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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후루 Mar 31. 2022

박노인과 김노인

“쳇! 저 꼴도 보기 싫은 늙은이. 착한 척은 혼자 다 한다니까. 캬악! 퉤!”

박노인은 걸어가는 김노인의 등을 보며 혼잣말을 지껄인다.


박노인은 같은 마을에 사는 그가 미치도록 싫었다.


삼 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 온 김노인은 금세 이웃 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서글서글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에 붙임성도 좋았다. 이웃에게 베푸는 것도 많았고, 일손이 필요한 곳이면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다.


이웃들은 박노인 앞에서 침이 마르도록 김노인을 칭찬해댔다.


“뭐. 다 바라는 게 있으니 그러는 거지. 두고 봐. 사람 속은 모르는 거야.”

박노인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구시렁거렸다. 박노인이 보기에 김노인은 착한 척하는 위선자가 다름없었다.


‘모든 인간은 다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법이야.’

박노인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남보다 더 가지기 위해 노력했고, 할 수만 있다면 남의 손에 있는 걸 뺏어서라도 자기 주머니를 채웠다.


남에게 베풀거나 주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오로지 자신만을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 온 덕분에 남부럽지 않은 재산을 모으게 되었고, 그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닐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김노인은 아주 말도 안 되는 인간이었다. 그는 김노인이 착한 척하는 데는 다른 꿍꿍이가 있거나 뒤가 켕기기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김노인을 처음에는 무시하려고 했지만, 날이 갈수록 그는 박노인의 심기를 건드렸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김노인의 평판이 좋아져만 갔고, 그와 김노인을 비교하는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곤 했다.


이제는 김노인의 김 자만 들어도 박노인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행동에 들어갔다. 김노인에 대한 헛소문과 험담을 이웃에 퍼뜨리기 시작했다.


김노인이 살다 온 도시에서 우연히 알아 온 소문이라며 온갖 이야기를 지어내었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김노인은 보험금을 위해 아내를 살해한 살인자이자 사기꾼에 난봉꾼이며 두 얼굴의 사나이가 되어있었다.


어리석은 마을 사람들은 앞뒤가 맞지 않지만 너무나 자극적인 그 이야기에 쉽게 현혹되었고, 이리저리 소문을 퍼 날랐다.


사람들은 김노인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는 영문도 모른 채 마을에서 외톨이가 되어있었다.


쓸쓸하고 기죽은 표정으로 지나가는 그가 보일 때면, 박노인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그러게 왜 착한 척을 하냔 말이야. 생겨먹은 대로 살아야지. 이 동네 인간들도 참 멍청하긴 해. 처음에는 저 노인네 좋다고 기절하더니. 내가 지어낸 말에 잘도 속아 넘어가지. 사실 지들도 내심 저 노인네가 위선자라고 생각했겠지.’


며칠 후, 박노인이 저녁 반주로 막걸리를 맛깔나게 마시고 곤히 잠들어 있던 깊은 밤중에 그의 집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달콤한 잠이 방해를 받은 박노인은 잔뜩 구겨진 인상으로 문을 열었다. 그 앞에는 김노인이 서 있었다.


그는 평소의 온화한 표정이 아니라, 분노로 가득한 표정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은 입고 있는 점퍼 속에 감춰져 있었다.


술과 잠에서 덜 깼음에도 박노인은 이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아, 아니 이 시간에 무슨 일이오?”


“무슨 일이냐고?”

김노인이 박노인을 노려보며 문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


김노인이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자 박노인은 위압감에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네 놈이 내 욕을 하고 다녔지? 다 알고 왔어!”

김노인의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 무슨 말이오? 난 모르는 일이오?”

박노인은 고개를 파르르 떨며 부인했다.


“이 야비한 새끼! 내가 맘 잡고 잘 살아보려고 했건만. 내가 좋은 사람처럼 있을 때,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어야지. 오늘 내가 네 놈 멱을 따주마!”

김노인이 점퍼 속에 있던 오른손을 꺼내자 커다란 식칼이 번쩍였다.



하늘에 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때, 박노인은 자신의 집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그의 주변에 피가 가득했다.


“내, 내 말이 맞지? 그놈은 착한척하던 게 맞, 맞잖아. 이게 그놈 본색이라고…”


홀로 죽어가면서 그는 연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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