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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창조할 권리가 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세 번의 변곡점에 관하여

by 김경태



변곡점 : 곡선에 있어 굴곡의 방향이 바뀌는 지점. 일반적으로 평면 곡선에서 곡률의 음양이 바뀌는 점


수학의 늪이라고 불리는 미분/적분을 배울 때 변곡점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선생님은 칠판에 곡선을 하나 그려놓고 +에서 -로 변하는 그 지점을 짚으며 이 점을 변곡점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던 것 같다. 반대로 -에서 +로 변해도 변곡점이라고 했다.


나는 오늘 내 삶의 변곡점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나의 인격을 변화시킨 결정적 계기를 만든 고등학교 입학 이야기부터 시작해보겠다.





1. 고등학교 입학과 친구

1992년 나는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집 근처의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걸어서 다닐 수 있는 학교였다. 초/중학교를 버스로 통학했기에 걸어서 학교를 간다는 것은 꽤 매력적이었다. 혼잡하고 냄새나는 버스 속에서의 자리다툼과 눈 앞에서 떠나버리는 버스의 꽁무니를 쳐다보면서 야속해하던 것과 작별을 고했다.


문제는 두려움이었다. 내가 입학하게 된 동래고등학교에는 16년간 내가 알고 지내던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혈혈단신으로 나는 그 학교에 입학했다. 마치 시골에서 전학 온 것 같은 느낌이라면 이해가 될까?


4번이었다. 네 번째로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내 자리는 항상 그랬듯 2 분단 교탁 앞자리, 창가로 부터 4번째 자리였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나는 항상 그 자리였다. 항상 4번이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분단을 옮기지만 시작은 항상 그 자리에서 했다. 이 자리는 공부하기 참 좋은 자리다. 선생님의 침을 정면으로 받는 자리며, 질문도 가장 많이 받는 자리다. 선생님이 잘 챙겨주는 자리기도 하며, 선생님의 신제척 비밀(?)도 가장 잘 알 수 있는 자리였다.


난 그 자리에서 중학교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공부했다.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짝꿍과 뒷자리 친구들과 맨 먼저 친해졌다. 수업시간에는 딴짓을 할 수 없는 자리였기에 집중했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조금씩 내 주변으로 친분을 확장해나갔다.


나는 아주 못된 놈이었었다. 작은 키를 극복하고자 자존심이 강했고, 제법 똑똑했고, 잘난 척을 하며 친한 친구들이 학교에서 제법 영향력(공부/싸움 이런 것들)이 있던 녀석들이라 패거리를 구성해 몰려다니던 놈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 예전의 그런 나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입학하기 전부터 직감하고 있었다.


나는 가면을 썼다. 착하고 바른 학생 가면을. 그리고 친구들이 쉽게 다가설 수 있게 나를 열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어 그들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입학 3일째 날, 방송수업시간에 국어 선생님께서 문제를 냈고 각반의 4번과 47번을 방송실로 불렀다. 그날 나는 우리 반 47번을 처음 봤다. 총 48명 중 47번이면 제일 큰아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 난 4번 김경태야!”


“어! 난 47번 아니고 46번인데, 47번이 수업을 안 들어서 모르는 문제라고 해서 내가 대신 왔어. 난 김xx야.”


그렇게 반에서 가장 큰 친구와 안면을 텄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도서관 내 앞자리에 앉아있는 녀석이었다. 도서관 4층은 1/2학년의 반 1~5등까지 앉아서 공부하는 곳이었다. 내 책상 주변의 아이들은 그곳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내 앞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조차 관심 없이 그냥 밤 9시까지 공부를 했었다. 그렇게 그 친구와 안면을 트게 되자 주변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녀석은 그 지역에서 유명한 중학교 출신으로 중학교 때 친구 대부분이 고등학교로 같아와서 아주 많은 친구들을 알고 있었다. xx 녀석과 안면을 트게 되면서 나는 쉬는 시간에 많은 친구들을 소개받게 되었다. “쟤는 우리 중학교 전교 1등 하던 녀석이고, 쟤는 내 초/중/고 동창이고...” 그렇게 다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의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더 신기했던 것은 녀석이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것이었다. 친구가 없다고 푸념해서 부모님이 차로 등하교를 시켜주셔서 녀석이랑 길에서 마주칠 일이 없었는데, 토요일 일찍 하교하면서 함께 걷게 되면서 녀석이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집 크기와 구조도 똑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지며 3년을 함께 등하교했다.


