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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Feb 19. 2021

현대판 오디세이아 "모비딕"을 완독 했습니다

| 허먼 멜빌 <모비딕>은 정말 읽어본 뒤 생각이 많아지는 책입니다.



노션(Notion)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 플랫폼을 통해 독서노트를 정리해두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노션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아래 링크로 보시면 훨씬 깔끔하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1-2-0c968603b88a44b28c717b0d970236ed


깜짝 놀라는 순간이 있었다. 900페이지 분량의 마지막 에필로그를 마치면서 역자의 해설을 읽을 때 그랬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순간이었다.


수차례 언급한 적 있지만 고전문학을 읽다 보면 저자의 약력과 그 시대 연표가 소설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정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 <모비딕>도 마찬가지였다. 19세기 미국의 시대적 상황과 현실을 잘 알면 알수록 이 소설의 이해도는 급격히 올라간다. 내가 이 책에서 소름이 돋았던 것은 작년에 읽었던 책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된 에이브러햄 링컨의 정치적 배경이 되었던 "노예해방"이라는 키워드가 이 소설의 저변에서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유튜브를 통해 두 번이나 링컨의 일생을 다뤘다. 노션 링크 참조)


역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멜빌이 <모비딕>을 집필한 19세기 중반의 미국에는 영토의 확장과 물질의 풍요가 가져다준 낙관론적 세계관이 팽배했다.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강조하며 자유 민주주의의 이념을 내세우던 독립 정신이 퇴색하고, 이른바 <명백한 운명>이라는 미명 하에 서부 개척을 신이 내린 소명으로 포장하며 팽창주의에 몰두하던 시기였다. 그런가 하면 10여 년 후에 남북전쟁으로 터지고 마는 정치적 갈등이 물밑으로 곪아 들어가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는데, 그 단초가 된 것이 바로 1850년에 실행된 <도망 노예 송환법>이었다.

1820년에 미주리가 열두 번째 노예주가 되자 뉴햄프셔를 따로 떼어 열두 번째 자유 주로 선언할 정도로 첨예하게 대립하며 신경전을 벌이던 남부와 북부의 세력들은 캘리포니아가 자유주를 선언한 1850년에 뉴멕시코와 유타를 준주로 남겨 놓는다는 골자의 <1850년 타협>을 체결하는 한편, 남부의 노예가 다른 주나 준주로 도망했을 경우 원래의 주로 송환시킨다는 도망 노예 송환법(https://ko.wikipedia.org/wiki/도망노예법)을 제정했다.

앞서 말했듯이 물질적인 풍요가 낳은 낙관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통과된 이 미봉책은 그러나, 노예제 문제를 개별적인 갈등의 표면을 잠시 가리는데 그쳤을 뿐, 명백하게 부당한 내용과 가혹한 법 적용은 오히려 극심한 반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지역 간 적대감을 더욱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았다. 

<모비딕> 2권 p.456 열린책들, 강수정 옮김


링컨의 업적과 일대기를 돌아보면 그의 최고 업적이라고 불리는 "노예해방"이 있고, 이 업적의 불씨를 제공하는 사건이 바로 캔자스-네브라스카법(https://ko.wikipedia.org/wiki/캔자스_네브래스카_법)의 통과다. 역자가 언급한 <도망 노예 송환법>을 봤을 때 나는 캔자스... 법을 떠올렸다. 이렇게 미국의 역사가 소설 속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또, 얼마 전 읽었던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도 1850년 그러니까 이 책이 말하는 시기를 관통하고 있고, 주인공 중 한 명인 짐(흑인 노예)이 남부에서 붙잡히자 원래 주인에게 송환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 또한 <도망 노예 송환법>에 맞닿아 있었다. (어찌 최근에 골랐던 책들이 이렇게 한 바늘에 꿰어질까? 의도한 게 전혀 아니었는데, 이제 내 독서도 봇물이 터지는 건가? ^^)   


아무튼, 다시 <모비딕>으로 돌아가서 이 소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인공 이슈마엘(Ishmael)은 포경선 피쿼드호의 말단 선원으로 발탁되면서 유서 깊은 포경 항구인 낸터컷(보스턴 옆)을 출발한다. 900 페이지 분량의 소설답지 않게 등장인물을 적은 편이라서 이름을 외워야 하는 수고로움은 적은 책이다.

이 책에서 알아야 할 인물 관계도는 간략하다.


