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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희 Jan 14. 2016

같은 길에서 만난 다른 모습
전주

여행의 의미-순례 NO.2

거꾸로 쓰는 여행기-순례#2 세 번째 만남 전주

마지막 여행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두 번째 순례 여행기이다. 2015년 한 해 동안 나는 그동안 내가  궁금해하지 않았던 우리 역사와 우리가 지나온 길을 보게 되었고 그동안 보지 않았던 것들을 보았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사람들에게 잊혀가는 선교 사분들의 이야기도 알리겠다던 나는 무리한 스케줄과 쌓여 있는 책들에 지쳐 버렸고, 또 한편으로는 지나온 우리의 역사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의 전주 여행에서 늘 가던 길에서 다른 모습을  만났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군산 여행의 끝에 전주로 향했다. 쉴 틈 없이 짜였던 군산에서의 일정 덕분에 전주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녹초가 되어 있었다. 지치고 배고픈 우리들은 한옥마을에서 먹었던 석갈비를 꼭 먹어야 했다. 오로지 석갈비와 지팡이 아이스크림을 위해 토요일 오후의 복잡함을 무릅쓰고 예정에 없던 한옥마을부터 향했다. 배를 불리고 각자가 원하는 군것질을 위해 경기전과 전동성당의 사진을 한 장 더 찍겠다는 어설픈 핑계를 앞세우고 한옥마을을 방황하기 시작했다. 행군에 가까웠던 일정에서 벗어나자 살 것 같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골목을 누볐다. 

오랜만에 만난 담벼락의 해바라기와  골목골목의 담장과 한옥은 여유로웠다. 

그리고 승광재가 있는 골목에 이르렀다. 


'들어가도 되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들이 계속 드나드는 모습에 나도 들어가 보았다.

승광재는 주변 게스트하우스와 다를 바 없는 작은 한옥이었다. 아주머니 두 분이 마루 끝에  걸터앉아 야채를 다듬고 계셨고, 한쪽에 빨랫줄에 걸린 빨래와 일상적인 물건들이 보였다. 입구에 생뚱맞게 세워진 플랑카드는 좁은 마당을 더 좁게  만들었고, 끊임없이 들어오고 나가는 관광객들의 수군거림과 "찰칵"거리는 셔터의 소리는 마음을 점점 불편하게 했다. 나는 안에서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내가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사실 뉴스 기사와 사진 한 장만 보고 전주시에서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었다. 무너지고 망해버린 왕족이지만 조선 500년 역사의 후손인데 꼭 이렇게 시끄러운 관광지 한 가운데에서 살게 해야 했을까? 혹시 살게 했더라도 이런 식으로 그 사는 집에 게스트 하우스처럼 한옥 체험이라니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블로그들의 여행후기에는 아래처럼 올려진다.

나는 동물원에 가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창살 사이로 보이는 그들의 슬픈 눈동자도,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모습도 열악한 환경을 보면 늘 불편한 마음으로 돌아오게 된다.  비약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비슷한 불편한 마음으로 되돌아 나왔고, 누군가의 살고 있는 집을 몰래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씁쓸한 현실과 마주한 한옥마을의 모습은 더 이상 정겹지도 여유롭지도 않았으며, 한옥 마을을 나오는 길에 마주한 평화의 소녀상과 세월호의 노란 리본은 더 없이 무겁고 무거운 현실이었다.

올 한 해 나는 그동안 내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우리 역사와 우리가 지나온 길을 보게 되었고, 그동안 보지 않았던 것들을 보았다. 



세상을 살면서 보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모른  척할 수도 있고, 불공평함과 싸울 수도 있다. 또는 타협할 수도 있다. 예전의 내가 모른  척하는, 외면하는 삶을 살아왔다면 이제 나는 어떤 길로 가야 할까?라고 나 자신에게 질문을 하면서 전주 예수병원과 기전여자대학교로 향했다.


