. 소냐." 그가 갑자기 어떤 영감에 사로잡혀서 말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할 거냐 하면 말이야, 만약 내가 오직 굶주림 때문에 사람을 찔러 죽였다면" 하고 그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고 아리송하지만 진심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랬다면 나는 지금... 행복했을 거야! 이 점 똑똑히 알아 둬!" (p.253)


 '악행'이라는 말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나의 양심은 평온하다. 물론 형사상의 범죄를 저질렀다. 물론 법 조항이 파괴됐고 피를 보았으니, 뭐 그렇다면 법 조항에 대한 대가로 내 머리를 가져가시라...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물론 그런 경우라면 권력을 세습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쟁취한 인류의 은인들 대다수가 최초의 첫걸음을 내딛자마자 처형됐어야 마땅하리라. 하지만 그자들은  그 걸음을 견뎌 냈고 그랬기에 그들은 옳았던 반면 나는 견뎌내지 못했고 그랬기에 나는 스스로에게 그 걸음을 허용할 권리가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 점, 즉 그것을 견뎌 내지 못하고 자수했다는 점에서만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p.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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