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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ikos Sep 14. 2018

회사는 집과 적당히 떨어져 있는 편이 좋다

지하철로 통근하면 얻는 것

회사에서 집까지 하루 왕복 두 시간.


사실 약간 모자라다. 집에서부터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해 하루 출퇴근 시간만 약 세 시간이 안성맞춤이다. 우리 집에서부터 거리로 치자면 대략 여의도나 영등포 정도. 출퇴근 피크타임 지옥철에서 아침을 거른 어떤 이의 거북한 빈 속 냄새를 코앞에서 맡아야 하는 고통과 문 앞까지 차고 넘치는 사람들 사이를 도저히 비집고 들어갈 재량이 없어 몇 번이고 지하철을 떠나보내며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에겐 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아무말대잔치냐 하겠다. 맞다. 그런 소.



#삶에_충실하려면_충전부터


매우 이기적인 발상이나, 출퇴근 시간만큼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은 없다. 나에게 집중하며, 하고 싶은 일을 누구의 간섭이나 눈치도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수록 이런 시간은 필요한데 따로 시간을 내는 것보다 어차피 하루 중 얼마간 써야 할 시간, 조금 여유를 갖고 생산적으로 보내는 편이 훨씬 이롭다. 하루 3시간을 자신을 위해 쓴다고 생각해보면 일 년이면 얼추 1000시간, 10년이면 그 유명한 1만 시간이 된다.  이 시간에 독서를 하면 빌 게이츠도 울고 갈 정도로 읽을 수 있고, 어학공부만 제대로 해도 제2외국어는 마스터할 수 있지 않겠는가. 꼭 자기계발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웹툰도 게임도 SNS도 다 좋다. 목표는 출퇴근 시간만큼은 자신이 맞닥뜨릴 수많은 순간에 '충실' 할 수 있도록 자기만의 시간으로 충전하는 것이다. 방점은 충.실.


충실한 사람은 후회가 없다. 조르바는 순수할 정도로 생에 충실한 인간이었고, 후회하는 법이 없었다. 일과 가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대개 자신이 생각하는 헌신과 상대방의 평가가 엇갈리기 때문에 생긴다. 애덤 그랜트의 책 <Give & Take>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부부 각자의 가정에 대한 헌신도율 합치면 100퍼센트가 넘는다. 즉 서로 자신의 헌신도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실제로 그들이 가사일을 하는 것만큼 관계에 있어서는 충실하지 못함을 반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상대를 이해함에 있어서도 충실할 수 있다면 부부 문제도 대개 해결된다. 현실의 행복을 위해 충실히 애쓰는 사람을 최근 욜로족이라고 한다. 이들을 현실의 행복만을 추구하기 위해 미래를 포기한 사람처럼 취급하거나 염려하는 이들은 오히려 착각하고 있다. 그들은 현실에서 행복을 찾고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 미래의 행복을 보장하는 열쇠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충실하게라는 것이 참 어렵다. 인간이 어떻게 매 순간을 진심으로 충실하게 살 수 있나? 불가능하다. 다만 경험으로 비춰보건데 상대에게 미안하거나 측은한 마음이 드는 순간, 조금 더 충실해지고자 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혼자서 여행을 다녀 온 후, 긴 출장을 다녀온 후,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다 온 후 등등등.  공통점은 모두가 나에게 주는 '휴식'이후에 오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매일의 출퇴근이 휴식같다면, 적어도 삶의 다양한 순간에 조금 더 충실한 인간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닐까. 


#사람_구경


지하철 풍경은 꽤 재미있다. 때론 사람을 너무 빤히 쳐다보고 관찰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기도 하지만. 그런 관찰을 통해 요즘 사람들이 무얼 잘 보는지 무얼 좋아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사람들 신발만 관찰해보라. 지금 어떤 신발이 유행인지 금방 알 수 있고, 옷만 봐도 날씨 예보가 따로 필요 없다. 아내는 지하철 4호선의 네 번째 좌석을 좋아하는데 그 자리는 뒤로 머리를 기댈 수 있는 기둥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같은 출근 시각 이 자리를 함께 경쟁하는 아저씨가 한 분 계시고, 그분은 다른 곳에 자리가 많아도 꼭 그 자리를 고집해서 옆 사람과 부대끼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한다. 아내는 괜한 승부욕이 발동해 먼저 자리를 차지하면 쾌감마저 든다니, 별별 인간 군상을 다 만날 수 있는 게 지하철이다.


#독서가_최고

내가 책을 읽는 공간, 지하철


지하철로 통근하면서 가장 좋다고 느낀 부분이 바로 독서다. 백색소음에 둘러싸여 사람들을 뒷배경을 한 채 읽는 책은 몰입이 잘 된다. 게다가 온통 스마트폰 일색인 풍경 속에서 종이책을 넘기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어 우쭐해진다. 나는 책을 두 권씩 가방에 넣어 다니는데 한 권은 좀 술술 읽히는 책, 다른 것은 좀 어렵지만 꼭 읽고 싶은 책이다. 아침 출근 시간에 어려운 텍스트는 졸음을 유발해서 피하는 편이라 쉬운 책으로 시작하고, 퇴근길에는 대개 앉아가기 힘들어 어려운 책을 읽어도 졸렵지 않아 난이도가 있는 책을 고른다. 그렇게 읽어온 책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굳이 시간을 내고 장소를 잡고 책을 읽으면 습관이 되기 어렵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습관을 만드는 길이다. 어떤이는 독서를 왜 습관처럼 훈련해야 하는것이냐고 했다. 재미가 되야지 습관이 되면 안된다고. 꼭 행복하고 즐거워야 웃는게 아니다. 웃으면 행복해진다. 독서도 습관이 되야 자꾸본다. 자꾸봐야 좋은줄 안다.


#떡실신


사람 구경도 재미없고, 책도 졸리다면  그냥 잔다. 자다가 내릴 곳을 지나쳐 다시 돌아오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돌아와야 할 땐 양옆에 상하행선을 끼고 승차장이 가운데 있는 역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완전 떡실신 모드가 되어 왼쪽 오른쪽 번갈아가며 어깨를 들이대다 보면 반응도 제각각이다.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부터 너그러이 대주는 이까지 가지각색인데, 내가 기억나는 한 사람은 내 일 점 오 배쯤 되는 운동선수 같았던 남학생. 안녕히 주무셨냐며 인사했었다. 뭐가 돼도 될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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