녀석 덕분에 나는 처음 그에게 각인시켰던 “착하고 바른 학생” 이미지를 계속 고수해 나갔다. 녀석을 실망시키기 싫었고, 녀석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다른 새 친구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


고등학교 졸업 후 녀석과 다른 대학을 가게 되었지만 우리는 함께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했고, 주말이면 녀석의 누나 집과 친구들의 하숙집 / 자취방을 돌아다니면서 더욱 깊은 관계를 이어갔다. 녀석은 나보다 3개월 먼저 군대를 갔고, 내가 제대를 했던 시기에 함께 부산에서 복학을 준비하며 두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함께 다녀왔다. 함께 미팅 소개팅을 나가 합을 맞췄고, 녀석의 연애사에 내가 개입하고 내 연애사에 녀석이 개입해 들어오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베프다. 녀석은 일산에 나는 천안에 살고 있지만 함께 학창 시절을 보냈던 친구들과 자주 연락하며 만난다. 이런 친구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슬몃 웃음이 난다.

녀석은 언제나 내 편을 들어줄 것을 알기 때문에...



언젠가 초등학교 동창모임에서 초등학교 때 아주 친했던 친구 녀석이 나에게 뼈 있게 한 말이 생각난다.


“경태 너는 키만 큰 줄 알았는데, 성격이 완전히 변했네. 너 옛날에 진짜 이기적인 놈이었는데, 완전 이타적으로 변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다.


“고등학교에 혼자 배정받게 되면서 나는 공부를 버렸고, 인간성을 얻었더라고. 아마도 내가 너네들(초등 친구)과 함께 고등학교를 갔다면 더 좋은 대학을 다녔을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성은 별로였을거야 ”


혼자 고등학교를 배정받아 다니게 된 것과 김일하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은 내 인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변곡점이 틀림없다.






2. 무라카미 하루키

1997년. 일등병 때였다. 자대에서 6개월 선임이 저녁시간 행정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나보다 2살이 많았고 같은 부산 출신이었다. 행정병이었는데 (나도 상병이 되면서 행정병이 되었지만) 책을 좋아해서 나와 말이 제법 통하는 선임병이었다. 책 보는 것을 꼴사납게 보는 선임들이 많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자유시간에 책을 읽었고, 나는 책 좀 읽던 놈이라 그의 책이 궁금했다.


“무슨 책 읽고 계세요?”라고 물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인데 하루키 알아?”


그 말 때문에 나는 향후 몇 년간 하루키에 흠뻑 빠지게 된다. 그때 나는 하루키를 몰랐다. 나는 조정래 / 이외수 / 김성종 씨의 책을 좋아했고, 무협지와 한국문학으로 내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곳에 그가 일본의 젊은 작가 하루키라는 돌을 던졌다. 조금 궁금했고,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다며 다 읽고 빌려달라고 했다. 그는 나를 부르더니 그의 행정반 캐비닛을 열어 하루키 책을 몇 권 보여줬다. 그때 그 가 읽고 있던 책이 <상실의 시대>였고, 캐비닛 속에 스쳤던 책이 <양을 쫓는 모험> <태엽 감는 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자리를 떠나면서 나는 하루키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뒤, 상병 진급을 했고 곧바로 정기휴가를 나갔다.

1998년 봄, 화창한 휴가 첫날, 나는 부산대학교 앞의 서점에서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샀다. 그리고 읽었다. 읽는 동안 계속 갑갑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써둔 글이 없어서 명확한 느낌을 쓰지는 못하지만 하루키라는 소설가에게 흥미가 일었던 것은 확실하다.


아래 블로그 글은 작년에 다시 읽었던 <상실의 시대> 이야기인데, 한번 읽어보면 그때의 내 생각을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상실의 시대> 이후로 하루키에 매우 경도되었다. 선임병의 캐비닛에서 <태엽 감는 새>와 <양을 쫓는 모험>을 빌려 읽었다. 특히 <양을 쫓는 모험>을 읽고 양사나이에 흠뻑 빠져 나도 자아를 찾아야 한다며 야간의 행정반에서 별 생각을 다하며 종이에 낙서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책을 읽으며 세븐스타 담배를 피워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하루키 덕분에 재즈에 열광했고, 그의 친구인 무라카미 류의 책도 읽게 되었다. 점점 일본 문학작품으로 관심이 번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시절 열혈 청년이었던 나는 청춘의 허무함과 덧없음에 대해 고민해보면서 잠시 잊었던 독서에 대한 열정에 불씨를 댕겼다. 내무반에 혼자 앉아 한글 프로그램을 켜놓고 일기와 이런저런 글을 쓰기 시작했고, 제대하면서 플로피 디스크 한 장을 가져 나왔다. (지금은 잃어버렸다. 아까워!!!)


