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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Feb 09. 2021

왜 아이들은 아쿠아리움을 좋아할까?

| 그냥 내 생각

우리집 어항 아닙니다

아이들은 아쿠아리움을 좋아한다. 이건 변치않는 진리인것 같다. 왜일까?


혹시 그 이유를 생각해본적 있는가? 정신분석학적이나 학문적인 식견은 없어서 이론적으로 이것을 증명할 실력은 없다. 하지만 오랜기간 물고기를 키워오면서 느끼게 된 아주 주관적인 내 생각을 써보려고 한다.



나 역시 어릴 때부터 아쿠아리움을 좋아했다. 물고기의 신기한 모습이 좋았다. 처음 아빠 엄마 손을 잡고 갔었던 부산타워 밑에 있던 아쿠아리움을 아직 잊지 못하는 것은 그곳에서 남긴 가족 사진 때문이 아니라 내 눈과 내 머리가 처음으로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를 현실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지금처럼 바닷물을 끌어와 만든 초대형 수조를 갖춘 아쿠아리움(Aquarium)은 없었다. 1~2m 정도되는 가정형 수족관을 수십개 설치하고서 작은 열대어들을 종류별로 채워넣고서는 손님들에게 물고기들이 줄지어 헤엄치는 것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작이라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열대어 자체가 쉽게 보기 힘든 생물이었기 때문에 입장료 1,000원을 내고 들어가 수십개의 수족관을 들여다 보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황홀한 경험이자 행복이었다.


처음 우리집에 수족관을 들이던 때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4학년 가을, 주택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가면서 아버지는 집에 수족관을 들이겠다는 결정을 하셨다. 집에 수족관을 꾸미기 전에 내가 본 수족관은 동네 소아과에 갈때 가끔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옛날 병원에는 항상 수족관을 설치해놓았다.)


병원에 갈 때마다 길다린 수족관에서 물고기가 유유히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잠시 아픔을 잊고 유리 속 세상에 빠졌다. 아빠랑 택시를 타고 부산 연산로터리 근처에 있는 수족관에서 수조와 물고기를 구입하던 그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아빠는 구피를 포함한 예쁜 열대어를 원하셨고, 나는 수족관에서 처음 본 청거북에 흠뻑 빠졌었다. 결국 2자반짜리 어항과 함께 계획에 없던 작은 50cm 정도의 거북이용 어항을 들였다. 그러면서 우리 네식구의 물생활이 시작됐다. 엄마의 기억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전기세가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우리가족은 저녁이 되면 하염없이 어항을 바라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돌이켜보면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를 오랫동안 쳐다보면서 내가 조금씩 차분해졌던 것 같다. 원래 엄청 까불고 덜렁대던 성격이었는데 한참동안 한곳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그랬던 것 같다. 책을 사보며 모르고 지냈던 열대어들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고, 새끼를 낳는 모습과 자기 새끼들을 잡아먹는 물속 생태계를 두 눈으로 보기도 했다. 보통 물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우리집도 작은 열대어에서 시작해 대형어로 또 금붕어로 시기에 따라 종류를 바꿔가면서 수족관 세팅을 바꿨다. 아마도 아빠는 자동차 한대 정도의 돈을 물생활에 투자하지 않았나 싶다.



결혼을 하면서 내 가정이 생겼다. 아이가 태어났다. 내 아들도 똑같이 물고기를 좋아했다. 부산(고향)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는 손자 손을 잡고 해운대 아쿠아리움을 다녀왔다. 연간 회원권을 끊어 할아버지와 손자는 물 속 데이트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이 이모 집에서 금붕어 한마리를 얻어왔다. 이 금붕어 한마리 때문에 할아버지 댁에 수족관을 다시 들이게 됐다. 그리고 그 여파가 우리집까지 미쳐 우리집에도 수족관을 꾸몄다. 나 역시 옛날 추억 덕분에 수족관을 꾸미는 것이 좋았다.


우리집 어항 아닙니다


작은 어항을 구입해 예쁜 수초항을 만들었다. 기술의 발달인지, 세월의 변화인지 20년이 훌쩍 지난 뒤 다시 꾸미게 된 어항은 예전에 봐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장비와 구성품들로 가득했다. 물론 아름다움도 급이 달랐다. (물론 실력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다) 여과기도 싸구려 중국산부터 독일산이나 일본산과 같이 가격도 몇 십배의 차이가 있었다. 투자하는 돈만큼 더 투명하고 쨍한 물과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맨 위에 있는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인데, 저런 수준의 어항을 집에 둘 수 있다고 생각해보라. 누구나 이런 보기 좋은 자연을 내 집에 두고 살펴보고 싶을 것이다.


나 역시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열대어에서 거북이를 거쳐 해수어까지 손을 댔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오게된 3년 전에 수족관을 정리했는데, 이유는 자꾸 내가 귀중한 생명을 죽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좁은 수족관 속의 생물은 건강할 수 없다. 물의 여과 수준과 광량의 밸런스를 강제로 조절하다보니 자연에서 건강했던 녀석들이 집에만 오면 조금씩 시들해져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물론 내 실력의 부족이 더 큰 문제이긴 했다. 그래서 결국 장비를 모두 처분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다시 꾸미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큰일이다.)



물은 자유롭다. 인간은 물 속에서 호흡을 비롯한 움직임 모두가 부자연스럽지만 물은 아랑곳하지않고 형태와 색깔없이 자유롭게 흘러간다.


어린 시절 수족관을 통해 내가 본 것은 과연 무엇일까?


물의 부력을 이용해 제자리에 멈춰있는 엔젤피시를 좋아했던 나는 아마도 물 속에서 유유히 떠있는 녀석을 보면서 평온함을 상상했었던 것 같다. 물 속 세상은 자유였다. 나도 그 속에서 유유히 흐름을 느끼며 둥둥 떠다니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수족관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현실과 다른 머릿속 그려보던 상상이 눈에 보이는 현실로 물 속에 고스란히 표현되어있기 때문인 것 같다. 새를 보면서 날아다니는 자신을 상상하듯, 물 속의 생물들을 보면서 인간 세상에서 보지 못하는 다양한 색상과 물고기의 형태(모습)에서 자신의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매번 가던 수족관을 자꾸 다시 가자는 이유는 다시봐도 매번 새롭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또 결국 가장 큰 수조 앞에 모이는 이유는 그곳에 가장 큰 물고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상상력이 그 수조만큼 채워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인간은 Micro한 세상을 들여다보면서는 정교함과 참신함을 느끼고, Macro한 자연을 바라보면서는 거대함에 압도당한다. 어릴때는 크고 넓은 것보다는 작고 귀엽고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다. 그러다 점점 나이가 들게되면서 거대하고 광활한 것을 더 좋아하게 된다. 시간에 따라 관심이 달라지는 이유는 그만큼 크고 넓고 대단한 것들을 느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10살에 오른 지리산 천왕봉과 마흔에 오른 천왕봉은 다르다. 내 생각에는 이 차이점이 바로 아이들이 아쿠아리움을 좋아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아직 그들에게는 신기함과 새로움이 더 큰 기쁨을 준다는 것 말이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수족관 #아쿠아리움 #대자연 #세상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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