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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을 시작했다면 적어도 3명의 스승을 찾아라!

by 김경태




멘토(Mentor)

영어에서 '스승'을 뜻하는 멘토(Mentor)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친구 멘토르(Mentor)에서 유래하였다. 멘토르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여 20년이 되도록 귀향하지 않는 동안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돌보며 가르쳤으며, 그의 이름은 '현명하고 성실한 조언자' 또는 '스승'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세명이 함께 걸어가면 그중에 한 명은 스승이 있다고 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 그들을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개개인의 특징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특성들 중에 내가 닮고 싶었던 것들을 닮아가는 것 이것은 또 하나의 “자기 계발”이다.


비단, 내 주변에 존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 일수도 있고, 위인전에 나오는 유명인일 수도 있다. 만화 주인공, 가슴에 와 닿는 문장 한 줄, 이 모든 것들이 내 삶의 일부에 영향을 미쳤다면 그것은 모두 나의 스승이 된다.


이번 글은 내가 생각하는 내 자기 계발의 스승(멘토)에 대한 글이다.




1. 내 아버지


어린 시절 TV에서 본 여러 인터뷰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세종대왕 / 이순신과 쌍벽을 이룬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다. 나는 “왜 아버지일까? 우리 아빠는 아닌 거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이를 먹어 내가 아빠라는 존재가 되고 보니 그때 그 말을 조금은 납득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내 삶의 대부분의 고민은 아마도 “내 가족의 입에 어떻게 밥을 넣을 것인가?”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그래서 내 입에 맛있는 밥과 반찬을 넣도록 해주신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내 고민이 깊어질수록, 내 주름살이 늘고 파여갈수록 더욱 아버지의 존재감이 커진다. 당신에게 나는 여전히 아이 같고, 철이 없고, 밥 떠먹여야 하는 존재일 것이다.


내가 내 아이를 바라보며 “저 놈이 나중에 제대로 인간 구실 할까?”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처럼 내 아버지도 나를 보며 똑같은 생각을 하셨을 거다.


아버지는 항상 일찍 일어나셨다. 아이에게 일요일 새벽은 정말 꿀 같은 시간이다. 하지만 아빠는 항상 일요일 아침 7시면 이부자리를 정리하시고, 창문을 열어 집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나를 깨워 목욕탕에 데리고 가셨다. 어릴 때는 그게 너무 싫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싫지만 목욕을 다녀오면 재미있는 만화가 끝나갈 시간인 것이 더 싫었다. 지금은 그때가 그립다. 그때 아빠의 머리는 새카맸다. 아빠의 어깨는 넓었고 팔은 두꺼웠다. 아빠가 비누로 머리를 감겨주면 머리가 빠개질 것처럼 아팠지만 이제는 그렇게 감겨주면 굉장히 시원할 것 같다. 뜨거운 물에 오랫동안 들어가 있다 나오면 때가 잘 불었다며 아빠가 칭찬해줬고, 이태리 타올로 온 몸 구석구석을 닦아주셨다. 내 몸을 다 씻기고 나면 그때부터는 나는 놀이시간이었다. 냉탕에서 내가 자맥질을 하며 노는 동안 아빠는 자신의 몸을 씻었다. 그러다 아빠가 부르면 달려가 아빠의 등을 열심히 밀었다. 아빠 등은 너무 넓어서 힘에 부쳤다.


지금 내가 새벽부터 일어나 글을 쓰는 것과 목욕을 즐기는 것은 온전히 아버지의 영향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버지가 내 삶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항상 가족이 최우선이었고, 단 한 번도 내게 손찌검이 없으셨던 아버지다. 그의 삶의 방식을 지금 내가 자연스럽게 따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생물학적 내 존재의 원천이자 정신적인 나의 스승이다. 내 행동, 내 말투, 내 걸음, 내 습관, 내 생각, 내 사상, 내 철학... 그 모든 것의 저변에는 아버지의 삶이 드리워져있다.


당신은 스승이라는 말이 매우 부족할 정도로 나와 가깝다. 그래서 나는 평생 아버지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사랑한다.