<모비딕>의 등장인물   

나 이슈마엘(Ishmael)

선장 에이해브(AHab) : 흰고래 모비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버럭 영감, 40년을 배를 탔다. 선장의 종자 같은 수로 안내인 페달라

일등 항해사 스타벅(Starbuck) :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의 유래가 된 이름, 독실한 기독교인
그의 종자 퀴퀘그(Queequeg) : 식인종, 작살잡이, 이스마엘과 낸터컷에서 룸메이트로 만남

이등 항해사 스터브(Stubb) : 낙천가, 골초로 항상 담배를 물고 있다
그의 종자 타슈테고(Tashtego) : 이교도, 작살잡이

삼등 항해사 플래스크(Flask)
그의 종자 다구(Daggoo) : 흑인, 작살잡이, 야만인

막내 핍(Pip) : 흑인

대장장이 퍼스(Perth) : 60살 넘은 늙은이. 60세가 넘어 인생의 파국을 맞아 죽음 앞에서 배에 오름


등장인물의 간략 소개에서 보듯, 이 소설은 당시 미국의 유색인종에 대한 인식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합심해야 하는 배 안에서 인종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하고 각자의 이해와 모두의 협업 속에서 점점 섞여간다.


당시 미국은 서부 개척의 황금광 시대였으며, 앞서 언급했듯 인종 차별의 갈등이 극대화된 지점이었다. 그래서 해설자들은 미국 포경선 피쿼드호의 항해를 당시 미국의 위기로 상징되는 메타포로 보았다. 고래를 쫓아 모든 걸 내던지고 앞만 보며 나아가는 에이해브, 선장과의 대척점에서 선장을 설득하려는 기독교인 스타벅과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이슈마엘이 있다. 특히 이 소설은 에이해브와 이슈마엘의 두 관점에서 서술되는데, 에이해브의 관점에서는 모비딕을 쫓는 위험과 고난, 복수와 적개심을 이슈마엘의 관점으로는 포경산업과 고래학(박물학적 관점) 그리고 어선에 대한 이해와 배 위에서의 생활상을 중점적으로 그리고 있다.


책의 줄거리는 요약을 해놓은 글이 많으니 검색을 하면 될 것이고, 나는 이 글에서 당시의 포경산업이 의미하는 것을 간단히 언급하고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책의 제목 Moby Dick은 대물을 의미하는 Moby라는 단어와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속어 Dick에서 가져왔다. 제목에서 의미하듯 포경산업은 당시 풍요로운 자본이 집약된 산업이었고 권력과 야욕이 점철된 남자들의 세계였다. 고래기름이 의미하는 것은 당시 이런 자본가들의 욕구의 매개체다. 지금의 석유가 19세기의 고래기름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세상의 불을 밝히는 연료, 금은보화의 가치를 갖는 값비싼 물질이 바다라는 미지의 영역에서 인간을 꼬드기고 있었다. 젊고 야망이 있고 욕심이 넘치는 남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드넓은 바다로 뛰어들어 한탕에 목숨을 걸고, 그 목숨을 이용하여 자본가들은 자신의 배를 불렸다. 영화 <Heart of the Sea>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대사를 그냥 넘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사실 때문이다.


"얼마 전에 어떤 남자가 펜실베이니아에서 땅에 구멍을 뚫었는데 기름이 나왔다고 하더군. 사실일리가 없어. 땅 속에서 기름이 나오다니. 그럼 얼마나 좋겠나"

 - 영화 <하트 오브 더 씨> 마지막 대사 중에서 -


젊은이들의 목숨을 담보한 부와 명예의 플레이 그라운드 바다가 아닌, 두발로 딛고서서 구덩이를 파서 얻을 수 있는 기름이 있다는 것은 두려움과 공포가 한순간 해소되는 인간 활동의 전환점이 되는 획기적인 사건이다.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처음 무선 리모컨으로 집의 TV를 켰을 때의 놀라운 순간. 아버지가 9번 틀어보라고 말하면 리모컨이 되어 부리나케 달려가 드르륵 채널을 돌리던 세상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198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당시 인터넷이라는 존재를 몰랐다. 당시 통신은 모두 유선이었다. 벽돌만 한 무선 전화기가 집안 거실에 놓이고, 컴퓨터가 한 대씩 집에 설치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문명의 이기에서 기회를 발견하였을까? 또, 그 발전의 그늘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목숨을 잃어갔을까?


<모비딕>을 덮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스쳤다. 마흔다섯, 아직 모험이 좋고 도전이 좋다. 하지만 항상 위험을 헤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피쿼드호가 침몰하던 순간 스타벅이 가졌던 생각처럼, 우연이라면 우연인 피쿼드호의 유일한 생존자 이슈마엘이 다음날 레이철호에 발견되던 순간처럼 말이다.


참 좋은 책 한 권 읽었다.


#모비딕 #피쿼드호 #허먼멜빌 #고전문학 #미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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