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책을 만난 건축 #1_덴 헬더(네덜란드) School7
여행을 떠나기 몇 주 전, 친구의 트위터 계정에서 사진 한 장을 보았다. 2018년에 국제도서관협회 연맹(IFLA)에서 세계 최고의 공공도서관으로 선정한 School7이다. 이름도 생소한 덴 헬더(Den Helder)라는 도시에 있다고 한다. 건립 과정과 결과물이 흥미로워 여행을 떠나는 김에 꼭 한 번 방문해 보겠다며 노트에 적어두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려 도착하는 덴 헬더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반도 형태의 작은 도시다. 도서관은 기차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그 바로 옆에는 내항이 있어 수상구조 박물관의 구조선들과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촬영에 쓰였던 배가 전시되어 있다.
도서관에 들어가기 전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노란색으로 칠한 철골 구조물과 그 옆에 붙어 있는 벽돌이다. School7은 옛날 학교 건물을 개조하여 도서관으로 만든 곳이다. 기존 건축물을 감싸는 형태로 새로운 건물이 지어졌다. 건축가는 옛 학교의 벽돌과 지붕을 최대한 활용하고 그 형태를 남겨놓았다.
노란색 철골 구조물을 지나면 2.5층 높이의 홀이 나온다. 홀에 있는 스탠드를 오르면 잡지와 신문을 읽는 공간이 나오고, 반 층 더 오르면 카페가 있다. 카푸치노 한 잔과 애플파이 하나를 주문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온 (예비)건축가라고 소개하고, 이 도서관을 보기 위해 도시를 방문했다고 했다. 잠시 후 커피를 반쯤 마셨을 때 카페에서 이야기를 들었다며, 도서관을 소개해주기 위해 흑발에 갈색 눈을 가진 멋진 직원 분께서 나와주셨다. 도서관의 PR 및 커뮤니케이션 담당 아니타(Anita Ruder)라는 분이었다.
아니타는 도서관의 이곳 저곳을 데리고 다니며 공간과 역사에 대해 소개해주었다. 2차 세계대전으로 덴 헬더는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옛 학교 건물은 얼마 남지 않은 역사적인 건물 중 하나였다. 학교가 폐교되고 나서 예술가들이 무단으로 들어와 작업실로 쓰다가 건물이 너무 낡아 떠나고, 몇 년 동안 빈 건물인 상태였다. 건물을 도서관으로 개조하고자 하니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마침 덴 헬더 도심을 재생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시청과 항구를 남북으로 잇는 녹지축을 만드는 것이 첫 거리 프로젝트였고, 그 이후에 두 번째, 세 번째 프로젝트를 연달아 시행하고 있다. 기차역에서 도서관으로 오는 길에 상점이 양쪽으로 가득한 널찍한 거리가 있는데, 이는 도시의 동서를 연결하는 축이며 축 한 가운데에 도서관이 있는 것이다. 도서관의 신축 부분은 이 부분을 고려하여 양 쪽에서 각각 상점가와 항구가 보이도록 큰 창을 내었다.
로테르담에서 온 건축가인 에블린 반 빈(Evelien van Veen)이 옛 학교를 도서관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맡았다. 설계 과정에서 건물의 주인과 세입자인 도서관이 모두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건물은 실제 사용자인 도서관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옛 화장실 벽을 그대로 살려 개인실로 만들고, 네덜란드 전통대로 창가마다 턱을 두어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게 하고, 또 중앙 홀 뿐만 아니라 강당과 교실 등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여러 군데 만든 것이다. 심지어 아니타가 이탈리아에 가서 본 펠트 재질의 노트북 의자도 같은 제품을 찾아주었다고 한다. 책은 고정하중을 많이 받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안전한 도서관의 신축 부분에 서고를 만들고, 옛 학교 부분에는 카페와 강당, 사무실, 이민자 언어교실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을 만들었다.
디자인이 훌륭한 도서관이 지역에 들어오자 많은 이들이 공간에 감명을 받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한 사진작가는 도서관에 대한 글을 읽고 찾아와 신축 부분의 1층에서 3층까지 잇는 벽면에 걸 수 있도록 작품을 기증하였다.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주었던 책을 들고 직접 찍은 사진들이다. 자원봉사자를 구하는 홈페이지 게시물에는 3일간 50명이 지원하여 황급히 글을 내리기도 했다고. 디자인의 힘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도서관에는 재미있는 공간들이 많다. 2층의 테라스에서 빼꼼 튀어나온 유리 난간의 작은 테라스가 있어 홀의 계단을 내려다보도록 되어 있다. 시민들은 이 테라스를 로미오와 줄리엣 테라스라고 부른다. 며칠 전 오페라 가수가 와서 테라스에 서서 공연을 하고, 어린이들과 지역 주민들이 홀의 스탠드에 모여 앉아 공연을 감상했다고 한다.
