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기롭게 고전을 선택해보자
지난 몇 번의 글에서 언급한 적 있듯, 올해부터 10년간 인문학 고전 100선을 선정하고 나만의 속도로 읽어나가는 프로젝트를 마음먹었다. 정확히 100권이 될지 더 될지 덜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선 목표는 100권으로 정했고 지난 1월부터 차곡차곡 읽기 시작했다. 타깃은 1년 10~12권이다. 적어도 매달 한 권의 인문학 책을 읽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마흔을 조금 넘게 살아보니 결국 인생은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식을 배우고 익혀서 일을 만들고 해결하고, 그 일을 통해 나를 발전시키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이런 삶의 전반적인 활동의 기저에는 "관계"라는 것이 존재한다. 결국 우리는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간다. 작게는 가족부터 단체, 지역, 국가라는 틀 안에서 내 모든 활동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매일 일을 하고 있지만 일의 목적인 성과는 본연의 일(작업)에서 얻는 것보다 그 일에 엮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는 결론에 닿았다. 그래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물론 우리 모두는 스스로 명확히 정의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알게 모르게 관계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파악해가고 있다. 하지만 나뭇잎 한 장도 정밀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는 것처럼, 인간이 살아가면서 이룩해놓은 사상과 문화, 철학 등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분명 지금껏 살면서도 인지하지 못했던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사상의 엑기스라고 일컫는 고전문학을 체계적으로 골라서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 <군주론> <죄와 벌> <노인과 바다>... 많은 책이 떠오를 것이다. 나 역시 처음 이 목표를 정했을 때는 내 서재에 꽂혀있는 문학작품 중에서 몇 권을 골라서 시작했다. 브런치의 이전 글 목록에서 알 수 있듯 <죄와 벌>, <허클베리핀의 모험>, <모비딕>으로 시작했다는 말이다. 일단 시작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방향은 시작하고 수정하면 된다고 믿었다. 이렇듯 호기롭게 시작했던 고전 읽기의 템포가 조금씩 느슨해질 즈음 책 선택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꼭 문학작품이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경제/경영서나 자기 계발서 중에도 오랫동안 꾸준히 읽히는 책들도 있는데 이런 것들도 포함하자."
그래서 <The Goal> <Tipping Point> <보랏빛 소가 온다> <탤런트 코드> 같은 유명한 책을 추가해 읽었다. 또, 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싶다는 생각에 이문열 평역 <삼국지>, 조정래의 <아리랑> 같은 역사소설도 포함했다. 점점 읽고 싶은 책이 늘면서 "서재 책을 통째로 다 읽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희망적인 불합리가 생겼다.
고전문학 작품이라는 한 방향에서 차츰 문어발 식으로 관심 분야가 확장되면서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무언가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잡식성이 되었다고 할까?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고전을 어떻게 읽는지 조사해보았다. 또, 국내와 해외 대학들이 선정한 책들을 갈무리해서 살펴보았다.
여러분도 많이 들어봤을 거다. 서울대 선정 고전 100선, 하버드 선정 고전 100선 같은 것 말이다. 이와 관련된 검색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시카고 대학이 선정한 고전 100선"이라 일컫는 <시카고 플랜(Chicago Plan)>을 알 것이다. 나 역시 몇 년 전 관련된 글을 에버노트에 저장해 두고 있었다. 물론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번 기회에 이 시카고 플랜을 본격적으로 알아보았고 그 대학에서 선정한 책과 하버드, 스탠퍼드, 서울대, 성균관대 등 여러 대학에서 선정한 책들을 리스트로 만든 뒤 공통분모를 찾아 나갔다.
<시카고 플랜>
미국 대부호 록펠러가 1892년 설립한 대학인 시카고 대학은 설립 후 약 40년간 평범한 삼류대학에 물러 있었다. 그런데 1929년 5대 총장으로 취임한 로버트 허친스는 "시카고 플랜"을 시행하게 된다. 이 플랜은 "시카고 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졸업 때까지 반드시 학교에서 지정한 세계의 위대한 고전 100권을 외울 정도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대학 내 많은 반발이 있었지만 그는 끝까지 이 계획을 관철시킨다. 그리고 몇 년 뒤, 시카고 대학은 일약 세계적인 명문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 플랜은 단순히 책만 읽는 것이 아닌 3가지 과제를 통해 책의 이해도를 높이고, 생각의 틀을 혁신할 수 있도록 했다.
1. 모델을 정하라.
