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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Jul 15. 2021

자녀의 첫 성적표를 받았다

| 부모의 기대감에 맞서는 자녀의 성적표




 2 아들이 어제 방학을 했다. 처음으로 아이의 성적표를 받아보았다.


요즘은 학교의 교육 운영방침이 바뀌어 80~90년대 초중고등학교를 나온 세대와는 다르게 자녀의 첫 정식 시험 성적을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 받아보게 된다. 초등학교에는 아예 시험이 없는 곳도 있다. 그래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예전처럼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도덕/ 역사/ 체육/ 미술/ 음악/ 기술/ 가정... 과 같이 과목별 점수와 반등수, 전교 등수를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물론 성적표 비슷한 것은 여러 번 전달받았었다. 하지만 그 서류에는 아이의 정성적인 상태에 대한 표현만 있었고 정량적인 데이터는 없었다. 물론 여러 학원을 릴레이하고 있기 때문에 학원에서 받아보는 리포트를 보면서 대략적으로 녀석들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교육 방식은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들의 실력을 빨리 알아차리고 적절하게 대응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아이들 입장에서는 너무 어릴 때부터 겪게 되는 입시(좋은 학교를 열망하는 부모의 기대감)에 대한 부담이 줄기 때문에 '이해하지 말고 일단 외워!'라는 단순 암기 위주의 교육을 탈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부모의 교육열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급진적인 교육체계 전환이 "사교육"이라는 부모의 재력이 개입 가능한 넓은 시장을 만들어버렸다.


요즘 부모들의 지배적인 생각은 아마도 "공부는 학원에서 배우고, 학교에서는 교우관계와 수행평가를 챙긴다."가 아닐까? 그 결과 전국의 중고등학교 앞 수많은 학원들 중 예상문제 적중률이 높은 학원에는 수강생들이 넘쳐난다. 몇 년 전만 해도 국어/영어/수학을 학원에서 챙긴다고 했는데, 이제는 전과목을 학원에서 챙긴다. 부모는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을 학원 계좌로 보내고 학원은 그 돈으로 더 적중률이 높은 문제를 발견하는데 노력한다. 자녀들의 교육비로 월급의 절반 가까이를 아니 거의 전부를, 어쩌면 빛을 내서 충당하고 있다.


나도 이런 부모 중의 한 명이다.




아무튼 어제 처음으로 학교에서 발행한 아이의 성적표를 받아보았다. 독자들의 예상처럼 매우 실망스러웠다. 매우라는 말로는 표현이 안될 만큼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아이와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면서 흥분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었던 때를 떠올려보았다. 아니, 처음으로 전교 석차가 나왔던 그때를 떠올려보았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녀의 성적에 매우 관심이 많았고, 그 기대감 때문에 나는 최선을 다해 공부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것이 훨씬 재미있었다. 하지만 좋은 성적표를 받아서 부모님께 보여드리는 날이면 기뻤다. 물론 성적이 좋지 못하면 우울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 아이는 성적표와 자신을 분리시켜 이야기하고 있었다.


엄마의 키를 훌쩍 넘어 커버린, 코 밑 수염이 거뭇거뭇한 녀석을 계속 쳐다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누구에게 욕을 할 수도 질문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같이 고민하는 아내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방학기간 동안 공부보다는 운동을 시키기로 했다. 방학이면 의례 매일 늦잠에 오락과 유튜브로 신체활동이 전무해지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이고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리면 생각도 조금씩 정직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늦은 밤 방에 박혀있는 아이에게 아내가 다가가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 저녁도 안 먹었는데 엄마가 뭐 해줄까?"



갑자기 울컥했다.


성적은 성적이고, 자식은 사랑이다.





- 아빠 김경태 -



#성적표 #사랑 #맘대로안되는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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