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남기지 말고 사람을 남겨라

20년 차 강사의 고집스러운 철학

by 글빛 지니
ChatGPT Image 2026년 2월 6일 오후 06_04_56.png "공부는 남지 않아도, 사람은 남았다. 20년을 버티게 한 교실의 철학을 기록하다."

어릴 때는 되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사춘기가 지나며 공부에 흥미를 잃었고, 꿈도 조금씩 희미해졌다.


고3 수능을 마친 뒤 나는 담임 선생님이 정해준 학과로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교 2학년까지는 성실하게 다녔다.
장학금도 조금씩 받았고, 큰딸로서 효도한다는 말도 들었다.
1남 3녀인 우리 집에서 아버지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그러다 3학년 때, 친구의 권유로 휴학을 하고 영어 방문 교사가 되었다.

아이들의 집으로 찾아가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처음엔 많이 두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과도, 어머님들과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렸다.

그때 처음 느꼈다.
'아, 나는 아이들과 잘 맞는 사람이구나.'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 일, 내 방식의 설명과 소통을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모습,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며 부모님들이 나를 신뢰해 주는 순간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지금의 교습소로 이어졌다.
결국 처음 시작했던 일이 나의 천직이 되었다.


나는 성격상 한번 시작하면 오래가는 편이다.

그래서 20년 넘게 강사를 해왔지만 거쳐 온 학원은 손에 꼽힌다.
인연을 맺으면 쉽게 놓지 못한다.


지금 교습소도 어느덧 9년 차다.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은 솔직히 몰랐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은
‘어떻게 아이들의 마음을 열 것인가’였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공부에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믿었다.
특히 어릴수록 그 영향은 더 크다.


그래서 나는 지극히 내성적인 아이들을 보면 오히려 더 마음이 갔다.

어떻게 하면 웃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스스로 말하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고민하던 시간이 쌓여 아이의 입에서 질문이 나오고

웃음이 나오는 순간을 만났을 때, 그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강사일 때도 그랬지만 원장이 된 후에는 책임감이 더 커졌다.

교습소에 있는 시간만큼은

나는 선생님이자 엄마 같은 어른이고, 친구 같은 어른이 되려고 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이 되는 것.
그것이 나의 가장 큰 목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게 두지도 않는다.


숙제를 내줄 때도, 특강을 할 때도, 시험을 볼 때도
먼저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힘들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대부분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
때로는 부모님을 먼저 설득하기도 한다.


ChatGPT Image 2026년 2월 6일 오후 06_09_53.png "아이를 대신해 묻고, 부모의 마음까지 함께 듣는 교실의 하루. 신뢰는 이렇게 쌓여간다."

그래서 나는 좋은 선생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아이들과의 신뢰라고 생각한다.


부모님들과 통화를 하거나 교습소에 방문하시면

아이들에 대해 가능한 한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장점도, 단점도 부모님의 마음을 살피며 전한다.


많은 어머님들이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그런 이야기까지 하나요?”라며
고맙다고 말해주신다.


바쁜 일상 속에서 부모님이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조금이나마 채워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아이 한 명, 한 명을 살핀다.


그래서 우리 교습소에는 아이들이 북적일 만큼 많지는 않다.
내가 한 명 한 명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만큼만 있다.


나도 큰 욕심은 없다.
수익만을 쫓는 원장이 되지 않을 만큼, 아이들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나는 아이들에게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어른이 되면 마음껏 놀 수 있다는 말보다,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일을 즐기며
꿈을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아이들이 “선생님은 참 바쁘게 사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
나는 이렇게 답한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지금도, 나중도 절대 늦지 않다고.


가끔은 나이가 들어 아이들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을지 걱정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이들은 내 나이를 잊었다.
그저 늘 그 자리에 있는 선생님으로 나를 본다.


아마도 나 자신을 관리하고,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남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이 많지는 않지만 끝까지 의리를 지키며

고등학교까지 함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제가 되어도 변함없이 찾아올 수 있는 선생님으로 남고 싶다.

나는 아이들을 성적이라는 꼬리표로만 판단하지 않는다.
하지만 거짓말과 회피에는 분명하게 말한다.


정말 공부하기 싫은 날이 있다면 솔직하게 말하라고 한다.
그날은 쉬어도 괜찮다.


대신 빠진 하루는 다른 날 책임지게 한다.

교습소는 그저 쉬어가는 공간은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책임지는 법을 배우고, 교습소에 있는 시간만큼은 성실하게 학습에 임한다면
결과는 반드시 한 방향으로는 아니더라도 따라온다고 믿는다.


노력하지 않은 시간은 성인이 되었을 때 후회로 남는다는 것도 함께 전한다.


나는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아이들이 스스로를 책임지는

자기 주도 학습을 배우도록 묵묵히 노력할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인생을 배우고 있는 글빛지니


geulbit_jini_stamp_original_size.png

#사람을남기는교실 #영어를남기지말고사람을남겨라 #교육에세이 #선생님의철학 #교습소이야기 #아이들과함께 #관계의교육 #20년차교사 #브런치연재

이전 02화한 번 들어오면 고등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