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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Apr 21. 2020

작은 몰스킨 노트를 6년간 들고다니면 생기는 일

휘발되는 생각을 잡아두면


시시각각 변하는 내 머릿속 관심사 중에 10년이 넘도록 변함없이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뭘까 고민을 해보다 오랫동안 지니고 다니던 포켓 다이어리를 펼쳐보았다. 손바닥 크기의 몰스킨 다이어리인데 첫 페이지의 기록이 2015년 1월 2일이었다. 벌써 6년째 같은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업무수첩이나 그 외 다른 것들을 정리하는 노트가 많아서 자주 쓰지는 않는데, 가끔 무언가를 기록하고 싶은 순간 메모지가 없을 경우를 대비해서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던 녀석이었다. 이 포켓 다이어리의 페이지를 채우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아마도 내가 평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던 것들이 아닐까 생각이 미쳤다.



꼭 적어두고 싶은 순간에 슬쩍 꺼내 쓰는 노트라면, 꼭 적어두고 싶었다는건, 굳이 잊고 싶지 않아 써두었다는건 아마도 내가 애착하고 있는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닐까?




첫 줄을 장식하고 있는 단어는 “반야”였다. 


기억을 떠올려보니 장인어른과 동서와 술자리에서 이런 저런 얘기중 불교에 관심이 깊은 두 분이서 반야심경을 얘기하고 있었던 때의 기록인 것 같다. 그 때 나는 두분이서 오가는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반야”가 뭐지?를 생각했고, 찾아보고자 적어두었다.



“반야”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불교 용어다. 사전을 찾아보면 “모든 사물의 본래의 양상을 이해하고 불법의 진실된 모습을 파악하는 지성의 작용”이라고 되어있다. 어렵다. 


관심은 있었지만 아직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않은 관심사다. 시간이 나를 장인어른처럼 사경(불교 경전을 필사하는 것)으로 이끌어갈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오십을 넘기면 시작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만) 아직은 불교에 대한 공부보다는 다른 걸 익히고 싶은가 보다.





책 제목들과 책의 내용 발췌


세스 고딘의 <이카루스 이야기>에 대한 발췌 내용이 작은 노트에 잔뜩 쓰여있다. 

다시 읽어도 좋은 문장들이다. 잠시 베껴 써본다.



“하지만 나는 내 과거의 어떤 부분도 지우고 싶지 않다. 항상 있었던 사업적인 어려움조차 지우고 싶지 않다. 그건 그러한 일들 모두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며, 더 나은 상황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다만 좀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하는 것은 한 가지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결국 다 잘 될 것이며, 고통은 여정의 일부이고, 그러한 고통이 있기에 여정이 가치 있다는 사실이다.


그 외에도 읽었던 책들의 내용 중 좋은 문장들을 발췌했고, 옆에 내 생각이 잔뜩 써있다.

...





여행 관련 내용들


여행을 준비하고 출발하고 여행 중에 발생하는 여러 메모들을 잔뜩 이 노트에 기록해두었다. 해야 할 예약들, 가서 경험해야 할 것들, 비용, 일정, 그리고 여행의 목적까지.


준비물을 잔뜩 열거해두고 한 가지씩 배낭에 챙겨 넣었는지 체크도 되어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된 여행지의 정보를 적어두었다. 


가보고 싶은 곳 : 충남 온양 봉곡사 (다산이 있었던 곳) 이런 식으로 말이다.




새해 목표 및 각종 추진항목에 대한 목표와 납기


[2015년 목표 수립을 위한 준비사항]이라는 제목으로 잔뜩 글을 써놓았다. 아마도 대중교통으로 이동 중에 혼자 끄적인 노트인듯하다. 그리고 내 서재에 대한 이름을 정하자는 계획도 쓰여있다. 아마도 이것을 토대로 내 서재를 “몽여재”라고 정했을 것이다. 


또한 독서노트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도 쓰여있다. 회사 폴더를 정리하는 좋은 방법에 대한 내 고민도 쓰여있다. (웃기다)


놀란 것이 2015년 메모에 [ Bucket List ]라며 베니스의 산 마르코 광장에서 아내와 함께 커피를 마시겠다는 내용이 쓰여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곤돌라를 타겠다는 것도 있다.


이건 2018년에 정확히 이뤄냈다. (신기방기)


45세 이전에 반드시 실행을 할 것이라며 써 둔 것도 있다. 바로 “외국에서 1년 살기”다. 올해 45세인 나는 아직 이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외국 나이로 아직 43세이니 2년 남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것도 곧 이루어질 것이다. 외국에서 1년 살기 아래쪽에 어떤 도시를 선택할지에 대한 참고사항이 적혀있는데 이것도 재미있다.


1. 안전한 도시 

2. 대학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 

3. 아이들의 교육이 가능해야 한다. 

4.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ㅎㅎㅎ


그리고 외국에서의 영어공부에 대한 원대한 계획도 적혀있다. 부끄럽다. 




생각의 씨앗들


마지막으로 노트에 적혀있던 것들의 대부분은 책을 읽다 발견한 각종 생각의 연결고리들이다. 생각이 발전하면서 떠오른 단어나 소재를 놓치기 싫어서 [check] 란을 만들어 기록해 두었다.


예를 들어 2017년 5월 18일에는 518에 대한 정확한 기록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겠다는 글을 적어두었다. 그리고 찾아본 뒤 소감도 적혀있다. 


“오늘은 518.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매일매일의 뉴스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사이다 같은 뉴스다.”라는 생각과 함께, 정치라는 단어에 대해 내 생각을 정리해야겠다는 또 다른 숙제를 [check] 항목에 남겨두었다. 


그리고 사용 중이던 여러 종류의 몰스킨(moleskine) 노트 중 어떤 종류의 노트가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고 활용도가 높은지에 대한 생각도 적혀있다.


또, 그해 여름 이사를 가는 것에 앞서 정말 내가 갖고 싶은 공간에 대한 묘사도 해놓았다.


“돈이 허락한다면... 2층 집을 사서 사방을 개방하고 주변 사람 누구나 드나들면서 편하고 자유롭게 뭐든지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나는 한편에서 음악과 함께 음료를 마시며 사람들과 토론하고 아내, 아들, 딸 모두 각자 무엇을 하다.  그리고 우리를 알지 못하는 누군가도 그곳에서 서로 알게 모르게 친분을 느낀다. 서로의 문화를 느낌으로 공유하고, 희망을 얘기하고, 꿈을 나누며 삶을 만들어가는 곳을 만들고 싶다.” - 내가 생각하는 드림팩토리 M-LAB에 대하여...


...




이렇게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던 작은 다이어리를 죽 읽다 보니, 띄엄띄엄 기록된 생각이지만 내 생활의 전반을 관통하는 내 삶의 키워드를 찾아낸 것 같다.


나는 아마도 독서 / 지적 호기심 / 여행 / 삶에 대한 관심 / 목표 달성 / 소통 / ... 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나라는 존재의 성장과 함께 나열되어 있었다. 이건 전부 내가 발전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시작된 생각이기 때문인 것 같다. 


여러분들도 자신만의 조그만 핸드 노트를 몸에 지니고 다녀보는 건 어떨까? 자주 꺼내지는 않지만 묵히다 보면 쌓이는 게 있고, 그 축적은 의외의 통찰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물론 꾸준할 경우에 말이다.


오늘 또 한 번 나의 꾸준함을 칭찬한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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