2. 영원불변한 가치를 발견하라.
3. 발견한 가치에 대하여 꿈과 비전을 가져라.
이 시카고 플랜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1929년 ~ 현재까지 시카고대학교 졸업생 중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 90명이 넘는다. 그래서 이 플랜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인문학 공부법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시카고 플랜>을 살펴보면서 매우 체계적이라고 판단했던 근거는 1~9년 차로 나누어 단계별로 분야를 확장해가면서 읽어야 할 책 목록을 정해두었기 때문이었다. 앞서 내 사례를 언급했지만 보통은 나처럼 두서없이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멈춘다. 하지만 이 플랜에서는 숙제처럼 연차별로 점점 수준과 깊이를 더해가며 고전을 탐독해 나갈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해두었다. 또한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이 명확하면 달성률이 수치로 측정 가능하다. 숫자는 달성을 부추긴다.
물론 위에서 정리한 책의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시작부터 <소크라테스의 변명> <안티고네> <영웅전> 같은 책으로 굉장히 수준 높은 것은 함정이다. 그리고 미국 대학이다 보니 미국 역사에 관련된 책과 기독교 관련 서적도 제법 많다. 그래서 나는 외국 대학의 리스트와 한국 대학의 추천리스트 그리고 내 개인적인 리스트를 버무려 리스트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아직 수년간의 연도별 배치는 하지 못했다. 물론 100권을 다 채우지도 않았다. 현재까지 약 40권을 선정했고 시간을 두고 고민하면서 책을 추가하기로 마음먹었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책을 읽다 보면 다음에 읽을 책이 보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일단 목록을 열어두고 차곡차곡 수집하기로 했다.
자 그럼 내가 선정한 고전 읽기 100선 중 일부를 공개해보겠다. (최근 읽었던 책들은 제외했다)
맥베스 - 셰익스피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테라
대성당 - 레이먼드 카버
내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 - 앤서니 라빈스
아리랑 - 조정래
토지 - 박경리
광장 - 최인훈
이반 일리치의 죽음 - 톨스토이
시민의 반항 - 헨리 데이비드 소로
페스트 - 알베르 카뮈
그리스 로마 신화 - 이윤기 역
무진기행 - 김승옥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도스토예프스키
로마제국 쇠망사 - 에드워드 기번
아이네이스 - 베르길리우스
오디세이아 - 호메로스
일리아드 - 호메로스
돈키호테 - 세르반테스
협상의 법칙 - 허브 코엔
시간의 역사 - 스티븐 호킹
료마가 간다 - 시바 료타로
마의산 - 토마스 만
목민심서 - 정약용
징비록 - 유성룡
칼의 노래 - 김훈
맥스웰 몰츠의 성공의 법칙 - 맥스웰 몰츠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1Q84 - 무라카미 하루키
로마인 이야기 - 시오노 나나미
해리포터 시리즈 - 조앤 롤링
얼음과 불의 노래 - 조지 R.R 마틴
드래곤라자 - 이영도
셜록홈스 시리즈 - 코난 도일
엘러건트 유니버스 - 브라이언 그랜
서양 미술사 - 곰브리치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꿀벌과 게릴라 - 게리 해멀
이탈리아 기행 - 괴테
로마인 이야기 - 시오노 나나미
키보드로 제목을 써보니 읽고 싶은 생각이 물씬 든다. 여러분도 고전문학 읽기에 관심이 있다면 자시만의 리스트를 만들어보기 바란다. 인터넷을 뒤져 누군가의 리스트를 갈무리해서 한 권씩 읽어나가는 것보다 리서치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고전문학 리스트를 만들다 보면 조금씩 책들의 관계가 보일 것이다. 내가 인터넷에서 복사/붙여 넣기 할 수 있는 대학별 추천 고전을 직접 손으로 타이핑해본 이유도 직접 기록해보면 중첩되는 책들과 그들이 선정한 책이 지향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도 자신만의 고전을 선정하고 읽어가면서 독서의 즐거움과 인생의 인사이트를 얻었으면 좋겠다. 분명 이런 책들은 여러분에게 시야를 넓혀주고 새로운 혜안을 뜨게 만들 것이다.
반드시...
- 작가 김경태 -
참고) 이렇게 고전 리스트를 정하고 한 권씩 읽어낼 때마다 독서노트에 간단하게 기록하고 글을 쓰고, 그것을 [노션] 같은 툴에 저장해놓는다면 자신만의 멋진 Web Site 독서노트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아래 사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