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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len Mar 06. 2022

'헬린이'를 도둑맞은 헬린이들에게

    박완서 작가의 <도둑맞은 가난>은 꽤 오래된 소설이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근본 심리를 담고 있어서인지 여러 가지 풍자에 쓰이곤 한다. 최근에 본 대표적인 사례는 '도둑맞은 아싸'가 있다. '인싸'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인싸로 남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아싸'로 칭하기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분노한 아싸들은 인싸들이 아싸의 칭호를 마치 장신구처럼 취급하며 '진짜 아싸'들을 욕보이는 세태에 대해, 이 소설을 인용하며 울분을 토해낸 거다.


    헬스계(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분명히 프로급의 몸을 가진 이들이, 스스로 '헬린이(헬스+어린이)'라 칭하면서 진짜 헬린이들의 기를 죽이곤 한다. 심지어는 스쿼트 120kg 인증 영상을 올리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이가 있다. 지켜보는 헬린이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아무튼 그런 전방위적인 침공에 맞서서 헬린이들도 '헬세포'나 '헬생아' 같은, 더 약해 보이는 호칭을 만들어내며 그리로 도피하고 있다.

    

    <도둑맞은 가난>의 유명한 구절을 빌어 말하자면, 헬스 고수들은 '헬린이' 칭호를 탐내고 그걸 훔쳐다가 그들의 근육을 한층 돋보이게 하려는 못된 심보를 갖고 있는 걸까? 우리는 지나친 겸양으로 오히려 주변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들을 종종 본다. 그중에는 자기 자신을 뽐낼 가장 은밀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다가 겸손이라는 방법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 몸도 좋은 사람이 겸손하기까지 하다는 일석이조의 칭찬을 받을 수도 있고, 혹여 진짜 의도를 알아챈 이들이 '기만자'라고 욕해도 딱히 현실에서 잃을 건 없는 거다. 그러나 이런 불순한 사례들이 있다 해도, 헬린이를 자청하는 이들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 명실상부 헬린이였던 1~2년 차에는 나 역시 질투 섞인 적개심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조금 더 지나고 보니 그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느낀다.


    인간은 본래 약하다. 이 단순한 사실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

    최근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었다. 마치 길을 걷다 상상도 못 할 만큼 비싼 차를 보았을 처럼, 바삐 움직이던 눈을 멈춘 채 한동안 감탄을 연발하며 되새긴 구절이 있다.

    "사람이란 참 여린가 봐요. 머리며 뼈가 온통 엉망으로 뭉개져버렸대요.
     곰 같은 건 더 높은 바위에서 떨어져도 몸에 상처 하나 입지 않는다는데."

    오늘 아침 고마코가 하던 말을 시마무라는 생각했다. 바위가 많은 곳에서 또 조난이 있었다는 것을 가리키면서 한 말이었다.

    곰처럼 튼튼하고 두꺼운 모피를 가지고 태어났다면 인간의 관능은 훨씬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얇고 매끄러운 피부를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석양이 비치는 산을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시마무라는 감상적으로 사람의 살결이 그리워졌다.

    "인간은 얇고 매끄러운 피부를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보디빌딩 프로 선수의 무지막지한 근육 위에도 피부는 한 꺼풀뿐이다. 그 한 꺼풀의 피부가 없으면 아무리 강한 도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찢어지거나 꿰뚫리는 위태위태한 피부 아래에서, 조금의 강함과 아름다움이라도 얻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관절과 인대는 또 어떤가. 인간에게는, 근육을 키우려면 쉼 없이 '점진적 과부하'를 걸어야 한다는 운명적 저주가 내려져 있다. 중량을 점점 올리다가 잘못된 욕심이나 한 순간의 방심으로 염좌나 디스크라는 천형(天刑)을 받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인간에게 내재된 약함은 더욱 뼈저리게 다가온다.

    웬만큼 체계가 잡히고 안정된 사회에서는,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들은 가만히 놔두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돈은 계좌에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고, 직업도 쉽게 잃어버릴 일은 없다. 그러나 근육만큼은 예외다. 만들 때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데, 며칠만 운동을 게을리하면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사라지고 만다. 나처럼 운동을 업(業)으로 삼지 않는 이들이 근손실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야근, 회식, 질병 등 오만 가지 이유로 인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뼛속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근육, 혹은 넓은 의미의 '육체미'는 약하게 태어난 인간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돌탑과 같다. 쌓아 올릴 땐 하나씩 조심스럽게 해야 하지만, 무너질 때는 결코 하나씩만 무너지지 않는다. 몸을 만드는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쇠질을 하는 이들은 그렇게 나름의 고행(苦行)을 계속하고 있다. 한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걱정을 가득 안은 채.


출처 : 유튜브 <강경원TV>

    쇠질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튜브의 불가사의한 알고리즘으로 강경원 보디빌더의 영을 한 번쯤 접해 보았을 것이다. 그는 한국 보디빌딩 역사를 통틀어 보아도 비교 대상이 몇 없을 정도로 전설적인 아이콘이지만, 구독자들이 보내준 운동 영상에 대한 피드백을 해 줄 때는 종종 '겸손(humble)'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나온다. 그저 별 의미 없는 수많은 티셔츠 중 한 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몇 년 안 되는 사회생활의 경험에 비추어 말하건대,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이들은 대개 자신이 만족할 만큼만 자랑스러워하고 나머지는 겸손으로 채우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거울에 비치는 티셔츠 앞면에 쓰일 단어로 '겸손' 보다 어울리는 건 없을 것이다.

    아마추어들 역시 프로에 비해 이루어낸 업적의 크기는 작을지언정, 느끼는 바는 같다. 스스로의 성취를 돌아볼 때 내가 느끼는 자랑스러움은 인바디 기계에서 출력되는 결과지를 보고 느끼는 뿌듯함과, 거울을 보고 힘을 잔뜩 준 내 모습을 과거의 나와 비교하며 느끼는 우쭐함, 딱 이 정도이다. 나머지는 나보다 뛰어난 이들에 대한 부러움, 앞으로의 발전에 대한 기대감, 발전이 멈추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채워져 있다.

    정리하자면, 쇠질 좀 했다는 이들이 '헬린이'를 자처하는 심리단순히 으스대거나 엄살을 피우는 것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몸으로 부딪히며 배운 겸손함이 기저에 깔려 있다. 인간은 약하게 만들어졌기에 출발점에서는 모두가 헬린이다. 그리고 사회생활이든 쇠질이든 무엇이든, 어딘가에는 나보다 뛰어난 이들이 항상 있다('나의 1RM은 누군가의 워밍업 세트 무게다'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는 걸 모두가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헬린이 여러분, 간혹 누군가의 지나친 겸손이나 엄살을 목격한다면, 무작정 부러워하지도 무작정 비난하지도 말아 달라. 그 속에 담긴 근손실에 대한 두려움과, 고행을 함께하는 사람들끼리의 진한 동지애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니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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