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 참 쑥스럽지만, 난 사람들을 제법 웃길 줄 안다.
말이 많은 호사가라거나, 표정이나 행동으로 웃기는 슬랩스틱은 아니다. 대화 중에 적절한 타이밍과 순발력으로 유머를 날리는 타입이다.
돌격대나 탱크라기보다는 유머 저격수라고 할 수 있다.
대화 속에서 예상치 못한 반전을 총알처럼 쏘며 사람들을 포복절도하게 한다.
물론 지금 내 말을 믿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보겠다.
회사 점심시간 때의 일이다.
요즘 자전거에 푹 빠진 직원이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저를 추월해 갔어요. 그 사람들은 되게 빠르더라고요. 근데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인라인을 타고 그 사람들 뒤에 바짝 붙어서 가더라고요. 체력이 대단했어요. 저도 못 따라가겠던데."
이런 이야기기였는데, 유머력이 약한 사람들은 "오, 대리님도 인라인으로 바꾸셔야겠는데요?" 같은 드립을 던지기 마련이다. 물론, 그때 우리 중에 한 사람도 이 말을 했다.
하지만 거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가 내가 던진 말은
"할아버지로 바꾸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였다.
이게 뭐가 웃긴 건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그 자리의 모두가 빅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유머는 현장감이란 게 중요하니까. 그리고 그 직원이 조금 허약한 캐릭터라 더 절묘한 조화가 있었다.
나의 유머란 이런 것이다. 어떤 상황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 관점이 이리저리 자유롭게 유랑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잘 들어야 한다. 간혹 다른 이의 말을 진중히 경청하지 않고, 맥락없이 마구잡이로 농담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옳지 않다.
좀 더 이해가 쉽도록 또 다른 일화를 이야기해보겠다. 이건 시간이 꽤 지난 일인데,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이번에도 회사 동료들과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이야기의 주제는 소개팅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직원이 소개팅을 했는데, 상대에게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누군가 꼭 이런 말을 한다.
"아니. 한 번 보고 어떻게 알겠어요? 몇 번 더 만나봐요. 그러다 보면 좋아지기도 하던데."
이런 이야기가 나오자, 정 팀장이 동조하며 살을 덧붙였다.
"맞아. 내가 예전에 회사 동료와 내 친구의 소개팅을 주선해준 적이 있어. 근데 소개팅이 끝난 후에 친구가 내게 전화해서 별로였다고 하는 거야. 내가 조금 화가 나서 '어떻게 한번 보고 판단할 수 있냐? 나를 봐서라도 세 번은 더 만나봐.'라고 했지. 결국 결혼까지 해서 지금도 잘살고 있어."
그런데 그 순간, 아주 일반적이고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 나는 반전의 요소를 찾아내고 말았다. 그때 내가 던진 말은
"아직도 팀장님을 봐서 살고 계신 거 아니에요?"
난리가 났다. 모두가 폭소를 터뜨렸다. 이런 큰 웃음의 예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유머력이 높은 것에도 단점은 있다. 집착하게 된다는 것. 사람은 조금 잘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나의 집착은 이런 식이다. 만약, 내가 무심코 흘려버린 일상 속 어떤 상황이 있다고 해보자.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그 상황에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빅웃음의 씨앗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있나. 그런 소중한 씨앗을 멋진 폭소의 나무로 키우지 못하고, 타이밍이란 새의 먹이나 되게 만들었다니.'
유머의 영감이 타이밍을 못 따라갈 때, 나는 좌절한다.
그리고 유머란 것에 조금 공격적인 특성이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허점을 파고들어 놀림을 주는 것은 워낙 효과가 큰 유머 기술이다 보니, 그 악마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분명히 마음속에서 이 말은 실례가 아닐까 하는 망설임이 솟아났지만, 결국 유머의 욕망을 저버리지 못하고 혀를 놀려버린다.
'아. 이 말은 하지 말걸. 난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는 거야.' 하며 부족한 자신을 자책하고, 자괴감에 빠진다.
유머란 간혹 제 살을 파고드는 엄지발톱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난 오늘도 어김없이 유머를 날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