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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Feb 07. 2021

만년필로 글씨를 쓰면 왜 예쁘게 써질까?

| feat. 종이책 vs 전자책



최근 다시 시작한 필사 덕분에 만년필을 잡고 있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고운 종이 위에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손을 거쳐 만들어지는 잉크의 번짐은 참 묘한 황홀감을 동반합니다. 원래 종이에 글 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 펜으로 글을 쓸 일은 점점 줄어들지만 그래도 계속 고집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책 필사이고요.

“필사”라는 행동 자체가 갖는 고유한 목적과 의미가 제일 중요한 것이지만, 오늘은 그것보다 만년필로 글을 쓰는 그 느낌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하얀 종이 한 장, 깨끗한 노트 한 페이지를 펼쳐놓고 필통에서 만년필을 꺼냅니다. 한 자루에는 짙은 녹색의 LAMY 잉크를 채웠고, 또 한 자루는 검은색 PARKER 잉크를 채워놓았습니다. 녹색 잉크를 채워둔 만년필은 LAMY Safari라는 모델입니다. 처음 만년필을 접하는 분들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만년필의 촉감을 느끼고자 할 때 많이 사용하는 펜입니다. 저는 이 LAMY펜을 3개째 사용 중입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내구성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닙니다.

검은색 잉크를 채운 만년필은 Waterman 모델로 작년에 부장 진급을 하면서 팀원들에게 선물로 지급받은 것입니다. 제법 묵직하고 제가 좋아하는 세필(EF 촉, 가는 촉)입니다. 작은 글씨 쓰기에 좋지만 채우는 잉크량이 조금 적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입니다.


이 두 개의 펜으로 <절제의 성공학>을 필사합니다. 이 책은 삶에 있어서 절제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일본의 유명한 관상가 미즈노 남보쿠 씨가 쓴 책인데, 통찰력 있는 문장이 많고, 챕터가 짧아서 필사하기 좋습니다. 재작년에 정독으로 한 번 읽었는데, 다시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재독은 필사를 하며 머리에 각인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입니다. 2년 만에 실행에 옮기게 되었네요.

만년필로 글을 쓸때면 항상 글 쓰는 자세를 가다듬게 됩니다. 허리를 곧게 펴고 바른 자세로 펜을 잡습니다. 정성스럽게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할까요? 그런 느낌입니다. 어린 시절 서예학원에서 붓글씨를 쓸 때처럼 제법 경건한 마음이 생깁니다. 펜촉 사이로 잉크가 빠져나와 종이에 스며드는 것을 보면서 한 자 한 자 의미를 만들어가는 손글씨를 씁니다.


손글씨를 쓰면서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은 키보드를 두드릴 때의 그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손글씨가 한 땀 한 땀 바느질이라고 한다면 타자는 미싱기로 드르륵 바느질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뜯어진 옷을 꿰맬 때 손 바느질을 하면서는 이 옷이 왜 떨어졌는지도 생각해보고 바느질 후 수선될 옷을 입을 내 모습도 그려봅니다. 그러면서 정성스럽게 한 땀씩 꿰매 보지만 어딘지 모르게 삐뚤빼뚤합니다.    

하지만 미싱으로 옷을 수선하면 순식간에 바느질이 끝납니다. 간격 차이도 없고 똑바로 바느질이 됩니다. 무언가 생각할 틈도 없습니다. 이 차이가 손글씨와 타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글을 많이 써야 하는 사람, 결과물을 많이 남기는 사람들은 속도와 수정의 편리성 때문에 키보드를 사용합니다. 물론 저 역시 지금 이글도 키보드로 쓰고 있고요. 하지만 천천히 무언가를 생각하면서, 또 의미를 되짚으면서 기록을 하고 싶을 때는 손글씨가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예쁘게 쓸 필요는 없지만 예쁘게 쓰면 내 기분이 좋아지고 또 느리게 쓰다 보니 정성과 노력이 뱁니다. 기호로 의미를 만드는 과정인 글쓰기를 통해 생각이 정리됩니다.

예전에 친구가 제게 이런 질문을 한 적 있습니다.

 독서 많이 하니까 물어보는데, 종이책과 전자책 중에 어떤 독서가  좋다고 생각하는데?”

난 이렇게 말했습니다.

종이책은 읽는 거고, 전자책은 보는 거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저와 비슷한 느낌이신가요?

Read : look and understand the words
See : notice it using your eyes

이런 단어는 영영사전을 찾아보면 의미가 명확해집니다.

다시 돌아가서, 만년필로 글을 쓰면 왜 글씨가 예뻐질까요? 그건 바로 쓰고 있는 글자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자신을 느끼면서 글자에 애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만년필 #글쓰기 #펜글씨 #종이책 #노트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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