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 앉은 정훈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배가 또다시 부글부글했다. 이 번에는 정말 심각했다.
‘참을 수 있을까?’
집에 가려면 아직 한 시간은 더 남아있었다.
등교하고 얼마 있지 않아 배가 아파왔다.
심한 건 아니겠지 하며 그는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배탈이라 해도 화장실에 갈 수는 없었다. 초등학생 4학년인 정훈에게 학교 화장실에서 똥을 눈다는 것은 치욕적인 일이었다.
만약 다른 아이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 것이다.
수학 경시대회에 나가게 된 정훈은 여름방학임에도 학교에 나왔다.
함께 선발된 열명 정도의 아이들과 한 교실에서 네 시간 정도 오전 특별 학습을 했다.
고난도 수학 문제집을 각자 풀고 선생님에게 지도를 받는 방식이었다.
오늘은 정훈에게 특히나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점차 심해지던 배의 통증은 급격하게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건 분명히 설사야. 아, 어떡하지.’
그는 그냥 집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있는데,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성실한 그에게 불가능했다.
‘학교 화장실에서 똥은 절대 눌 수 없어.’
그는 무작정 참아보았다. 그러나 무자비한 설사는 그를 뚫고 나오려고만 했다.
복통은 파동처럼 오르내리며 그에게 천국과 지옥을 반복해서 선사했다.
항문에 모든 집중력과 체력을 쏟아부으며 그는 점점 지쳐갔다. 티셔츠와 팬티는 땀으로 흠뻑 젖었다.
갑자기 극단적인 복통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기필코 밖으로 나와야겠다는 설사의 의지가 느껴졌다.
잔인했다. 그는 죽기 살기로 막아보았다.
‘안돼. 제발.’
근데 괄약근에 살짝 힘이 풀리는 찰나가 있었다.
‘응? 뭐지? 아니지?’
느낌이 이상했다. 조금 새어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아닌데, 안 쌌는데.’
확실하지가 않았다. 그런데 조금 찝찝한 것 같기는 했다. 그는 의자 위의 엉덩이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아, 싼 것 같아.’
절망적이었다.
‘어떡하지. 많이 나온 것 같지는 않은데. 그냥 이대로 버티면 되려나.’
아이들은 문제를 푸느라 정신이 없었다. 각기 다른 반에서 뽑힌 아이들이라 서로 친하지 않아, 띄엄띄엄 떨어져 앉아 있었다.
정훈은 아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손으로 슬쩍 바지의 엉덩이 부분을 만져보았다. 묻어 나오는 것은 없었다.
‘다행이다. 바지까지 새어 나오진 않았나 봐. 청바지를 입고 오길 잘했어.’
복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 견딜 만 해진 것 같기도 했다.
‘그래 한 시간만 참자.’
“뭔가 꾸리꾸리 한 냄새가 나는데?”
“아, 너도 맡았어? 나도”
갑자시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정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이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의 근원지를 찾으려고 했다.
“밖에서 나는 건가?”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냄새를 맡아보는 아이도 있었다.
“밖에서 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다들 뭐해. 조용히 문제 풀어.”
앞의 책상에서 업무를 보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선생님. 똥 냄새가 나요.” 앞자리에 있던 동욱이가 말했다.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아이들이 깔깔깔 웃어 대었다.
정훈도 의심받지 않기 위해 같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무슨 냄새가 난다 그래. 신경 쓰지 말고 어서 공부해.”
다행히 선생님은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멈추지 않았다.
“야. 누가 방귀 뀐 거 아니야?”
동욱이 자리에서 일어나 코를 킁킁대며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들 사이를 오가며 냄새를 맡아 데었다.
아이들은 자기는 아니라며 동욱을 밀어내었다.
동욱은 점점 정훈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정훈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갔다. 불안감에 배가 더 아파왔다.
“어, 이쪽으로 오니까 더 나는 거 같아.”
동욱은 정훈 쪽을 향하면서 냄새에 더 집중했다.
정훈은 동욱을 보지 않고 문제집에 집중하는 척했다. 손에 땀이 흥건했다.
동욱이 바로 코 앞까지 왔다.
‘제발 오지 마! 멈춰!’
정훈은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때 정훈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공간이 액체처럼 일렁거렸다. 그는 자신의 몸이 아랫배를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엄청난 공포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갑자기 주변이 고요해졌다. 정훈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놀란 그의 어깨가 들썩였다.
‘뭐지? 여기가 어디야?’
눈앞엔 벽이 있었다. 다시 보니 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변기에 앉아 있었다.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니 그곳은 학교 화장실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 배야. 모르겠다. 일단 똥을 눠야겠어.’
천국에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그는 엄청난 자유를 만끽하였다.
더러워진 팬티는 휴지로 싸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는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다시 교실의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조금 전처럼 동욱이 바로 코 앞에 다가와 있었다.
“응? 냄새가 갑자기 안나네.”
“이동욱! 돌아다니지 말고, 자리에 앉아. 문제 다 풀었어?”
선생님이 엄한 표정으로 동욱에게 말했다.
“아, 아니요.”
동욱은 후다닥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정훈은 소리도 없이 한숨을 쉬었다.
“수고했어. 뒷 장의 문제는 집에서 다 풀어오고, 내일 보자.”
선생님의 인사가 끝나고 아이들은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그날부터, 정훈은 초능력자가 되었다.
배탈이 나서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그는 가까운 화장실로 순간 이동된다.
그가 화장실에 다녀오는 그 순간을 다른 사람들은 눈치챌 수가 없다. 찰나의 시간 동안 정훈은 그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는 자신을 구하는 히어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