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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후루 Nov 30. 2015

똥입니다


세상에나.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내 나이 스물아홉. 아직 서른도 안 된 나이에 똥을 싸다니. 아니. 똥을 싸는 건 문제가 아니다. 잘 쌀수록 좋은 것이지. 하지만 책상 앞에 앉은 채로 똥을 싸는 건 절대 안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천벌을 받을 일이다. 아니, 이미 천벌을 받은 것인가.


그저 진한 방귀인 줄 알았건만 그래서 전혀 의심 없이 괄약근에 힘을 풀었던 것인데, 그렇게 매몰차게 나를 배신하다니.


회사도 관둔 백수 신세에 이제 똥오줌까지 못 가리는 칠푼이가 되었으니, 누군가 경멸에 찬 표정으로 침을 뱉어도 뭐라 할 말이 없다.


아주 찔끔 나온 거였다면 이렇게 자신을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스한 온기에 황급히 바지를 내려 확인해보니, 그것은 팬티 위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팬티의 직물 짜임새가 촘촘하고, 내 방 앞에 바로 화장실이 있어서 그것을 흘리지 않고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었다. 바지를 다시 올리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화장실에 들어가는 나를 본 사람은 없었다. 황급히 옷을 벗어 샤워기로 씻어내고, 화장실에 있던 세탁기에 옷들을 넣어 돌렸다.

 

일련의 과정들을 혼이 나간 채로 끝내고 나자 인생이 끝난 것 같은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똥이란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온 나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바에는 자살을 택할 거라고 다짐해온 나다. 그저 나에게 멀게만 느껴져 온 그 똥이 이렇게나 빨리 찾아올 줄이야.


자존감이 무너졌다. 내가 벌레처럼 느껴졌다. 똥은 싸지 말았어야지. 다른 실수는 얼마든지 해도 좋다. 하지만 똥은 싸지 말았어야 했다.


원래 장이 약해 배탈이 많이 나는 편이라 늘 조심조심 해왔는데. 그래서 빈속엔 절대로 커피나 유제품은 먹지 않고 찬 음식도 되도록 먹지 않으며 배를 따뜻하게 유지해왔는데.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단 말인가.


이 일을 여자친구가 알게 된다면 백 퍼센트 이별이다. 변명의 여지도 재고의 여지도 없다. 그녀에게 그저 똥싸개로 기억될 뿐이다. 절대 알게 해선 안 된다. 안 그래도 데이트 중에 화장실을 자주 가는 바람에 눈치가 보였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냥 모든 게 똥이 되어버린다.


나만 조심하면 될 것이다. 비밀을 지켜야 한다. 본 사람도 없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여자친구와 함께 있는 중에 그 녀석이 갑자기 튀어나온다면, 아! 생각만 해도 기절할 것 같다.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난다. 벌써 배가 아파진다.


이제 방귀도 뀔 수 없다. 무엇이 방귀인지, 무엇이 똥인지 분간도 못 하는 나 같은 놈은 방귀 뀔 자격도 없다.


평생 방귀 독에 누렇게 뜬 얼굴로 살아가야 한다.



정말이지 사내대장부가 똥을 참고 살아가는 것도 이렇게 힘들어서야 도대체 무슨 큰일을 해낼 수 있을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고작 할 수 있는 건 물티슈 하나만큼은 늘 챙겨다니는 일일 테지.


아. 벌써 이런 꼴인데 나이가 들어서 대체 어떤 추태를 보이려는 걸까. 정말 두렵고도 두렵다. 늙는 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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