전주 예수병원은 선교사들이 세운 병원이다. 그리고 일제에게 쫓겨났던 선교사들이 해방 후 다시 돌아와 병원을 꾸려갔었고, 애양원의 초대 원장이며 광주기독병원의 시초였던 광주 제중원의 윌슨 원장의 아들인 닥터 존 윌슨이 한동안 가족들과 함께 돌아와 아이들을 진료하기도 했었던 병원이다. 1895년 1월 7인의 선발대 중 테이트 남매가 은송리의 작은 집에서 첫 예배를 드린 것을 시작으로 레이놀즈 선교사 부부, 1896년 해리슨 선교사가 오면서 의료선교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897년 마티 잉골드 선교사가 은송리의 작은 초가집에서 여자 환자를 진찰하기 시작한 것이 전주 예수병원의 시초이다. 위 사진의 옷과 구두는 잉골드 선교사가 입었던 것으로 전주 예수병원의 의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당시 독신으로 온 선교사들이 결혼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잉골드 선교사는 테이트 선교사와 결혼했다. 그리고 전주 예수병원의 7,9,11대 원장이었던 구바울은 선교사였던 아버지 크레인 목사로 인해 순천에서 자랐고,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마친 뒤 1947년 돌아와 오랫동안 예수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았다.

박물관에서 만난 여러 모습들과 의학 기구들과 정리되어 있는 시간의 기록들과 전주에 왔던 선교 사분들의 많은 이름들은 내가 알지 못했던 역사의 조각이었다. 첫 여성 병원이라 할 수 있는 보구여관이 1887년에 시작되었으니 호남지역의 의료혜택은 10년은 늦었다고 볼 수 있다.  뒷산에 남아있는 선교사 묘역의 작은 무덤들은 채 자라지 못하고 이 땅에서 숨을 거둔 선교사 자녀들의 무덤이었다. 전킨 선교사의 세 아이 무덤과 잉골드 선교사의 아이 무덤, 린튼과 티몬스 선교사의 아이의 무덤은 다시 나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무엇을 할 수 있냐고 말이다. 


전주에 와서 느낀 씁쓸함, 무거움, 그리고 복잡한 마음으로 전주 예수병원이 이전하기 전의 옛 건물로 향했다. 

지금은 엠마오 사랑 병원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예전 건물을 그대로였다.


누군가의 블로그에 올려진 대로 빨간 벽돌 길을 따라 올라갔다.



병원 마당에서 전주 시내가 내려다 보였다. 




높다.

전주의 병원과 학교도 높은 고지대였다. 

군산도 그랬고, 

하물며 광주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풍장터에 선교사들은 집을 짓고 교회를 세우고 병원을 지었다. 

고단함이 느껴졌다. 




전주를 나오는 길에 마로덕 선교사의 공적비가 있다는 호성 교회에 들려보고 싶었다. 교회를 찾아 논밭 사이의 좁은 길을 달려 논길 옆의 교회를 찾아 갔지만 실수였다. 호성 교회와 호성 제일교회 두 군데가 있었다. 하지만 잘못 찾아 간 그 교회의 표지석에 마로덕 선교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표지석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 원래의 목적지였던 호성교회로 향했다.


그리고 100주년 기념비와 마로덕 선교사비도 보았다.


전주 예수병원과 신흥 중, 고등학교, 기전여자대학교, 서문교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길도 없는 외진 곳의 교회들도 만났다. 그 옛날, 말을 타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나룻배를 타고 작은 섬들까지 찾아가 이름도 없는 여인과 아이들을 돌보고 환자들을 살피던 그들의 정성을 우리는 알지조차 못하며, 기억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지도 모른다. 전주 여학교의 이름이 전킨 선교사의 죽음을 기리며 "기전"여학교가 되었고, 서문교회 마당에 남아있는 종루가 전킨 선교사의 부인이 미국에 돌아가 기증한 종을 일제가 떼어가고 종루만 남은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전주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신흥학교에 남아있는 리차드슨 홀의 현관처럼, 신흥학교의 건물들과 새로이 이전한 전주 예수병원과 예수대학교 건물, 옛날의 예수병원 건물까지 누군가의 기부로, 도움으로 지어진 것들이지만 우리는 어떻게 생겨났는지 왜 그들이 도왔는지, 누구였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불과 100여 년 전 이 땅이 핍폐한 때에 버려진 아이들과 여인들, 나환자들까지 감싸 안고 제일 낮은 곳에서 섬겼던 이들을, 대를 이어 이 땅에 와 스스로의 아이들을 잃고도 그들의 신분이 선교사였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지나치는 것은 역사를 부인하는 일본과 다를 바가 있을까?

