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름이 필요했던 마음에게
담양 해동문화예술촌에서 만난 느린 쉼
요동치던 마음이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를 바라보게 된 공간지난 주말은
마음이 유난히 심란했다.
금요일,
마티스 전시를 보고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마음은 가벼웠다.
색과 선이 건네는 기쁨이
오래 남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날 저녁부터,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일들이 이어졌다.
상담 요청이 들어와
오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십 년 동안 같은 말을 반복하지만,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상대의 모습.
그 미묘한 답답함 앞에서
나는 문득
그 모습이 나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바뀌지 않는 타인의 태도보다,
바뀌지 못한 나의 마음을
들킨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날 밤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토요일은
또 바쁘게 흘러갔다.
해야 할 일들 사이에서
나는 끝내
‘나만의 시간’을 만들지 못했다.
마음은 계속 안쪽에서 웅웅거렸고,
숨을 고를 틈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요일 오후,
담양 해동문화예술촌으로 향했다.
아레아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던 전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저 서서,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면 되는 시간.‘느리게, 깊게: 감각회복’을
보기 위해서였다.
과거 양조장이었던 공간을
리모델링해 만든 해동문화예술촌은,
전시보다 먼저 공간이 말을 걸어왔다.
전 세계 술의 역사와
막걸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관에 한참 머물렀다.
발효의 시간,
기다림의 시간,
서두르지 않는 과정들.
그 사이에서 답답했던 마음도
조금씩 풀어졌다.
어둠 속에서도 천천히 빛을 모아 형태를 만들어내는 시간.아레아 갤러리에는
강미미, 권세진, 전아현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일요일 오후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관람객은 많지 않았고,
덕분에 작품 하나하나 앞에
오래 머무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본다’는 감각을
제대로 사용하는 시간이었다.
자연을 닮은 형체 앞에서 나는 말 대신 시선을 오래 두었다.특히
전아현 작가의 작품 앞에서는
자연스레 쪼그려 앉게 되었다.
한국화의 산수 표현 기법을
레진, 시멘트, 나무 같은 복합 소재로
구현한 오브제.
익숙하면서도 낯선 산수의 풍경을
오래 바라보고 있자,
가슴 안쪽에 고여 있던 답답함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말로 설명하기보다,
조용히 사라지는 감정에 더 가까웠다.
특히
가장 오래 머물렀던 작품은
권세진 작가의 작품이었다.
96개의 드로잉으로 구성된 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정중앙에 자리한 그 작품은,
지난 주말 내내 요동치던 마음과
닮아 있었다.
흩어진 선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출렁이던 물결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어느 순간,
그 바다가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괜찮아. 너무 답답해하지 마.
나는 작품과 짧은 대화를 나누듯,
조용히 그 자리에 머물렀다.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출렁이던 마음이 이 빛 앞에서 조용히 잦아들었다.‘느리게, 깊게: 감각회복’ 전시는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간을 준비하는 전환의 시점에서,
관람자들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각자의 쉼의 조건을 상상할 수 있도록
기획된 전시라고 했다.
지금의 나에게,
이보다 더 시기적절한 전시는 없었다.
요동치던 마음에
잔잔한 쉼을 건네는 시간.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전시가 주는 울림은 더 깊어진다.
작품을 감상하는 일이 곧 쉼이 되고,
전시장은 느린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피난처가 된다.
‘전시장이 누군가에게
잠시 머물 수 있는
쉼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는
말에,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마음을 고른 덕분에,
다시 새로운 한 주를 살아갈
힘을 얻었다.
전시를 보고 나와서도 머무름은 계속된다. 이 공간은 쉽게 서두르지 않게 만든다.해동문화예술촌 안에는
계절마다 다른 감성을 건네는
공간들이 여럿 있다.
마음속에 답답함이 쌓여갈 때면,
나는 또 이곳을 찾게 될 것 같다.
서두르지 않고,
깊게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에서
잔잔한 쉼을 얻기 위해서.
‘느리게, 깊게: 감각회복’ 전시는
2026년 2월 18일까지 이어진다.
일상의 속도에 지쳐
잠시 멈춤이 필요한 이들에게,
이 전시가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머무름 속에서 마음을 다시 놓아보는 글빛지니
요즘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잠시 머물고 있나요?
#머무름 #마음의쉼 #감각회복 #전시에세이 #담양해동문화예술촌 #느린시간 #일상의위로 #감성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