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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ikos Sep 20. 2018

남의 일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다만 나로서는 꿈이 진짜로 실현되는 것이 좋아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꿈이란 사람이 평생동안 옆에 가지고 다니는 질병이나, 아니면 습기가 찰 때마다 고통을 주는 주술의 상처로 남아있게 되지요.

프리모 레비, 「멍키스패너」 10p

 

 호기롭게 뛰쳐나와 회사를 시작하 들어오는 일이란게 대부분 '남'의 일이다. 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로부터 들어온 , 그 일의 결과로 운 좋게 이어진 까지. 꿈을 실현하겠다 선언하고 시작한 내 일은, 호구지책으로 얻은 '의 일'로 인해 백날천날 뒷전이다. 그렇다. 나 같이 구체적인 실행 계획없이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으니 일단 이 X같은 회사는 뛰쳐나가자' 라고 결심한 사람들은 대부분 당당했던 그것이 호기가 아니라 객기였고, 똘끼였음을 깨닫는 현자타임을 갖게 된다.

 

일단 먹고는 살아야지

 이렇게 타협이 시작된다. 와비파커의 창업자 넷도 투지가 넘치고 물불 안가리는 도전적인 이들이 아니었다. 안경을 온라인으로 팔겠다는 그들의 혁신은 그들 자신에게 조차 위험천만 해 보였기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도록 인턴이나 회사, 투잡의 여지를 두었다. 현실과 타협한 셈이다. 책, <오리지널스>에서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신중함으로 표현했고, 바로 그 신중함이 와비파커를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언급한다. 끊임없이 주변을 경계하며 살아남도록 진화한 동물처럼. 돈 없고 빽 없이 아이 키우며 가정을 일구고 사는 대한민국의 대다수는 대출의 노예다. 버는 족족 은행은 월급을 채굴해가니, SCV 한 마리로는 역부족이라 맞벌이는 필수. 결국 아이를 돌봐줄 누군가가 필요하고, 그 누군가에게 애써 캐낸 미네랄을 대며 버는 만큼 더 쓰는 구조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렇다. 일단 나와 내 새끼는 먹여 살려야지 엉뚱한 생각이라도 벌일 수 있는 나는 용자와는 거리가 멀고, 신중해야하고 현실과의 적절한 타협이 필요하다. 이쯤되면 똘끼조차 없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이왕 하는 거라면 잘하고 싶은데.

 기왕지사 하는 거 잘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이마저도 보통 일이 아니다. 왜 이렇게 의사소통이 어려운지. 왜 우리 갑께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얘기를 마치 처음부터 강조해왔던 것 처럼 말하시는지. 애초 합의로 정해진 업무 범위는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건지. 배가 산으로 가는 걸 알면서도 묵언수행하듯 지켜만 봐야하는지. 왜 그 일은 꼭 내일 아침에 봐야하고, 월요일 아침에 보고해야하는 건지. 등등등.


"너는 학생이고 나는 선생이야."

 그래 매우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우리가 그걸 망각할 뿐. 아주 가끔은 감정이란 몹쓸 기분이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도대체 왜. 뭐가 문제일까?



힘을 빼야 한다.

분명 나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저들에게 고용된 자다. 당연히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이유, 즉 그들의 의뢰에 있어서 더 많이 알아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분명한 답과 방향성을 제시해야 함이 옳다. 하지만 이는 반만 맞다. 그들은 나를 필요로 하지만 설득은 필요치 않다. 나의 제안과 의견이 필요하지만 거부와 간섭은 참을 수 없다. 감히 어딜. 그뿐인가. 담당자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업력이 쌓인 사람이라면 고용된 자는 그저 입다물고 시키는 일만 잘 해내면 될 뿐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있고 확신에 찬 태도로 말하는 사람을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를 꼭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끝까지 설득할 필요는 없다. 그 길을 잘 가는 것이 그의 목표가 아닐 수도 있고, 내가 이끈 방향이 꼭 올바르다고 말할 수 도 없다. 어차피 일이란 게 정답이 없다. 힘을 빼자.


차라리 질문을 하자.

도무지 뭘 원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가? 도저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되는가? 그렇다면 차라리 질문을 하자. 그들의 니즈를 잘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줍짢게 의견을 제시하거나 제안을 하는 것은 좋은 답이 될 수 없다.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답을 꼭 주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답을 얻기 위해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질문을 던지다 보면 상대방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분명한 디렉션이 나올 때가 있다. 또 여러가지 질문이 대화의 윤활유 작용을 하기도 한다. 이건 왜 이런가요? 왜 그런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왜 저런 방법을 선호하나요? 등등등. 그에게 우리의 진심이 전해질 때가 있다. 또 의외의 가려웠던 구석을 발견해내 진짜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수면 아래 속 빙하의 크기를 목격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 묘한 쾌감을 느낀 우리 갑님이 우월감을 느껴 잘 영도해주신다.


누구나 어딘가에서는 '을'이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의 잡지를 만들던 선배가 들려준 일화가 있다. 잡지 일로 유명한 영화배우와의 인터뷰와 식사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의 대표가 동석하고 싶어하더란다. 그리고 그 의사를 전한 것은 다름 아닌 그 선배를 그렇게 달달 볶던 갑 부장님. 인터뷰와 식사 자리에 대표의 동석이 결정되기까지 대략 일주일동안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를 하며 성사여부를 묻던 부장에게 선배가 참다 못해 그만하고 기다려주십사 부탁했는데, 그 부장이 이렇게 답했단다.


"제 자리는 의전이 반이에요. 이해 좀 해주세요. "


그도 어딘가에선 을이다.

날마다 현실과 타협하며 누군가의 눈치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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