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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Feb 21. 2021

한국문화의 아름다움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읽고...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읽고 있다.

두 번째 읽게 된 책이다. 1995년, 그리고 2021년 이 순간.


25년 전에는 책장을 넘기기에 급급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다시 읽게 되면서 나는 한국미(美)에 대한 이보다 깊이 있는 묘사를 한 책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몰입해서 읽고 있다. 천천히 한 챕터씩 꼭꼭 씹어가며 읽어볼 만한 책이다. 제법 오랜 기간이 걸리겠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1995년 봄 학교 도서관 개과(오픈되어있는 자료실을 개과라고 불렀다)의 신착도서 칸에서 처음 만났다.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1994년 초판이 발행되었다고 한다. 내 눈에 꽤 일찍 들어온 것이다.


당시 갓 스무 살이 된 나는 왜 이 책에 끌렸을까?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학창 시절 수학여행이나 아람단, 보이스카웃 같은 과외 활동에서 방학 때면 2박 3일 일정으로 버스를 대절해서 여행을 했을 때 이곳을 방문했었던 것 같다. 내 머릿속에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국보 18호 정도로 남아 있었다.


95년 당시 나는 이 책을 읽었고 갑작스레 무량수전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곧바로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영주행 시외버스를 탔었다. 그리고 몇 시간에 걸쳐 부석사를 방문했고 무량수전 앞에서 한참 동안 서성였다. 당시에는 사진기도 없었고 차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냥 봐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움직였었다. 당시 무량수전 앞뜰에서 따뜻한 봄볕을 맞으며 걸터앉아 가방에 든 리포트 용지를 꺼내서 무언가를 끄적대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종이는 지금 없다.)



그리고... 25년 뒤


2021년 2월 20일, 어제 나는 다시 영주 부석사를 찾았다. 사실 이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부터 그때와 똑같은 행동을 해보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래서 당시에 대출해서 읽었던 책을 떠올려 당시의 책과 동일한 표지를 구하고 싶어서 중고서점을 찾아서 구매하는 수고를 했다. 사실 이 책의 제목에 무량수전이 부각되어있지만 책 속에서 무량수전이 차지하는 것은 단 3페이지가 전부다. 하지만 여전히 매우 강렬하게 자극하는 문구들이 가득했다. 그래서 나는 지체 없이 차를 몰았다.


새벽 5시 30분 내비게이션을 켜고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깜깜한 새벽, 좌회전 신호등 앞에서 초록불을 기다리며 생각에 잠겼다. 25년 전 그리고 지금, 나는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지만 참 많이 달라졌다. 주머니에 몇만 원 있던 것이 전부였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보란듯한 자동차와 차가운 커피, 은은한 음악과 함께 한껏 편안한 자세로 기대감에 운전대를 붙잡고 있다.


'내비가 알려주듯 두 시간 반을 달리면 그곳에 도착하겠지? 조금 더 빨리 차를 몰아 무량수전 옆으로 해가 뜨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초행길이라 조금 천천히 달렸기에 풍기 톨게이트에 들어섰을 때 해가 산너머로 올라오고 있었다. 30킬로미터를 더 달려 부석사 앞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예전의 기억과는 너무 달라져있었다. 잘 정리된 주차장과 분수대 그리고 주변의 문닫힌 상가들. 하지만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서 점점 나는 25년 전 그때와 오버랩되고 있었다. 제법 높은 경사를 10여분 올라야 한다는 기억을 되짚으며 매표소에서 표를 끊었다. 표를 끊어주시는 어르신께서 오늘 처음 방문객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새벽 신도들은 매표 없이 들어가셨을 테니 객(客)은 내가 처음일 것이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오르막을 오르는데 여전히 숨이 찼다. 그때도 숨이 찼었는데.


이른 아침이라서 더 그런 것인지 새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귀를 맴돌았다. 인적 없는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새소리와 내 숨소리 그리고 발소리만 가득했다. 가끔 "사부작~~"하면서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산짐승인가 싶어서 조금 움츠려 들었다.


부석사 당간지주

당간지주 앞에 잠시 멈춰 사진을 찍었다. 예전에는 "돌 막대기가 서있네." 정도 뇌까리며 오르막에 힘겨웠는데 지금은 당간지주가 가지는 의미를 알다 보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당간지주 (幢竿支柱)

절에 법회나 기도가 있을 때 절의 입구에는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깃대를 당간(幢竿, 깃발 당/장대 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부석사 당간지주는 보물 제255호로 간결하고 단아한 각 부분의 조각기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9세기 전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무량수전으로 오르는 길. 이른 아침 잘 빗질되어있는 안뜰

조금 더 걸어 부석사 천왕문의 사천왕을 지나 회전문을 넘어 쭉 직선으로 무량수전까지 오르는 길을 선택했다. 부석사 안뜰은 이미 새벽에 스님들이 빗질을 해서 곱게 쓸려있었다. 내 발자국을 남기기 송구해 디딤돌을 따라 조심조심 올라갔다. 범종루를 지나 안양각을 통과하자 드디어 무량수전이 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조금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안쪽에서 두 분의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스님은 아니라서 공양주가 아닐까 생각했다. 무량수전을 한 바퀴 돌면서 그 단아한 모습을 감상했다. 앞쪽으로 5칸에 배치되어있는 6개의 배흘림기둥을 만져보고 살짝 들린 처마도 눈과 사진기에 담았다.