일본이 한 일들이 독일이 한 일보다 더 가벼운 죄인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잘못도, 역사도 잊으면  안 되겠지만 감사함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모두 같은 선교사이지만 호남지역에 왔던 선교사들은 서울에서의 편안함과 안전한 생활과 거리가 멀었었다. 

논과 밭 사이를 걷고 또 걸었으며, 나룻배로 섬들을 돌았고 자녀들은 대를 이어 이 땅에 와서 선교사로 섬겼다.


그들의 고단함을 나는 기억하고 싶었다. 


그리고 함께 여행했던 나의 아이들이 기억하기를 바란다.








<전주 여행 정보>

전주 여행정보 사이트 주소입니다.

http://tour.jeonju.go.kr/index.9is


전주는 워낙 여행정보가 많습니다. 블로그 후기도 많고요.

저는 전주가 가까워 숙박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한옥마을 민박은 개인적으로 저는 시끄러운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추천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있으신 가정은 체험학습의 의미로 한번 정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지만 좀 더 조용한 고택을 추천합니다. 


제가 가본 곳의 정보만 올리겠습니다.

 

+예수병원 의학박물관  063-230-8778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서원로 365 예수병원

(지번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1가 300 예수병원 기독의학연구원 2층)

                                                                                                                                                                            museum.jesushospital.com/ 


○ 운영시간 : 화요일~토요일 9:00~17:00

                      

   ※ 매주 월요일, 일요일, 법정 공휴일은 휴관

   ※ 주차는 병원 길 건너편 제2주차장



+전주 신흥 고등학교  063-232-7072~3

전주시 완산구 서원로 399

(지번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188번지)


 www.shmission.hs.kr                  



+기전대학교  063-280-5208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주천서로 267 전주기전대학

(지번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1가 177)

               

www.kijeon.ac.kr/ 



+전동성당 063-284-3222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51

(지번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동 200-1)


http://www.jeondong.or.kr/



+서문교회 063-287-3270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주천 동로 220

(지번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다가동 3가 123)


 www.i-seomoon.or.kr                  



+전주 청년시장  070-8801-8218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 2길 53 남부시장                        

(지번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동 3가 2-241 남부시장 6동 2층)  

               

http://www.facebook.com/2Fchungnyunmall


광주에도 청년시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주 남부시장의 청년몰이 더 재미있고 활기찬 거 같습니다. 서울 강남역에 자주 가던 케밥집이 있었는데 청년시장에서 먹은 케밥이 맛은 비슷하겠지만 재료가 훨씬 푸짐한 거 같아요. 전주 가면 항상 청년시장에 괜히 들른답니다.



+전주 한옥마을  062-282-1330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말이 필요 없을 만큼 다들 잘 아시지요? 주말이나 영화제 같은 행사가 있을 때는 특히 더 붐빕니다.

한옥마을 입구에 전동성당과 경기전이 있습니다. 

한옥마을 자체 내에 동락원도 있고, 여러 가지 작은 박물관도 생겼더군요. 


참고로 동락원의 다른 이름은 전킨 체험관이라고 하더군요.

홈페이지에는 

"풍남동  소재의 500여 년 된 은행나무 골목에 위치한 동락원은 기전대학이 지역의 문화사업인 전통문화 계승사업에 필요한 전문인을 양성하기 위해 한국은행 관사였던 이 곳을 보수하여 학교의 전통과 학생들의 실습교육장 및 일반인들을 위한 체험관으로 활용하고자 합니다. 또한 동락원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회가 전주에 들어와 학원선교를 구체화시킨 전킨 선교사의 기념관이기도 합니다. 전킨 선교사가 활동하던 1895년 당시 전주의 옛 모습을 재현한 전통 한옥 공간으로 방문객들이 직접 체험하는 교육의 장으로 쓰일 것입니다."라고 되어 있지만 역시 체험과 숙박 위주인 거 같습니다.


동락원 063-285-3490

http://www.jkhanok.co.kr/index.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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