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해도 떠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성인이 된 제자들이 커피를 들고 찾아오는 이유

by 글빛 지니
ChatGPT Image 2026년 2월 9일 오후 05_52_57.png 졸업해도, 어른이 되어도 다시 웃으며 마주 앉을 수 있는 교실의 풍경.

처음 교습소를 시작했을 때 내가 만난 아이들 대부분은

중학교 2학년 남학생들이었다.


중2도 쉽지 않은데,

다섯 명의 남학생이 몰려다니며 공부를 하니

솔직히 만만치 않았다.


공부에 의지가 뚜렷한 아이들도 아니었다.

처음엔 이 아이들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그럼에도 지금 돌아보면

그 아이들이야말로 내게 가장 오래 남은 제자들이다.


교습소를 열고 처음 함께한 아이들이었으니까.


그 무리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한 친구가 있다.

지금도 연락 한 통 없이

불쑥 교습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다.


다섯 명 중 유일하게 고등학교 1학년까지

나와 함께했던 친구였다.


덩치는 가장 컸고, 표정은 늘 무뚝뚝했지만

정은 누구보다 많았다.
그래서 끝까지 남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간 뒤,

그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학원 문을 열고 들어와
“선생님” 하고 불렀다.


잘 지내냐고, 아직도 여기 계시냐고

반갑게 웃으며 묻더니
오늘은 갑자기 온 거라며

다음엔 커피를 사서 오겠다고 했다.


그때도 같은 말을 남겼다.
다음에 와도 이 자리에 꼭 계셔 달라고.


몇 년 뒤, 군대에 간다며

약속했던 아이스커피를 들고 찾아왔다.
휴가 나오면 또 올 거니까

그때도 여기에 꼭 있으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몇 달 뒤, 정말 휴가를 나와

달팽이 크림을 사 들고 다시 찾아왔다.

덩치 큰 성인이 되어 교습소 문을 열고 들어오자

다른 아이들은 깜짝 놀랐다.

‘저런 형도 여길 다녔구나’ 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같이 밥이라도 먹게 미리 연락하고 오라고 해도

그 친구는 늘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아무 때나 와도 선생님이 여기에 있는 게 좋다고.


그러다 몇 년 후,

싱가포르로 취직하게 됐다며 연락이 왔다.

선생님이랑 공부할 때 더 열심히 할 걸 그랬다며

영어가 너무 두렵다는 말을 남겼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한국에 오면 꼭 다시 오라고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1년쯤 뒤, 그 친구는

바샤커피를 들고 나타났다.
어엿한 청년이 된 제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나를 보며 뿌듯해했다.


그동안의 인생 이야기와 함께

함께 다녔던 아이들 근황을 천천히 풀어놓았다.

지금도 그 친구는 우리 교습소를 기억한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한 언제든 다시 찾아올 것이다.
이곳에 자기 인생의 한 부분이 남아 있으니까.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제자들은 여학생들이었다.

공부에 욕심이 많던 학생,

미술을 전공하고 싶어 하던 학생.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함께하며
학습뿐 아니라 삶의 고민도 많이 나눴다.


그 친구들은 부모님께 나를 멘토라고 소개했다.

부모님은 나에게 늘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다.


코로나 시기에는 “우리 선생님은 괜찮을까?”라며

부모님께 걱정했다는 아이들.
내 생일을 잊지 않고 챙겨주고,

보고 싶은 영화를 함께 보자고 말하던 아이들.


지금은 대학생이 되었지만

1년에 한두 번은 꼭 만나 근황을 나눈다.


그중 한 친구는 현재 휴학 중인데

영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어느 날 생일 축하 문자를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을 직접 가르쳐보니

선생님이 자기를 얼마나 힘들게 가르쳤을지 이제야 알겠다고.
너무 존경한다고.

photo_2026-02-09_17-51-43.jpg "가르침은 수업에서 끝나도 관계는 메시지로 이어진다."

그 문자를 읽고 한참을 울었다.
'내가 세상을 그렇게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하는

안도감과 함께.


어쩌면 내가 수익이 크게 늘지 않아도

이 자리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돈은 있다가도 없지만,

내가 만난 이 아이들과의 인연은
이렇게 사라지지 않고 내 곁에 남아 있으니까.


오늘도 나는 혹시 또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올까

같은 자리에서 기다려본다.


아이들과 함께 인생을 배우고 있는 글빛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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