부석사 무량수전 (국보 제18호)

예전에 앉아서 글을 썼던 그 자리에 다시 앉아 저 앞쪽의 태백산맥과 소백산을 바라봤다. 맑은 날씨와 이른 시간 덕에 연무가 낀 산 능선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옆으로 비스듬히 앉아 무량수전과 산을 함께 바라봤다. 최순우 선생이 표현했던 것처럼 "눈 맛이 참 좋다."라는 문장이 절묘함을 실감케 했다.

사진 몇 장을 남기고 그 자리에 앉아서 30분 정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때마침 스님께서 본당 안으로 들어가셨고 신도 몇 분도 신발을 벗고 들어가더니 목탁소리와 함께 아침 불공이 시작되었다. 새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어울리는 맑은 목탁소리가 그 어느 음악과도 견줄 수 없는 조화를 이뤄내고 있었다.

나는 그때처럼 내 기분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25년 전 리포트 용지 대신에 노트북을 꺼내어 몇 자 적어보기 시작했다.

예전에 앉았던 그곳에 앉아서 노트북을 열어 몇 글자 적어본다.

잠시 적던 글을 멈추고 책을 꺼냈다. 그리고 최순우 선생의 글을 낭독해보았다.


부석사 무량수전 (p.78~80)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무량수전은 고려 중기의 건축이지만 우리 민족이 보존해 온 목조 건축 중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오래된 건물임이 틀림없다. 기둥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나타나 있는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봐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 무량수전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지체야말로 석굴암 건축이나 불국사 돌계단의 구조와 함께 우리 건축이 지니는 참 멋, 즉 조상들의 안목과 그 미덕이 어떠하다는 실증을 보여주는 본보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진다. 이 대자연 속에 이렇게 아늑하고도 눈 맛이 시원한 시야를 터줄 줄 아는 한국인, 높지도 얕지도 않은 이 자리를 점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 주고 부처님의 믿음을 더욱 숭엄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 줄 수 있었던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 그 한국인, 지금 우리의 머릿속에 빙빙 도는 그 큰 이름은 부석사의 창건주 의상대사이다.

이 무량수전 앞에서부터 당간지주가 서 있는 절 밖, 그 넓은 터전을 여러층 단으로 닦으면서 그 마무리로 쌓아놓은 긴 석축들이 각기 다른 각도에서 이뤄진 것은 아마도 먼 안산이 지니는 겹겹한 능선의 각도와 조화시키기 위해 풍수사상에서 계산된 계획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석축들의 짜임새를 바라보고 있으면 신라나 고려 사람들이 지녔던 자연과 건조물의 조화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을 것 같고, 그것은 순리의 아름다움이라고 이름 짓고 싶다. 크고 작은 자연석을 섞어서 높고 긴 석축을 쌓아 올리는 일은 자칫 잔재주에 기울기 마련이지만, 이 부석사 석축들을 돌아보고 있으면 이끼 낀 크고 작은 돌들의 모습이 모두 그 석축 속에서 편안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희한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책 속에 담겨있는 무량수전 사진


학창 시절 역사 교과서에 배운 신라와 고려의 역사적 사실과 문화에 대한 몇 페이지의 문장으로는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우리 문화의 깊이 있는 사상이다. 선생의 깊이 있는 안목과 한국의 사랑이 진하게 배어 있는 글이 아닐 수 없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또 학교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우리나라의 수많은 문화재를 보고 듣고 배웠지만 기억에 남아있는 게 거의 없다. 오히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와 니케 상, 바티칸의 피에타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한국 문화재를 볼 식견이 갖추어지지 않았음을 자백하는 것이다.


어찌 고려시대 숭불 정책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을 통일한 것은 가장 약소국으로 불리던 신라였고 그 통일은 나당 연합이라는 김춘추의 전략이 유효했다는 것과 그리하여 이룩된 통일신라시대는 우리나라 문화의 획기적인 번영시대를 만드는 초석이 된다는 시험에 필요한 답안만 쏙쏙 암기했던 내 얕은 지식으로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을 짚어낼 수 있겠는가!


이번에 무량수전을 방문하면서 나는 그동안 어스름하게 가졌던 내 생각을 명확히 했다. 우리나라의 문화재와 역사에 대한 것을 가장 먼저 알고 세계로 눈을 돌려야겠다는 결심이 바로 그것이다. 오래전 결심했던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다시 읽으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식견을 키우고 집 근처 가까운 곳부터 한 군데씩 돌아보면서 옛 선현들의 생각을 되짚어볼 것이다. 물론 그 중심에 이 책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가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최순우 선생이 알려주는 한국의 참멋을 한번 더 읽어보면서 이번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한국의 미술, 이것은 이러한 한국 강산의 마음씨에서 그리고 이 강산의 몸짓 속에서 몸을 벗어날 수는 없다. 쌓이고 쌓인 조상들의 긴 옛이야기와도 같은 것, 그리고 우리의 한숨과 웃음이 뒤섞인 한반도의 표정 같은 것, 마치 묵은 솔밭에서 송이버섯들이 예사로 돋아나듯이 이 땅 위에 예사로 돋아난 조촐한 버섯들, 한국의 미술은 이처럼 한국의 마음씨와 몸짓을 너무나 잘 닮고 있다.
...
한국은 과거의 나라가 아니다. 면면히 전통을 이어 온, 그리고 아직도 젊은 나라다. 미술은 망하지도 죽지도 않았으며 과거의 미술이 아니라 아직도 씩씩한 맥박이 뛰고 있는 살아 있는 미술이다.


참 좋은 책이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무량수전 #부석사 #한국문화 #자랑스런한국인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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