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씨의 공장기 #4
‘불쾌한 골짜기 효과(Uncanny Valley)’라는 말이 있다. 일본의 한 로봇공학자가 만든 말인데, 기계가 인간을 닮아감에 따라 점차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지나치게 닮았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호감도가 급감하고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
싱가포르에 있는 거대한 식물원인 Gardens by the Bay는 자연과 너무 닮아 오히려 이질감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그 기분은 이 곳에 들어갈 때 보이는 거대한 나무 모양의 조형물부터 시작된다. 태양광 발전 기능이 있는 Supertree Grove는 싱가포르의 상징 중 하나이다. 목이 아프도록 고개를 위로 꺾어야 전체 나무의 형상이 보이는데, 조명이 달린 모양이 한없이 인공에 가까우나 전체 모습은 영락없는 거대한 고동에 가지가 뻗어있는 나무의 형상이다.
열대나무 사이로 우뚝 솟아있는 18그루의 거대한 인공나무를 지나 실내로 들어가자마자 시야를 가득 메우는 것은 거대한 폭포이다. 밖은 분명히 땀이 따끔따끔하게 흐르는 여름날인데, 순식간에 팔에 소름을 돋우는 에어컨 공기가 몸을 식힌다. 폭포 아래에 서서 기념사진을 남긴다. 작은 물방울들이 뺨과 팔뚝을 스친다.
그 다음에 펼쳐지는 것은 거대한 밀림. 온갖 열대 나무와 꽃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데, 위에 보이는 유리 격자만 없다면 서늘한 아프리카의 밀림에 들어온 것으로 착각할 지경이다. 밀림은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직으로도 높이 솟아있다. 중앙의 엘리베이터 홀을 둘러싼 가파른 언덕을 채우고 있는 것은 각종 덩쿨식물이다. 웅장하고 기괴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서 스카이워크를 걸었다. 하늘을 배경으로 화분 속 식물들이 땅에서 자라나 위로 올라온 것 마냥 꼿꼿이 서있다. 지하로 내려가니 종유석 무리가 있다. 천장에 붙여 놓자니 안전문제가 있어, 종유석을 바닥에 놓고 천장에 거울을 달아 천장에서 내려온 종유석을 표현했다고 한다. 거울에 비친 상은 조각나있고 찌글찌글하다.
지하에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영상을 틀어주는 영상관이 있다. 각지에서 수입해 온 종유석과 열대 식물로 가득 차 있지만 에어컨 바람으로 서늘한 공간 바로 아래서. 이보다 큰 아이러니가 있을까.
반대편 전시관으로 넘어갔다. 초록 나뭇잎들 사이로 금색 기와를 얹고 기둥을 붉게 칠한 전각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건너에는 나무로 만든 용과 사슴의 조각상이 있다. 귤이 빽빽하게 열린 동그란 귤나무 화분도 있다. 중국식 홍등으로 장식한 철제 아치 구조물 아래를 지나가며, 불쾌한 골짜기 효과가 한번 더 생각난다. 자연 사이에 섞여있는 노골적인 인공물들. 유리로 하늘을 가두고 에어컨으로 바람을 막아버린 공간.
d. 2018.1.12-15. 3박 5일간의 싱가포르 출장기
공장기(空場記) : 공간과 장소에 대한 기록
우리는 매일 여행을 하며 살아갑니다. 집에서 회사로, 학교로, 카페로, 서점으로, 그리고 다시 집으로. 여행에서 만난 공간과 장소에 대한 기억을 담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