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모비딕>과 영화 <하트 오브 더 씨> 그 짜릿한 비교
최근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읽고 있습니다. 열심히 읽던 중 이 소설과 관련된 영화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영화는 두 편이었는데, 실제로 찾아보니 4편의 영화가 검색되었습니다.
처음 기억했던 영화는 1956년에 상영되었던 <모비딕>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고전영화의 반열에 올라있으며, 소설 <모비딕>에서 스토리의 주역인 외다리 선장 에이해브 역할을 그레고리 펙이 맡아서 열연을 펼쳤죠. 전 이 영화를 관람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인용되어서 장면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기억했던 영화는 2015년 개봉되었던 영화 <하트 오브 더 씨>였습니다. 당시 극장에서 관람했었는데, 오늘 넷플릭스로 다시 시청했더니 이 영화는 모비딕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설 모비딕의 배경이 되는 포경선 에섹스 호에 대한 실화를 다룬 이야기였습니다. 영화 시작 부분에 주인공 허먼 멜빌 (소설 <모비딕>의 작가)이 에식스호의 생존자를 찾아가 그가 만났던 흰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소설을 읽고 있던 중이라서 더 집중해서 영화를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소설 속 포경선 이름은 피쿼드호이고 영화 속 배는 앞서 언급했던 에섹스호입니다. 그리고 소설 속에는 주인공 이슈마엘이 자신이 겪었던 흰고래 모비딕에 관한 이야기를 서술해가고 있다면, 이 영화에서는 에섹스호 말단 선원이자 생존자인 토마스 니커슨의 회상이 영화를 이끌어 갑니다.
소설에서는 배의 선장인 외다리 에이해브에 초점이 맞춰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영화에서는 일등 항해사 오웬 체이스에 맞춰져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영화가 재미있는 것이 영화 속 일등 항해서 오웬 체이스 역에 크리스 햄스워스(어벤저스 토르)가, 또 젊은 토마스 니커슨 역에 톰 홀랜드(어벤저스 스파이더맨)가 출연합니다. 낯익은 인물들이 많아서 더 몰입해서 영화를 봤네요. 참고로, 영화에서 주연인 일등 항해사가 소설 <모비딕>에서는 세상 가장 유명한 커피숍 스타벅스의 이름을 만든 "스타벅"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허먼 멜빌이 이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1800년 당시 포경산업(고래잡이)이 왜 활발히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는 석유가 발견되기 전이기 때문에 세상을 밝힐 수 있는 기름은 고래기름뿐이었습니다. 고래 기름은 고래의 지방을 끓여서 얻게 되는 것으로 당시 오일램프(밤에 불을 밝힐 때 사용)의 재료로 이 기름이 사용되면서 항구에 있는 자본가들이 포경산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영화와 소설의 무대가 되는 미국의 메사츄세스주 낸터킷(미 동부 보스턴 옆, 당시 포경 산업의 메카)은 위험하지만 큰돈을 벌 수 있는 포경산업에 뛰어든 자본가와 보험회사들 그리고 선주들, 또 대대로 선장을 배출한 유명한 가문들이 모여들어 활황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포경선은 대서양을 따라 남미를 돌아 태평양으로 향하는 수천 킬로미터의 항해를 하며 고래를 찾습니다. 한번 떠나면 적게는 수개월 많게는 몇 년의 항해를 하기 때문에 목숨을 건 항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선주들은 배를 잃을 수 있어서 위험성이 큰 항해에 배를 빌려주는 대신 고래기름의 큰 지분을 받게 되고, 또 그 위험을 헤지(hedge, 회피/ 분산) 하기 위해 보험사를 끼고 투자를 합니다. (개인적으로 보스턴에 여행을 갔을 때 가장 높은 빌딩이 푸르덴셜 빌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보스턴이 보험사의 메카였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봤습니다.)
소설 <모비딕>에서 이 포경산업의 전반에 대해 책의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 설명합니다. 책을 읽을 때는 이 작가가 고래에 관심이 많은가? 왜 이렇게 포경산업에 관해 많이 써놨지? 생각했었는데, 실제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에섹스호 사건을 알고 나서는 당시 포경산업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다루는 에섹스호의 비극적인 사건이 지금까지도 수많은 매체를 통해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거대한 향유고래의 습격으로 에섹스호가 침몰한 뒤 살아남은 사람들은 작은 보트 3개에 나누어 타고 태평양을 약 90일간 표류하다가 구출되게 됩니다. 그런데 살아남은 자들은 작은 보트 위에서 식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죽음 사람의 사체를 훼손하여 식량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사람고기를 먹으면서 생존을 유지했다는 말이죠. 영화에서는 이 부분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어차피 죽을 사람인데..."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대학원 수업 때 이 사건을 아주 실감 나게 이야기해주신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때는 그 이야기가 소설 <모비딕>의 실화인지 몰랐습니다. ^^
아무튼, 책을 읽다가 영화 생각이 나서 갑작스레 다시 본 영화였는데, 처음 봤던 2015년의 이해도와는 급이 다른 이해를 하게 되었네요. 아마도 책 때문이겠죠.
역시 고전은 이런 재미가 있습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와 과거를 비교해보면서 삶의 지혜와 통찰력을 갖게 되는 것 말입니다.
참, 영화 맨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인 늙은 토머스 니커슨(에섹스호 막내 선원)이 이런 말을 합니다
"얼마 전에 어떤 남자가 펜실베이니아에서 땅에 구멍을 뚫었는데 기름이 나왔다고 하더군. 사실일리가 없어. 땅 속에서 기름이 나오다니. 그럼 얼마나 좋겠나"
여운이 남는 대사였습니다.
영화를 보실 분을 위해 말을 아끼겠지만, 영화 속 에섹스호 선장 조지 폴레드(항해 경험이 없는 선장, 폴레드 가문은 유명한 선장을 배출한 명문가입니다)는 가문의 명예와 돈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에섹스호의 침몰이 날씨 때문이 아닌 고래의 습격 때문이라고 청문회에서 말한다면 투자자나 보험사들이 발을 빼려 할 것이고 그러면 포경산업이 침체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돈과 명예, 그리고 자본가의 배를 불리기 위해 위험천만한 고래잡이에 젊은 생명들을 마냥 희생시킬수만는 없는 일이죠.
마지막 조지 폴레드 선장의 이야기와 일등 항해사 오웬 체이스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이 영화를 보시기를 추천해드립니다. 물론 책 <모비딕>도 꼭 읽어보시고 싶으실 거예요.
^^
즐거운 주말이 지나가고 있네요.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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