2. 故구본형 선생

내가 제일 안타까운 것이 내가 구본형 선생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미 이곳에 계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나는 그가 운영하는 <변화경영 연구소>의 학생으로 도전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가 쓴 책을 통해 그를 배웠고, 자기 계발이라는 분야에 있어서는 그를 닮으려고 매우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 중이다.


그의 책은 나에게 자기 계발은 사상이라는 개념을 갖게 만들었다. 그는 직설적이지 않았지만 직설적으로 읽혔고, 형식이 없었지만 형식을 갖춘 모양새로 내 자기 계발의 영역을 지배해나갔다. 그가 쓴 책 여러 권을 읽어보면서 나는 그의 사상에 공감하고 깨달음을 얻었다. 그와 닮고 싶어 그의 문장을 내 책에 많이 인용했고, 그의 글을 내 강연에서 사람들에게 들려줬다.


내가 만들어가는 나만의 자기 계발 철학 중 아마도 20~30%는 그가 차지하는 공간이 있을 것이다. 그는 내게 자기 계발에 있어 진정한 스승이다. 그래서 그가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고 또 아쉽다.


(*사상 : 사고 작용의 결과로 얻어진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의식 내용)



3. 어니스트 (Honest)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읽은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이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명확하게 각인되어있다. 짧은 소설이었지만 내용은 강렬했다. 나는 주인공 어니스트에 몰입했고, 나도 그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내 첫책 <일년만 닥치고 독서>에서도 이 에피소드를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그에게서 미래의 나를 상상했었다. 좀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지만 노래방에 가면 빌리 조엘의 <Honesty>를 항상 불러대는 것도 이것과 관계있는 것 같다.


난 착하고 싶다. 선한 인상과 유들유들한 성격을 갖춘 중년의 어니스트이기를 기대해본다.


대학 때 이외수 씨의 <벽오금학도>에 나오는 소백이를 좋아했던 적이 있다. 항상 등에 매고 다니는 통속에 든 족자 속 오학동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소백이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도 그처럼 뭔지 모를 신비스러운 능력을 갖추고 있고 그것이 외적으로도 드러나는 존재이고 싶었던 적이 있다.


소백이는 어니스트와 매우 다른 성격의 인물이다. 대학생 때 나는 나를 드러내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세상에 나를 알리고 싶었다. 유명한 정치가/선동가 같은 미래의 나를 그려보기도 했었다. (물론 하는 것이라고는 골방에서 책 읽고 오락하는 게 전부였지만... 이 글을 쓰다 갑자기 소백이 생각이 나서...) 그러고 보니 내가 심취했던 책의 주인공을 자꾸만 내 삶에 대입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지금 나는 다시 어니스트가 내 이상향이다. 짧은 소설이라 그의 삶 면면을 내 상상에 맞길 수밖에 없지만 나의 상상 속 어니스트는 나와 제법 많이 닿아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목소리는 닿아있지 않다. ㅠㅠ)


암튼 그렇다.


(어니스트의 이런면 저런면을 설명하지 않은 것은 글로 쓰면 상상 속 그가 바스라져 버릴 것 같아서다.)




...
며칠 전부터 대학생 하나가 날마다 팔각정 계단 중턱쯤에 자리를 잡고 하루 종일 무료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언젠가 관리인 하나가 날마다 공원으로 출퇴근을 하는 그에게 직업을 물었을 때 그는 분명히 대학생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외모는 매우 특이했다. 백발동안 - 얼굴은 귀공자처럼 해맑은데 머리카락은 고희를 넘은 노인처럼 온통 된서리가 하얗게 얹혀 있었다. 눈이 부실 정도였다. 뿐만아니라 그는 언제나 등에 둥굴고 기다란 금빛 비단통을 하나를 둘러메고 있었다. 홍콩영화의 액션물에 나오는 현대판 칼잡이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전혀 살벌해 보이지 않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옷차림이 깨끗하고 단정했다. 이목구비도 깨끗하고 단정했다. 양순해 보이는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유난히 눈동자도 맑아 보였다. 이십대 초반의 나이였다.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인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록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 있다고는 하더라도 탑골공원은 그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다.

<벽오금학도>에서 소백이를 묘사한 부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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