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0년, 나를 변하게 만든 하지만 변함없는...

10년 전 나에게, 그리고 10년 전 내가 지금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

by 김경태




실로 기록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오늘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2020년 5월 9일 새벽 06시.


오늘의 질문지를 받아 들고 기억 탐색에 나섰다.


“10년 전의 나를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요?”
“10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요?”
“10년 전에 상상한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내 모습과 얼마나 다르고 또 얼마나 비슷할까요?”


매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블로그를 개설한 이래 일주일에 두 세 건의 글을 쓰고 있다. 2004년 8월 2일에 블로그를 개설했으니 올해로 16년째다.


10년 전 그때의 게시글을 살펴보니 아래와 같았다.


당시 나는 “꿈을 찍는 사진사”라는 닉네임으로 블로그에 자녀의 사진을 열심히 등록하고 있었다. 일기 같은 형식으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비공개로 설정한 채, 이벤트에 따라 당시의 내 생각과 기분을 쓰고 있었다.


10년 전 오늘 기록한 글이 두 편 있었다. 그날 5월 9일은 일요일이었는데 아마도 5월 5일(수요일)부터 연차를 내고 부산에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9일 천안으로 돌아와서 며칠간의 기록을 정리했던 것 같다. (그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둘째인 딸이 2009년 5월 13일에 태어났고, 2010년 5월 첫 주에 가족과 함께 조촐하게 돌잔치를 했었다. 양가 부모님과 누나/매형/조카, 처제 가족들과 이모들을 모시고 호텔에서 식사를 했었다. 전날인 5월 7일에는 딸아이 돌 기념 촬영을 했었다. 해운대 달맞이의 “베이비유”라는 사진관에서 촬영을 했다. 내가 그 사진관을 잊을 수 없는 건 그날 그 사진관에 가보고 나도 은퇴 후 달맞이의 이런전망 좋고 멋진오피스텔을 얻어 친구들과 이런저런 소일거리를 하며 지내리라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진관을 다시 방문하기 위해 1년 뒤 가족사진을 찍겠다고 예약을 했던 기억이 있다.


1년 뒤 방문해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아무튼 10년 전의 이즈음의 기억은 이 정도다.

그럼 나는 그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당시 나는 힘든 시기를 넘겨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서 열심히 실력을 쌓아가던 시기다. 일에 대한 재미를 조금 붙여가던 시기였고, 회사에서 일에 몰입하느라 피곤함을 잊고 있었던 시기다. 그때 내가 그리던 미래의 나에게 “작가(writer)”라는 명함은 없었다. 그때는 아마도 “사장”이라는 것이 머릿속에 가득 담아두고 있었을 것이다. 창업을 하고 싶다는 희망 말이다.


생각해보니 “작가”가 꼭 없었던 것만은 아닌 것도 같다. 당시 나는 사진에 매우 심취해 있었고, 틈날 때마다 무거운 카메라를 둘러메고 이리저리 다니며 프레임 속에 좋은 풍경과 인물을 담아내고 있었다. 멋진 사진과 짧은 글을 쓰는 에세이스트가 되어볼까?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즈음에 김영주 작가가 쓴 <캘리포니아>와 <토스카나>를 읽었고 나도 그처럼 되고 싶다 생각했었다. (머무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면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절판되었는데 다행히 내 서재에는 머물러있다. 안상수 씨가 만든 안그라픽스에서 출간한 책인데 책이 참 예쁘다.)


그러고 보면 10년 전과 지금의 내 생각과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또한 맞닿아있다. 영화나 드라마의 타임슬립처럼 지금의 내가 10년 전 나를 만나게 된다면 젊은 그에게 지금의 내 상황을 말해줄 용기가 있을까? 그리고 10년 전의 김경태는 10년 후의 김경태를 보고서 그가 정말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그와 닮아가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까?


알 수 없어야 미래이고, 결정되어버린 것이 과거다. 과거는 자신의 기억 안에서 회상을 통해 추억하고, 그 기억의 농도만큼 의미를 가진다. 타임슬립 영화에서 주인공이 미래의 자신이 들려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을 이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한번 물어는 보고 싶다. ^^



꿈찍사 (35세 김경태)

꿈작가 (45세 김경태)


꿈작가 : 안녕. 젊은이. 오랜만이야!

꿈찍사 : 누구세요?

꿈작가 : 나? 너야!

꿈찍사 : 헐! 안녕히 계세요.

꿈작가 : 야! 이놈이 버릇은 여전히 없구나. 암튼... 난 10년 뒤 너야!

꿈찍사 : 행색을 보아하니 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전 힙합 좋아해서 그렇게 통 좁은 바지 안 입어요. 그리고 머리도 완전 아저씨 머리하고 있는데, 저는 그렇지 않거든요.

꿈작가 : 이 새퀴봐라!! 역시 나 맞네.

꿈찍사 : 저 그냥 가던 길 가도 될까요?

꿈작가 : 어디 가던 길인데?

꿈찍사 : 그냥 기분이 내키는 대로 생각대로 가던 중인데.

꿈작가 : 네 생각이 뭔데?

꿈찍사 : 제가 그걸 왜 말해야 하죠?

꿈작가 : 그래. 네 가던 길 가라. 그래야 네가 내가 된다.

꿈찍사 : 그럼 바이 바이!!


(끝)



더도 덜도 없이 이렇게 될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그렇듯, 그때의 나도 미래에 대해 궁금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알았다고 해서 마냥 좋아하고 궁금해했을 리도 없다. 서른다섯의 내 삶의 키워드는 개척차(pioneer)였기에 남의 얘기에 솔깃해지지 않으려 노력했었다.


그게 나였다. 그리고 지금의 나이기도 하다.


불안하고 두려워고 그냥 가는 거...


- 작가 김경태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