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해서 사랑하는 시리즈
할머니는 음악을 참 좋아하셨다. 흔한 25년생처럼 (그렇다 1925년생이다) 트로트를 좋아했다. 트로트 중에서도 혼합 장르는 싫어하고 나훈아를 즐겨 듣는 정통파였다. 남진은 사람이 가볍게 보인다며 불호를 표하셨다. (무대를 보면 “내 품에 둥지를 틀어 봐” 하고 다음날 떠날 사람같이 보이긴 한다) 혼합 장르가 많은 신곡은 당연히 할머니의 플레이리스트를 통과하기 어려웠다.
나는 할머니의 손주이자 할머니의 애플뮤직이었는데, 주된 업무는 가사 제공이었다. 할머니가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를 써 달라고 하면 나는 검색을 해서 가사 전용 공책에 옮겨 썼다. 하지만 새로 써 달라며 거절당하기 일쑤였는데 글씨 크기가 작아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그렇게 글씨를 크게 쓰면 이번엔 줄 바꿈이 마음에 안 든다며 다시 써 달라 했고, 세 번째로 쓰면 내가 가사를 잘못 쓰기도 했고, 그렇게 네다섯 번째쯤 쓸 때엔 손이 아파 날려 쓰기 시작했다. 그럼 할머니는 글씨를 못 알아보겠다며 다시 써달라고 하신다. (하하) 실컷 볼펜으로 썼더니 얇은 펜은 마음에 안 든다며 수성펜으로 바꿔 써 달라 한 적도 있다. 처음부터 수성펜을 요구하면 얼마나 좋은가. (눈앞에서 봐 놓고서!) 그렇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가사를 쓰다 보면 지쳐서 할머니 좀 쉬었다가 다시 써줄게 하고 며칠 안 썼던 적도 많다. 다행인 건 할머니가 2절의 가사까지 요구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 2절까지 썼다면 나는 파업을 했을지도 모른다. (우습게도 그 아이는 커서 필사가 취미인 어른으로 자란다)
그렇게 가사를 쓰다 보면 1절 가사 정도는 달달 외울 수 있게 된다. 어릴 때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매일 그 가사들을 집에서 흥얼거렸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잘 부르네~ 하는 날이면 신이 나서 몸을 일으켜 한 곡조를 뽑는다. 할머니와 나의 음악적 취향이 맞는 것인지, 내가 할머니의 음악적 취향에 길들여진 것인지는 몰라도 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악은 내 귀에도 좋았다. 그래서 부르는 나도, 듣는 할머니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음에도 말하겠지만 할머니는 모든 취향이 정말 까탈스러운 사람이어서 추천을 하면 분야가 무엇이든 빈번히 거절을 당했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할머니 이 노래 좋지 않아? 하고 신곡을 추천하면 “에이 파이다.” 하고 거절당했다. 그럼 나는 시무룩한 마음과 함께 할머니에게 꼭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해 주고 말리라는 의욕이 솟곤 했다. 그 당시 야구장을 자주 다니던 나는 야구장 응원가를 집에서 흥얼거렸다. 그러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집에서 무심코 불렀다. 그 노래에 할머니가 반응하는 것을 보고 드디어 나의 추천이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완창을 선보였고, 그 영업은 비로소 성공했다. 비록 새로운 곡은 아니었지만 할머니가 잊고 있던 음악을 기억 속에서 꺼내왔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훗날 할머니의 페이보릿 뮤직만 모아놓은 카세트에 그 노래가 들어있는 걸 보고 정말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음악을 찾기도 했다. 할머니가 어떤 노래를 우연히 들었는데 찾아달라며 가사의 한 부분이나 멜로디의 한두 마디를 불러주시곤 했다. (보통 그 둘이 함께 있는 경우는 잘 없다) 만약 가사를 받으면 인터넷 검색창에 검색을 해본다. 가사가 바로 나오면 그날은 행운이다. 만약 나오지 않으면 조사나 비슷한 단어를 바꿔 조합해가며 검색을 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나는, 너는, 너를, 나를…… 가사가 특정성이 있거나 유명하면 비교적 쉽게 찾아지고,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나 유명하지 않으면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못 찾기 일쑤였다. 하지만 차라리 가사가 낫다. 멜로디만 가져오는 날이라면 그 모든 음악방송, 최근에 나온 음악, 옛날에 나온 유명한 음악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어봐야 했다. 당연히 멜로디만 가져오는 날은 가사를 가져오는 날에 비해 노래 발견 확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긴가민가 싶은 것들도 많다. 정확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경우도 있고. 몇 가지 후보지를 골라갔는데 답이 없을 때도 태반이다. 하지만 내가 그 모든 번거로운 과정을 거쳤던 이유는 단 하나다. 할머니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서다.
나는 스마트폰을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갖게 되었다. 친구들은 이미 전부 카카오톡 단톡방이 있는 채로 3년을 보낸 시기였다. 나는 애석하게도 MP3와 전자사전, 노트북, 컴퓨터도 없어서 음악을 들을 방법이 음악방송이 유일했다. 집에 스피커나 카세트테이프, 전축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였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 시간을 맞춰 텔레비전 스피커에 2G 핸드폰의 녹음기를 갖다 댔다. 핸드폰 용량이 부족해 사진을 다 지우면 최대 세 곡까지 녹음할 수 있었다. 그 3곡을 어떤 노래로 채울지 매일 고민을 하면서 지냈다. 당시에는 음악방송이 금토일 주말 저녁에만 있었다. 그때가 유일한 기회인 것이다. 덕분에 매주 녹음을 할 때마다 혹시라도 잘못 녹음될까 봐 신경이 곤두서곤 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큰소리로 나를 부를 때면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나 일주일을 기다렸는데, 이번 주가 끝나면 이제 못 듣는다고. 그랬던 내가 자라서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찾는다니. 당연히 찾아줘야 한다. 결국 못 찾아도 할머니는 어쩔 수 없다고 넘기셨지만 나는 그냥 어른이라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도 실망감이 있을 거라고, 예전의 내 마음을 멋대로 대입해서 더 열심히 음악을 찾았다.
핸드폰 녹음 기능으로 음악 방송을 녹음하던 나는 자라서 할머니 음악을 찾아주는 청소년이 되었다. 할머니 음악을 찾아주던 나는 더 자라서 성인이 되었다. 내가 엄마네 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대학을 가면서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줄어들었다. 어느 날은 할머니가 카세트테이프에 이 노래를 녹음해달라고 노래 목록이 적힌 쪽지를 건네줬다. 그 일을 꽤 오래 미루다가 마침내 임무를 완수했을 때, 할머니가 참 오래도 걸린다고 면박을 줬다. 아무 말도 안 했는지, 해준 게 어디냐고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근데 그냥 앉아서 카세트를 듣던 할머니 모습이 생각이 난다. 예전에는 할머니 집에 들어가면 텔레비전 소리가 왁자지껄하게 났는데, 어느 순간부터 조용한 집에 카세트 소리만 흘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를 반기던 할머니는, 나중에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도 나를 못 알아보셨다. 현관문 앞에 서서 방 안 침대에 멀거니 앉아 카세트를 듣고 있는 당신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팠다. 내가 없을 때에도 할머니는 저렇게 앉아 있을까. 그 길고 지난한 시간을. 나를 생각하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3년이 지난 지금도 그 외로움을 계속 가늠하게 된다. 카세트 소리만 흘러나오는 방 안은 조용한 방 안보다 더 적막하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