카페와 연결된 커다란 강당은 계단식 좌석이 놓여 있고, 맞은편 커다란 창에서는 항구를 조망할 수 있다. 좌석은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그라데이션으로 배색되어 있어 올라갈수록 색이 어두워진다. 좌석에 앉은 사람의 수가 적어도 앞에 모여 앉으면 뒤쪽 좌석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리가 가득 차 보인다는 것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세심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강당에서는 강연이나 요가 교실, 영화 감상회, 심지어 결혼식까지 열린다고 한다. 좌석 위쪽은 사무실로 통해 있는데, 신부가 사무실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와서 입장하기도 한단다.
도서관 측의 배려로 사무실도 구경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었다. 사무실의 절반은 옛 건물에, 나머지 절반은 신축 부분에 걸쳐져 있다. 벽면과 지붕 등 옛 건물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덴 헬더가 속해있는 지역에 총 18개의 도서관이 있는데, 지역 도서관을 총괄하는 사무실이 이 곳에 있어 넓은 공간을 필요로 했다고 한다.
각각의 도서관이 외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총괄하는 사무실이 있다고? 이 말에 궁금증이 생겨 네덜란드의 도서관 정책에 대해 찾아보았다.
네덜란드의 공공도서관은 ‘기초도서관(PSO)-분관-지역서비스 조직’의 구조로 이뤄져 있다. 기초도서관은 일정 규모 이상의 연구를 도서관 서비스 담당영역으로 가지고 있고, 각각의 개별 도서관들은 지역의 서비스 조직으로부터 서비스 지원을 받는 동시에 분야별 역할에 있어서 국가적 규모의 상호협력을 조직적으로 운영하도록 도서관 조직의 재편을 제안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공공도서관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공간적 질’이다. 이전의 공급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여타의 공공 공간 및 시설과의 ‘관계적 배치’ 가운데 도서관 공간계획의 방향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슈퍼 라이브러리> 신승수 외)
School7은 네덜란드 북쪽의 기초도서관 조직(Noord-Holland)에 속한 분관(KopGroep Bibliotheken)이다. 단순히 덴 헬더 시의 중앙도서관 역할이 아니라, 홀란츠크론(Hollands Kroon), 스하헨(Schagen), 그리고 텍셀(Texel) 시까지 총 네 개의 도시를 아우르는 역할이다.
사무실 한켠에는 도서관장실이 있다. 자신타 크림프(Jacinta Krimp) 도서관장께서 환대해주셨다. 관장실은 옛 건물의 꼭대기에 있어 벽면 아랫쪽으로 뻐꾸기창이 뚫려 있는데, 그 앞에 낮은 쇼파와 테이블을 두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관장실에서 이어지는 방에도 회의실이 하나 있는데, 사무실 사람들이 쓰기도 하고, 지역 주민들이 회의할 공간이 필요할 때 빌려주기도 한다.
꼭대기까지 모두 구경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공간 한 켠에 커다란 터치형 스크린과 오래된 사진이 있다. 스크린에서는 덴 헬더의 역사를 볼 수 있는데, 이 자료는 덴 헬더 역사관에서 관리해주고 있다고 한다. 사진은 100년 전 학교를 처음 지었을 때의 모습이다. 도서관 곳곳에 사진을 프린팅한 러그가 깔려 있는데, 해당 지역의 옛 모습을 인쇄한 것이다. 가장 안쪽 공간에는 어르신 자원봉사자들이 있는 방이 있다. 옛날 자료를 스캔하고 저장할 수 있도록 컴퓨터와 스캐너 등이 있다. 그 옆 창고에는 역사 아카이브가 있다.
도서관을 처음 지을 때 지역의 거실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컨셉이었다고 한다. 누구든 찾아와 일하고 이야기 나누고 공부하고 시간을 보내니 훌륭히 그 역할을 해내고 있는 셈이다. 공공건축을 소중히 생각하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지혜와 역사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인드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시간을 내어 도서관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신 아니타에게도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유럽을 반 바퀴쯤 돌고 스페인에서 도착해서 플라멩코 공연을 볼 때 우연히 네덜란드 청년과 옆자리에 앉았다. 네덜란드에서 어느 도시를 가보았냐고 묻길래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그리고 덴 헬더에 가보았다고 했더니 놀라워했다. 덴 헬더가 워낙 작은 도시라 갈 이유가 두 가지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해군에 입대하려는 것이거나, 멍청해서거나. 그래서 말해주었다. School7이라는 이름의 세계에서 가장 멋진 공공도서관이 덴 헬더에 있으니 꼭 한번 가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