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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Jul 09. 2021

그때 내가 지금의 나를 상상할 수 있었다면?

| 지금의 나는 존재할까?


 

타임머신(Time Machine)
타임워프(Time Warp, 시간 왜곡)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가끔씩 경험해보는 일어날 수 없는 일, 하지만 일어났으면 하고 바라는 일이 바로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는 것과 시간을 뛰어넘어보는 것이다.


얼마 전 영화 <소스코드(Source Code)>를 봐서일까? 아니면 최근 독자에게서 받은 메일 때문일까?

오늘 아침 모니터의 흰 여백을 채워가던 글을 몽땅 지우고 갑작스럽게 이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이 글이 다시 어디로 튈지는 모를 일이다.

 


 

초중고를 거처 대학까지 서른이 되기 전까지 약 20년의 학창 시절을 보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내게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땐 전혀 몰랐지만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했다. 내 가정이 생기고 아이가 생기면서 내 인생이 아닌 타인(가족)의 삶에 책임감이 생겼다.

내가 던지는 말과 행동에 영향력이 생겼고, 그것을 따르고 반대하는 일이 생기면서 내 삶에도 우연과 필연이 반복적으로 스쳤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나다. 20년 전, 10년 전, 아니 불과 5년 전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내 모습이 현재의 나다.

 


 


나는 어떤 영향으로 여기까지 걸어오게 된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아빠와 엄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닌 아빠와 엄마.

 

돌이켜보면 지금 나는 이 두 분과 함께 살아온 시간보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훨씬 많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면서부터 방학 때 들렀던 곳이 부모님의 집이었다. 물론 내 집이기도 했다. 소유의 개념이 아닌 당연히 내가 있어도 되는, 내 서식지 같은, 오래된 츄리닝같이 편안한 곳, 바로 그곳.


방학이 끝나고 다시 기숙사나 오피스텔로 돌아갈 때면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엄마의 품은 늘 따뜻했고 혼자 지냈던 그 공간은 보일러를 틀어놔도 싸늘했다.    

 



결혼을 하고 2~3년쯤 지났을까? 고향의 넓은 집이 아내와 함께 지내던 작은 집보다 편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늘 쓰던 침대였지만 이상하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엄마의 밥과 반찬은 내 입에 너무 잘 맞았지만, 맛이 덜한 아내의 밥상이 더 편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검은 머리를 찾기가 더 어려운 아빠와 엄마, 자신들의 전부를 내어주며 키워온 자식인데 이제는 그런 자식들이 스스로 큰 것처럼 선을 넘기가 일쑤다. 지금 내가 내 아들과 딸을 보며 그때의 아빠와 엄마를 떠올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삶의 윤회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아빠와 엄마는 내가 성장하고 공부하고 놀고 친구를 사귀고 애인을 만나고 오락하며 밤을 새우고 말 안 듣고 속썩였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지금 내가 내 아이를 보고 있으면 '저래서 인간 구실 제대로 할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당신도 그랬겠지?

 

아무튼 어쩌다 보니 지금의 인간 김경태가 되었는데 잘 살아왔는지? 못 살아왔는지?를 떠나 지금의 내가 스스로 부끄럽지는 않아서 퍽 다행이다.

 


 

얼마 전 내 책 <독서의 맛>을 읽은 대학생 독자 한분이 내게 메일을 보내왔다. 메일 속에서 그는 내게 여러 질문과 함께 자신의 고민을 상담하고 싶어 했다.

메일을 읽고 또 읽으면서 나는 불현듯 스무 살의 나를 소환했다.

 

대학생인 독자는 현재에 불만족하고 있었다. 학창 시절을 잘못 보낸 탓에 원하던 전공이 아닌 다른 것을 공부하고 있었고 계속 미련이 남는다고 했다. 그래서 자퇴를 결심했고, 군생활을 마치고 나서 다시 입시를 보고 원했던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스무 살의 독자에게 답장을 쓰면서 덜컥 겁이 났다. 타인의 삶에 개입을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인간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지만 내 말과 글이 한 사람의 인생에 중요한 결정의 요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도 답장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었다.

 



나의 스무 살, 대학생이 되어 부모의 품을 떠나 방종 같은 자유를 누리던 그때 그 시절. 두려움 따위는 없었고, 나는 그저 나라는 존재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그런 때였다. 물론 더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과 성적에 맞춘 전공에 불만이 있었지만 대학의 그 자유는 이 모든 것들을 상쇄하고 남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나는 그 자유함을 한없이 동경했었고 원 없이 누렸다. 때가 되면 꼬박꼬박 통장에 들어오는 부모님의 용돈은 이 자유에 기름을 부었다. 학생의 본분은 뒷전이었고 나는 내가 궁금해하던 것들을 발견하고 익히는데 시간을 쏟았다. 서울은 넓었고, 대학 도서관의 책은 넘쳐났다. 모르는 노선의 버스를 타고 종점을 오갔고, 지하철을 순환하면서 사람 구경을 했다. 밤새 도서관에서 무협지와 판타지를 쌓아두고 읽었다. 만화방에서 삼시 세 끼를 먹어가며 코믹스에 열광했고, 새로운 모임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밤새 술을 마시며 자유를 떠들었다.

