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서른 살 남자 직장인에게 운동은 의무가 아니다. 운동이 밥 먹여주지도 않거니와, 코로나 핑계로 일주일이나 한 달 동안 운동을 안 해도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운동을 시작한 지 3년 되었는데, 첫 2년 동안은 퇴근 후 일주일에 세 번, 많으면 네 번 헬스장에서 한 시간 운동하는 생활을 반복해 왔다. 왜? 남들도 다 그렇게 살길래. 사회적 강화학습으로 형성된 조건반사였다. 사무실-집을 왕복하는 생활 속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염증(厭症)을 땀과 함께 배출하고, 공허함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대부분이었다. 운동은 분명 내 삶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 지위나 역할은 모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작년, 그러니까 딱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운동은 전혀 다른 의미를 띠게 되었다. 갑자기 서른 살에 철이 들거나 사람이 변한 건 아니었다.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보다는 지식의 축적이 이끈 변화였다. 넘치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과정에서, 운동이라는 행위가 단순히 '사회생활'의 뒤치다꺼리를 위한 치료약이나 화풀이 수단이 아니라 생각보다 삶의 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독립변수라는 점을 깨달은 거다. 비유하자면, 첫 2년 동안의 운동이 액운을 떨쳐내는 씻김굿이나 살풀이 비슷한 성격이었다면 최근 1년 간은 근본적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의학이나 약학, 임상심리학에 가까웠다. 무수히 많은, 작은 성취와 좌절들이 모여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이루게 된 것이다.
최근 유튜브를 중심으로 수많은 보디빌딩과 트레이닝 콘텐츠가 일종의 밈(meme)으로 발전한 이유도 이와 유사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운동이라는 행위를 선망의 대상이나 특별한 사람들의 재능이 아니라, 하나의 유희 혹은 여흥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역시 몇 년 간 운동을 하며 헬스장에 들락거리는 횟수만큼 흥미로운 경험과 관찰이 점점 쌓였다. 누굴 붙잡고 얘기하기에는 괜스레 부끄럽지만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아까운 삶의 조각들, 그걸 곱게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고 싶어졌다. 이 시리즈는 바로 그런 생각의 결과물이다.
많은 이들이 눈치챘겠지만, 이 시리즈의 제목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회고록 <먹고, 일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를 어설프게 따라했다. 그녀가 이혼 후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일 년동안 여행을 떠난 것처럼, 나 역시 그토록 바라던 취업이라는 목표를 이룬 후 3년이 지난 서른 살에 문득 삶을 돌아보았다. 삶이란 치열하게 부글부글 끓고 있는 냄비인 줄 알았는데, 불을 끄고 거품을 걷어냈더니 바닥에 남은 건 먹고, 일하고, 운동하는 꽤 단순한 세 가지 행위의 덩어리들이었던 거다. 이 세 가지는 서로 그다지 관련이 없는 듯 보이면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고 약하게나마 얽히며 '그래도 꽤 괜찮은 인생'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먹고 살려고 일한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하려고 일한다',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으려고 운동한다', '일할 때 체력이 너무 떨어져서, 혹은 자세가 나빠져서 교정하려고 운동한다', 이 모든 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사소하고 타당한 동기들이다. 인생이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장치를 움직이는 건 이런 사소한 동기들이다. 그래서 먹고, 일하고, 쇠질하는 행동을 가리켜 '무한동력'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물론 야속하게 흘러가는 시간만은 어쩔 수 없기에, 진정한 의미의 무한동력은 아니지만.
이 시리즈를 통해 완벽한 루틴과 철저한 자제력을 뽐내고 자기계발의 모범을 보여주려는 생각은 애초에 없다. 아침에는 출근시간에 맞춰 겨우 일어나고, 저녁에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쓰러지는 우리 인생. 그 와중에도 운동이라는 작은 성취를 반복함으로써 삶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얻으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요컨대, 여기 실릴 글은 '성공하려면 이렇게 하라' 식의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대견하면서도 처연한, 뿌듯하면서도 내키지 않는 라이프스타일을 문학적 영감으로 환원한 에세이다.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들도 사소한 욕구나 핑계 때문에 곧잘 흔들리기도 하면서 나아가고 있다는 위로와 안도감을 줄 수 있기를. 운동에 관심은 있지만 아직 도전해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막연한 두려움을 걷어내고 궁금해하던 삶의 단편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일이 조금 늦게 끝나는 날에는 헬스장의 마지막 손님으로 남는다. 배고픔을 참은 채 운동을 끝내고 집에 가는 길은, 순수한 땀과 보람이 더해진 '진짜 퇴근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