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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희 Dec 11. 2019

어떤 상담자가 좋은 상담자일까?

어떤 상담자를 좋은 상담자라고 할 수 있을까?

한 마디로 정의할 수도 없고 객관적인 기준을 나열하기도 어려운 문제이다. 

나는 상담사들을 평가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들에게 상담을 받았던 내담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상담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상담 후기를 공유한다거나, 자신이 상담받았던 상담자들을 좋은 상담자라고 평가한다고 해도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이며 그 평가가 공개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일반적인 내담자는 잘못된 상담자를 만나더라도 자신을 탓하며 상담을 그만둔다거나 

핑계를 대고 다른 곳으로 옮겨 상담을 받더라고 평가를 남기지 않는다.


우리는 작은 토스터기를 하나 사더라도 네이버 판매 순위나 블로그의 리뷰, 판매 사이트의 구매후기 등등.. 수많은 정보를 확인하고 물건을 구매한다. 그리고 구매후기를 남기지만, 상담의 후기는 남길 곳도 없고, 자신이 상담을 받는 것을 숨기기 원하기 때문에 사실 어디에서도 그 평가는 찾아볼 수가 없다.

내담자들은 서로에게 익명의 존재로 존재하며, 같은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더라도 서로를 알지 못한다.

각 내담자들의 평가는 매우 개인적이고 지극히 주관적이며, 모두에게 공통된 감정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만나봤던 의사와 상담사들, 그리고 주변의 상담사로 일하시는 분들이나 공부하시는 분들을 보면 공통적인 부분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자신이 평가받기를 원하는 상담사나 의사를 본 적이 없다. 

둘째, 자신이 잘못된 상담을 진행했다거나, 실수를 했다고 인정하는 의사도, 상담사도 만나지 못했다. 

나의 통계는 아주 주관적이며, 내가 아는 사람들을 통해 내린 결론이기에 모두에게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상담사나 의사들의 이런 생각은 독선적이며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철학자도 인간이 완벽하다는 명제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 진실이다.

그렇기에 그들도 불완전한 존재이다.

어디에서나 맹목적인 믿음은 위험하다.  

우리가 상담자를 찾거나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일 것이다. 

정말 얘기할 사람이 필요한 단순한 이유에서부터 심각한 상황들까지 그 모든 이유를 하나로 묶을 수는 없지만 대부분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던가 '내가 뭐가 잘못된 걸까요?' 혹은 '내가 틀렸을까요?' 즉, 올바른 답을 듣기 위해서 일 것이다.

때로 자신이 답을 알고 있더라도 실행할 용기가 없어서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있으며, 

길을 잃고 헤매는 경우가 수없이 많을 것이다. 

특히 내 아이의 문제라면 부모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상담을 진행하며 상담자와 내담자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답'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계해야 할 것은 많은 상담자들이 자신이 옳다는 명제와 권위를 가지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가, "상담자"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상담자 또한 불완전한 인간이며, 내담자와 똑같이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고된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고, 우리와 똑같이 하나의 일생을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오류를 범하는 것은 당연하다. 상담자와 의사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조언은 당신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달라이 라마는 치유자가 할 일은 "인생의 가시덤불 길에서 길을 잃은 사람을 이끌어주는 것"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가시덤불 길이라는 것은 어둡고 위험하며, 날카로운 가시덤불로 가득 찬 곳이다. 가시덤불 안에서는 빠져나가는 방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고통을 겪고 있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내담자들에게, 기나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길을 잃은 누군가에게 인생이라는 가시덤불을 헤쳐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게만 보이고 막막할 것이다. 막다른 길에서 헤메이는 어느 누군가에게 내담자는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길을 찾아 줄 수 있는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다면 그가 진정한 치유자일 것이다. 

모든 상담사가, 의사가 이런 치유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오만과 권위로 내담자를 평가하고, 

자신의 논문 주제로 생각한다거나 

자신이 우위에 서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또 내담자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교만하지도 않아야 할 것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진실이니까 말이다.


상담자들에게 있어 모든 내담자들은 여러 내담자들 중에 한 명에 불과하지만, 

내담자의 입장에서는 유일한 한 명의 상담자이다.

이 가장 단순한 사실이 내담자와 상담자의 입장을 나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위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은 언제나 상담자이겠지만, 


상담자 스스로 그 권위를 버리고 


내담자를 평가하는 상담사가, 의사가 아니라


진정한 치유자가 되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위 사진은 국립아시아 문화의 전당의 "아세안의 빛 하나의 공동체" 전시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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