 

그렇게 20대를 보낸 내가 열심히 살려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젊은 청춘에게 조언을 한다는 게 개가 웃을 일이다. 그런데 자꾸만 나는 답장을 써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결국 답장을 썼고 어제저녁 [발신] 버튼을 눌렀다.

 

잘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에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었다.

 

"당장 결단하지는 말라"

 

아래는 내가 썼던 답장의 일부다.

 

이 답장으로 이 글을 끝내려고 한다.

 

나의 스무 살 그때 내가 지금의 내 모습일 것을 알았다면 나는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그때 그 자유함의 덕분으로 지금 이렇게 사는 걸까? 아니면 그 자유의 대가로 이렇게 사는 걸까?





안녕하세요. XXX님.


김경태입니다. 답장이 너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일이 있었다."라는 변명을 해봅니다.


바로 문의하신 부분에 대해 제 생각을 간단히 말씀드려 볼게요.


먼저 현재 대학교를 자퇴하고 군 복무 후 재수를 마음을 먹었다는 글을 남겨주셨습니다.

이 문장을 미루어 짐작해보면 현재 대학생이며 아직 입대를 하지 않으셨고 입대를 준비 중이신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짐작한 상황이 맞다면 우선 자퇴서를 제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 자퇴서를 제출하셨거나 제출을 포기하지 못하시겠다면  학부 행정실에 자퇴서를 제출한 뒤에도 훗날 재입학이 가능한지  알아보십시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지금 바로 입시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1 반이나 2 후의 미래를 지금 결정해두는 것은 성급하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배수진을 치고 입시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물러설  없는 한계선으로 자신을 몰아넣으면서 의지를 꺾고 싶지 않겠다는 결심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다만, XX님에게 다가올 2년은 매우  시간입니다. 또한 전혀 겪어보지 못할 경험을 하시 것입니다.


앞으로 겪게 될 약 700일의 기간은 그동안 미처 고민해보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여러 부분을 충분히 되돌아보실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없이 고민을 하셨겠지만 또한 달라질  있는 것이 사람의 생각입니다. 래서 자퇴라는 큰 변화의 결정은 제대 후에 하더라도 전혀 늦지 으니 2 뒤로 미뤄두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약 25년 전 육군으로 강원도 원주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가기 싫은 군대였고, 굉장히 고생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곳 역시 사람이 모여사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또래의 남자들이 모여있어서 의기투합도 잘되고 무척 재미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군대라는 또 하나의 작은 세상에서 XX님은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어처구니없는 불합리도 겪어보게 될 것이고, 피보다 진한 눈물도 흘리게 될 것입니다.

특히 저는 군생활을 하면서 좋은 선임들의 조언으로 양질의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읽었던 책이 한국문학과 일본 문학이었습니다. (이외수, 조정래, 박범신, 김홍신, 하루키, 다자이 오사무 등...)

XX님도 지금 책을 읽으신다고 하니 군대 생활이 조금씩 자유로워지면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책 추천을 언급하셨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20대 초반이시면 소설을 권해드립니다.


제 책 같은 자기 계발서가 문장이 눈에 잘 맞고 직접적인 표현으로 시원시원하게 기억될지 몰라도 생각의 깊이를 더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또한 경제 경영 서적과 현재의 이슈를 직접적으로 다룬 책들은 나중에 읽어도 늦지 않습니다. 20대의 시기에는 생각의 폭을 넓히고, 인간에 대한 속성을 조금씩 이해하는 눈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는 소설이 가장 좋습니다. 특히 고전을 추천드립니다.


비유와 은유, 그리고 역사와 철학이 응집되어있는 인간들의 이야기로 가득  재미난 소설을 많이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어휘력이 부족하시면 소설과 병행해 좋은 작가들의 에세이를 읽으시면 좋습니다. 소설은 상상력을 살찌울 것이고, 에세이는 표현력과 감성을 끌어올릴 것입니다.



XXX님.

2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건 2년이 지난  되돌아봤을  느끼는 감정입니다. 하루 24시간은 깁니다. 그것을 700 반복하는 것은 매우  시간입니다. XX님의 인생을 통틀어  10% 달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벌써 자신의 미래를 재단해두지 마시고 천천히 그리고 차분히 시간을 보내면서 상황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 XX님의 미래를 생각하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은 하지 못했던  때문에 후회가 지배적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2 뒤에는 하고 싶은 새로운  때문에 가슴이 뛸지도 모릅니다.


시간은 정직합니다. 앞으로 맞이하게 될 시간은 서서히 그러나 반드시 XX님의 미래를 보여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메일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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