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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절필동 Dec 06. 2024

별 헤는 밤

”인생 여정 한가운데에서 나는 길을 잃었고, 어두운 숲 속에 들어선 후에야 올바른 길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단테 신곡 지옥편 첫 문장입니다.

내가 쓴 일기장 첫 줄 같습니다.


책을 덮고 일어나 철창 사이로 푸른 하늘을 내다보았습니다.

높은 옥담 위에 비둘기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습니다.

구구구구...

작은 움직임도 없는데 코를 고나 봅니다.

한 녀석만 깨어 있습니다.

평균대 위를 걷는 선수 같습니다.

안으로도 밖으로도 날 수 있으니 옥담은 저들에겐 경계가 아닙니다.

날개를 접고 쉬었다 가는 자리일 뿐이지요.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 

단테의 첫 줄은 이상의 <날개> 마지막을 떠올리게 합니다.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


분류심사과 교육을 받고 왔습니다.

“여기 책 많아요. “ 사동 도우미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길거리 가판대에 쌓인 싸구려 책들 속에서 간혹 보물을 건지기도 했었지요.

심사과 한쪽 구석에 가판대 위로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파란색 도배를 한 듯, 감옥 담벼락을 페인트 칠한 모습처럼 책들이 모두 파란색입니다.

‘세계문학전집류’입니다.

이름 없는 출판사가 기증한 것입니다.

푸른색의 수의(囚衣)를 입은 이들에게 보낸 책들입니다.

도서열람증도 없이, 내 번호와 책 이름만 적고 들고 왔습니다.


단테 <신곡>, 보카치오 <데카메론>, <셰익스피어 4대 비극> 그리고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입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감방 바닥에 깔립니다.

감방 창문의 모양과 크기입니다.

신 선생님은 신문지 크기라고 했습니다.

아침엔 길게 눕고, 낮에는 가부좌하듯 반듯합니다.

방바닥에 까만 거미 한 마리가 기어갑니다.

거미줄이 보이지 않습니다.

유리창 구석에 쳐진 거미줄을 타는 거미의 그림자입니다.

햇살 조명을 받은 겁니다.


빛은 유리창을 깨지 않고 들어옵니다.


사찰에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을 법(法)하고, 성당에선 스테인드글라스를 깨지 않고 들어오는 빛을 설(說)하는 게 닮아 보입니다.


단테는 피렌체 정적들을 지옥에 처넣었습니다.

그 마음이 내게 없지 않습니다만 어디에도 써 놓지는 못합니다.     


하루에 하나씩 삼일에 걸쳐 지옥, 연옥 그리고 천국편을 다 읽었습니다.

모두를 기억하진 못해도 하나의 시그널(signal)은 누구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별’입니다.

지옥편 마지막 절은 ”그리고 다시 별을 보러 나갔다 “로,

연옥편의 끝은, ”순수하고 별에 오르려는 의지가 있다 “로

그리고 천국편의 마지막, 신곡의 대단원은,

”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으로 끝을 맺습니다.


별이 밤에만 떠 있는 게 아니어도, 훤한 대낮에 별을 찾지는 않습니다.

밤하늘의 별은 어두울수록 더욱 빛난다는 말을 들은 게 오랩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다 외우진 못해도 하나, 하나, 하나 별들을 세어보며 연등에 기도를 하나, 하나, 하나 달고 싶습니다.


지금은 나에게도 베르길리우스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에게 돌아가는 날에 나의 베아트리체를 만날 것을 기다리는 밤입니다.

감옥에서도 별을 볼 수 있습니다.

감옥이어서 별을 헤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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