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독(讀)한맛
어린 시절 나는 매일 친구들과 밖에서 뛰어놀았다. 학교를 마치고 동네 형들과 함께 구슬치기, 딱지놀이, 술래잡기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 해 질 녘이면 엄마는 공터로 나와 놀이에 흠뻑 빠져있던 누나와 나를 집으로 데려갔고, 우리는 씻고 밥 먹고 숙제하고 TV 보며 하루를 보내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비 오는 날이나 가끔 함께 놀 친구가 없던 날이면 나는 방에서 디즈니 그림책을 읽었다. 항상 10권을 통째로 뽑아서 곁에 두고 한 권씩 읽었다. 100번은 넘게 읽었을 거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반복을 지겨워하지 않는다. 같은 내용을 10번, 100번 읽어도 항상 새롭다. 매번 같은 곳에서 웃고, 같은 장면에서 흥분한다. 나 역시 그 책을 수없이 읽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항상 새로웠고 재미있었다. 디즈니 그림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왜 우리 집에는 이 책이 10권밖에 없는 것인지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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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여러분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소재가 비단 책이 아닐지는 몰라도 어릴 때 미치도록 갖고 싶었던 그 무엇 말이다. 우리는 모두 이런 절절한 간절함을 품은 채로 태어났다. 마트의 장난감 판매대에서 떼쓰며 부모와 실랑이를 벌이는 아이들이 한두 명이 아닌 걸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스칠 때면 나는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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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 사는 것을 좋아하고, 빌리는 것을 좋아하고,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 덕분에 지금 내 서재에는 책장, 책상 그리고 바닥에까지 책이 가득하다. 책을 좋아해 가까이 두다 보니 이제는 글을 쓰는 것까지 좋아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책을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억을 되짚다 보니 계몽사의 디즈니 그림책이 처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책을 좋아했던 것으로 하기로 했다. 즉, 나는 7살 유치원생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생각나는 책이 몇 권 있다. 최영재 선생의 『별난 국민학교』, 에릭 시걸의 『닥터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스우 타운센드의 『아드리안 몰의 비밀일기』, 이우혁의 『퇴마록』, V.C 앤드류스의 『다락방 시리즈』. 모두 학창시절 내 관심을 책에 묶어둘 수 있게 해준 소설책이다. 읽은 시기는 달랐지만, 이 책들이 나를 꿈꾸게 했고, 나를 흥분시켰고, 때로는 나를 위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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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후, 지금은 아내가 된 그녀를 만나면서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를 읽었다. 그때까지 무협지는 자주 읽었어도 판타지는 아주 가끔 들춰보는 정도였는데, 그녀가 판타지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또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녀가 읽었던 책들을 답습해갔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부산 행 기차를 타는 날이면 내 가방에는 항상 몇 권의 판타지 소설이 자리했다. 그녀가 들려주는 판타지 소설의 이야기에 흥분했고, 내가 이해하기 시작한 판타지 세계관을 그녀의 것에 맞춰 그려낼 수 있도록 열심히 읽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함께 할 미래를 그리게 된 것 같다.
이렇듯 내 삶의 곳곳에는 책이 함께하고 있다. 여러분도 자신의 과거를 한번 돌이켜보라. 무엇이 자신의 삶을 이끌어왔고 지금까지 함께 해오고 있는가? 분명 여러분들도 생각나는 책이 몇 권 있을 것이다. 물론 책이 아닐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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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의맛> 1장 01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