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해서 사랑하는 시리즈
1.
나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뜨거운 음식을 못 먹었다. 아버지는 어릴 때 뜨거운 음식을 못 먹어서 밥을 냉장고에 넣어 식혀 먹었다고 한다. 이상한 걸 물려받았다. 내가 할머니에게 라면이 뜨거워서 못 먹겠다고 하면 뜨거운 음식을 잘 먹어야 참을성이 있다며, 그래서 니 아빠가 참을성이 없는 거 아니냐는 다소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그렇게 말씀하시며 라면을 식혀주셨다.
유치원으로 등원하기 전 할머니는 아침에 라면을 끓여주셨다. 매일 같은 시간에 라면을 끓여 오면 나는 눈을 뜨자마자 라면을 입에 밀어 넣으며 잠을 깼다. 처음에는 사리곰탕으로 시작했다. 아이들은 조금만 매운 음식에도 힘들어하기 때문에 첫 라면은 보통 사리곰탕을 먹는 듯하다. 그러나 매일 먹는 사리곰탕의 심심한 맛에 질린 나는 진라면 매운맛이 맛있다고 말해버렸고, 그날부터 진라면 지옥이 시작되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진라면 매운맛을 먹게 되었다. 라면을 다 먹을 때마다 할머니는 묶음 진라면을 몇 개씩 사왔다.
할머니는 내가 진라면 매운맛을 매우 좋아한다고 생각하셨는데, 실은 그냥 끓여주는 대로 먹었다. 할머니가 너는 진라면 매운맛을 참 좋아하구나, 하고 말씀하시길래 내가 진라면 매운맛을 좋아하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게다가 사리곰탕과 진라면 순한맛, 매운맛을 제외하고 다른 라면은 먹어본 적도 없어서 내 라면 취향을 알 기회도 없었다. 나중에는 다른 라면도 좀 먹어보고 싶었는데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라면을 먹을 때마다 할머니께서 맛있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셨는데, 차마 그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해줬을 때, 자기는 연속으로 같은 음식을 먹으면 화를 냈다며 네가 엄청 착한 아이였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매일 진라면을 먹은 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내게 진라면 매운맛은 내 철칙이자, 정언명령이자, 정체성이었다. 그렇게 유치원 때부터 할머니를 떠나게 되던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나는 매일 아침 진라면 매운맛을 먹었고 이제는 진라면의 노란 봉지와 빨간 글씨의 조합만 봐도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미안해요 오뚜기)
진라면을 먹고 있으면 할머니는 물에 손수건을 적셔 온다. 다 먹고 나면 손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는데 겨울에는 손수건이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했던 기억이 난다. 비몽사몽으로 눈을 감고 있으면 감은 눈 위로 할머니 손과 손수건이 왔다 갔다 하는게 보인다. 수건이 지나간 자리는 촉촉해졌는데 그 감촉이 좋았다.
그렇게 고양이 세수를 하고 난 다음에는 머리를 빗었다. 할머니는 머리를 빗어주며 아침에 일어나면 꼭 머리를 빗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말했다. 가끔은 잠에서 깨어 머리를 빗지 않은 채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듯한 말을 하곤 했는데 나는 그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머리를 빗지 않는 게 그렇게 욕할 일인가 싶었다.
머리를 빗고 나선 유리방울이 달린 고무줄로 두피가 아플 때까지 머리를 당겨 묶었다. 매일 아프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매일 같은 강도로 머리를 묶었다. 고무줄을 놓쳐 유리방울이 날아오는 날에는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매일 그렇게 반질반질 쪽진 머리를 하고 다녔다.
라면을 먹고, 손수건으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고 나면 이제 옷만 입고 나가면 된다. 추위에 약한 나는 겨울철 차가운 옷으로만 갈아입으면 벌벌 떨며 힘들어했다. 할머니는 그걸 아셔서 매일 전기장판 아래에 옷을 넣어 데워 주셨다. 따뜻한 옷을 입으면 온기가 몸 전체를 감쌌다. 그 상태로 현관을 나서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면 추운 공기가 싫기보다 상쾌하게 느껴지곤 했다.
2.
할머니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고, 단장을 하셨다. 나를 유치원에 보낸 후에는 집안 전체를 한 번 쓸고 닦은 후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물을 준다. 그리고 빨래감이 있는 날에는 세탁기를 돌린다. 할머니의 루틴이다. 할머니는 청결과 항상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가 지나간 자리는 언제나 깔끔했고 광이 났다. 그리고 언제나 깔끔한 몸과 집안을 유지하는 자신에게 자부심을 품고 계셨다. 나는 집에만 있어도 깔끔하게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거듭 강조해서 하던 말과 표정이 아직까지도 기억난다.
그런데 그렇게 깔끔을 떠는 할머니가 내게는 이상하리만치 씻으라는 말을 안 하셨다. 놀랍게도 아침에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것이 일주일간 내가 씻는 것의 전부였다. 나는 유치원 이후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도 씻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돌아오고 자기 전까지도 샤워는커녕 세수와 양치도 할 줄 몰랐다. 하루는 학교에서 방임을 우려해서 집으로 전화가 온 적도 있었다. 엄마가 아이가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아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내가 잘 아프지 않는 이유는 아마 그 때 축적한 면역력 때문일 것이다.
물론 몇 년간 아예 씻지 않은 건 아니다. 일요일이면 엄마를 만나 목욕탕에 가서 목욕재계를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고 나면, 월요일에는 깨끗하게 학교를 갈 수 있었다. 토요일에는 다시 5일을 안 씻은 채로 부모님 댁에 갔다. 그렇게 자라다가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친구들에게 냄새난다, 더럽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먹어 하나 둘 씻기 시작했다.
주변 어른들은 할머니 당신은 그렇게 깔끔을 떨면서 애는 왜 그렇게 방치를 하냐고 흉을 보기도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속으로 할머니를 변호했다. 그게 아닌데. 할머니는 매일 아침 라면을 끓여주고 손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는데. 옷도 따뜻하게 해주는데 하고 말이다. 그랬던 나도 크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깔끔을 떨던 할머니가 왜 나에게는 젖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던 게 전부였는지는 의문이 든다. 그래도 할머니를 흉보던 사람들처럼 할머니가 자기 밖에 몰라서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 진라면을 먹고, 손수건으로 세수를 하고, 따뜻한 옷을 입고 나가던 아침들이 내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아직까지 기억나는 따뜻한 감촉이 할머니의 애정처럼 느껴진다. 어떤 마음은 만져지기도, 보이기도 한다.
나는 처음부터 몸뚱아리만 가지고 태어났는데 주변 사람들이 내 내면을 만들었다. 다른 사람을 따라하는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몸의 때를 미는 법은 엄마에게서 배웠다. 다이어리에 스케쥴을 정리하는 건 친구의 습관이고, 양말을 짝을 맞춰 너는 건 두 번째 전남자친구의 습관이다. 내 행동에서 친밀한 (혹은 친밀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처음부터 내가 만들어 온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 다른 사람의 조각들이 모여 내가 되었구나 하고. 그 중에 단연 가장 큰 조각을 차지하고 있는 건 할머니다. 나는 자라서 진라면을 안 먹고, 매일 샤워를 하는 어른이 되었다. 여전히 이유를 모르는 채로 잠에서 깨면 머리를 빗고, 전기장판 아래에 옷을 데우는 나를 보면서 생각한다. 아 할머니가 나를 키운 게 맞구나. 그가 아직 나에게 많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