그날, 하루키를 발견하게 된 그날은 내 생각의 틀을 조금 깨부수는 계기가 된 날이다. 이후 나는 하루키 덕분에 생각을 쓰는 것에 대해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하루키 때문에 내가 작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3. 책 <비전으로 가슴을 뛰게 하라>

2017년 11월 21일 화요일. @영덕연수원


회사에서 보내준 명상교육을 참석 중이었다. 이틀간의 명상으로 머릿속 청량감을 처음 느껴보았다. 좋은 공기 덕분인지, 요가 덕분인지 목 뒤의 결림도 사라졌다. 컨디션 최고조였다.

명상은 처음이었다. 내 생각에 명상은 무언가 하나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명상교육을 참가하면서 나흘간 자유로운 시간 동안 그동안 풀지 못했던 문제 하나를 꼭 풀고 가겠다고 다짐했었다.


내가 풀지 못한 문제는 바로 “내 삶의 비전이 무엇인가?”였다.


비전(vision).


무엇인지 알 것 같지만 형체가 없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이고 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접근을 하고 있었는데, 도대체 명확해지지가 않았다. 희망과 되고 싶은 내 모습이 비전이 맞나 고민을 거듭한 지 수년이 지났다. 비전 없이 그냥 열심히 자기 계발에 몰두하던 그때, 나는 명상교육이라는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 심지어 휴대폰도 반납하고 TV도 없이 오로지 명상과 독서와 식사 운동 잠만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명상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비우는 것이었다. 머릿속에 생기는 생각을 알아채고 그 생각을 치우는 것, 다시 말해 알아차림 & 비움 이것이 바로 명상이었다.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이번에도 틀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좋았던 것은 제대로 명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머리가 맑아지고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글 초반부에 말했듯 머릿속이 청량음료 같은 알싸함에 쌓여 멋진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둘째 날 명상교육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책상에 놓여있던 가지고 온 책을 뒤적였다. 이 기분에 책을 읽으면 집중이 잘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몇 장 넘기다가 덮었다. 무언지 모르겠지만 그냥 연수원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를 나서 걸었다. 차가운 바람이 빰을 때려 얼른 앞쪽의 교육장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로비에 조형물이 몇 개 있었고 그 옆 계단에는 군데군데 책이 꽂혀있었다. 간이 도서관 같아 보였다.


“아! 여기서 볼만한 책을 몇 권 찾아서 읽어야겠다.”


그리고 나는 계단을 오르며 계단 옆에 아무렇게 놓여있는 책의 제목을 훑어나가기 시작했다. 몇 분 지났을 때 탁하고 내 눈이 멈춘 책이 있었다.


<비전으로 가슴을 뛰게 하라> - 켄 블렌차드 -


‘어라! 비전에 관한 책이네. 한번 읽어봐야겠다.’라며 앉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그리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그 책을 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읽었다. 가슴이 너무 뛰었다. 어쩌면 내가 풀고 싶었던 문제인 “나의 비전”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일단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일도 지금과 같은 생각이 든다면 그때 비전을 쓰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잠들었다.


다음날 새벽 5:30분 일어나 새벽 명상을 참가했고, 명상을 마친 뒤 사우나에서 목욕을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기 시작했다. (아래 사진이 가져간 다이어리에 막 써 내려간 책의 요약본이다.) 10페이지 정도를 썼다.


책 내용을 요약하면서 나는 허상으로 여겼던 “비전”을 실상으로 개념화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내 삶의 비전을 썼다.


비전을 써놓고 쳐다보며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진짜 날아갈 듯 기뻤다.







세 가지 변곡점의 연결성


10대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던 그때, 내 존재의 기질을 변화시킨 지점과 20대 열혈 청춘이었던 시기 독서의 관점을 변화시킨 지점은 맞닿아있다. 학창 시절 친구와 경쟁하듯 읽었던 책과 들었던 음악, 그리고 함께 만들어낸 여러 가지 사건들. 한 예로 1996년 그 녀석과 조정래의 대하소설 3부작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을 서로 먼저 끝내겠다는 듯 경쟁하며 읽어나갔다.

그 날 행정반에서 하루키의 책에 내 신경이 반응한 것도 아마 그동안의 축적된 독서력이 이끈 필연 아니었을까? (억측일까?)


또 녀석은 글씨를 지지리도 못나게 쓰는데, 내 글씨는 예뻐서 녀석의 콤플렉스 비슷하게 작용했던 것도 있었는데, 그 녀석의 잦은 칭찬 덕분에 글씨에는 자신이 있었고, 쓰다 보니 글씨체뿐만 아니라 글솜씨도 늘었다. 군대에서 손편지를 자주 써서 친구들과 소식을 나눴던 것도 그 맥락에서 통한다.


마지막으로 내 비전을 발견하게 된 그날도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연결된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필연을 동반한 우연.


어쩌면 우리 삶은 우연과 필연의 교차지점에서 변곡점을 형성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음번의 변곡점은 어디일까? 기대되기도 하다.


- 작가 김경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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