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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후루 Jun 09. 2017

크리스마스의 장례식


경수의 할아버지 장례식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였다.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를 위해 나가던 참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그의 마음엔 슬픔보다는 하필 오늘이냐는 불만이 앞섰다.


약속을 취소하고 가장 빠른 시간대의 기차를 탔다. 나름 서둘렀지만, 장례식장엔 밤이 늦어서야 도착하였다.

이미 손님들로 북적였고, 친척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고모들이 경수를 먼저 발견하고 장손이 이제 왔다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경수의 어머니는 많이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경수는 절을 하고 육개장에 수육을 곁들여 밥을 먹고 일련의 절차에 몸을 맡겼다.


늘 서로 원수 같던 아버지, 어머니, 삼촌, 숙모, 고모, 고모부들은 웬일인지 나름 가족처럼 보였다. 누군가 '크리스마스에 이렇게 온 가족이 모이라고 할아버지가 날을 골랐나 보다.'라고 말했지만, 그런 의미부여가 경수는 우스웠다.


입관식에서 소년처럼 작아진 할아버지의 모습을 본 어머니와 고모들은 오열하였고, 경수도 어릴 적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을 어렵게 떠올리며 눈물을 짜내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슬퍼져 그도 꽤 울었다. 그런 자신이 조금 뿌듯하였고, 자신이 우는 모습을 친척들이 봐주길 바랐다.


장례식에서 잘 우는 것은 마지막 효도이므로, 최선을 다해 울어야 한다.


할아버지의 시신은 화장하였다. 화장터는 붐볐고, 은행에서 순번을 기다리듯 할아버지의 차례가 오길 가족들은 기다렸다. 시신들의 화장 상황은 대기실의 스크린을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고, 할아버지의 화장도 그렇게 스크린에서 진행되었다.


보자기에 싸인 유골함을 들고 차로 걸어가던 경수의 아버지가 돌 턱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팔꿈치가 조금 까지긴 했지만, 다행히 유골함은 무사했다. 


경수의 어머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발을 걸어 넘어뜨린 거라는 진심 어린 농담을 던졌다. 경수는 할아버지의 혼령이 발을 거는 모습을 상상하며 꽤 재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게 블랙 코미디구나 하며.


국가 유공자인 할아버지의 유골은 국립묘지의 봉안당에 모셨다. 할아버지의 유골함이 놓인 선반 옆에 남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나중에 할머니의 유골함이 모셔질 예정이었다. 할머니는 그곳이 자기가 갈 곳인지 자식들에게 재차 확인하였다.


모든 절차를 끝내자 사람들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 보였다. 서로 애틋한 포옹과 함께 인사를 건네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봉안당 선반의 남은 공간이 마저 채워질 날이 되어서야 다시 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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