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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절필동 Dec 09. 2024

법자(法子)

“법자입니다.”


신입이 들어왔습니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는 단단해 보였습니다.

키는 크지 않은데 손이 큽니다.

손가락 마디마다 산 능선에 솟은 봉우리들 마냥 불뚝 불뚝합니다.

코를 대고 맡아보면 흙냄새가 물씬 풍길 것으로 보였습니다.

짐 정리를 하는 뒷모습이 단단한 땅에서 솟아난 나무뿌리 같습니다.

남도에서 나서 전국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신입이라지만 이미 와 있는 누구보다 감방살이가 제집처럼 익숙해 보였습니다.


무슨 사내이름이 ‘법자’인가 했습니다.

여기 말입니다.

‘법무부 자식’을 ‘법자(法子)’라고 하는 걸 후에 알았습니다.

접견 올 사람도, 영치금도 없는 재소자에겐 법무부에서 약간의 지원이 있다 했습니다.

때론 종교단체에서 후원을 받기도 하나 봅니다.

방 사람들에게 자신을 ‘법자’로 소개한 것은 자신은 구매할 돈이 없어서 설거지와 방 청소를 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한 방에서 24시간을 함께 지내면서 혼자 먹을 일이 없습니다.

좁은 감방에 숨길 곳도 없습니다.


법자는 이내 방에서 삼촌이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서로를 ‘사장님’이라고 부르거나, 나이 차가 많고 조금이라도 친해지면 젊은이는 ‘삼촌’이라 부릅니다.

내 입에선 ‘선생님’이라 부르는 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법자가 온 날부터 방이 달라졌습니다.

법자가 온 뒤로 우리의 좁은 감방은 마치 땅속에 묻힌 씨앗이 갑작스레 싹을 틔운 것처럼 변화해 갔습니다.

수건의 올들은 하나씩 빼내져 때밀이 타월이 되고, 빈 페트병은 가루비누와 약간의 물이 담겨 시멘트보다 단단하게 굳어 갔습니다.

법자는 플라스틱 옷걸이를 걸어 아령을 만들었습니다.

좁은 화장실이 헬스장이 되었습니다.

컵라면으로 갖가지 음식을 만들고, 배식 온 각자의 밥을 세수 대아에 담아 팔도비빔밥을 만들기도 합니다.

법자는 빈손이라 했습니다.

법자의 빈손은 날마다 무언가를 만들어 냈습니다.


잠자리에 누우면 ‘전설 따라 삼천리’ 방송 시간이 됩니다.

그의 진한 남도 사투리에 실려 소년원에서부터 시작된 오랜 감방살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어린 시절 남의 도시락을 훔쳐 먹은 일이 그의 첫 범죄였다고 합니다.

선생님께 크게 혼난 그날로 장터에서 큰 트럭에 올라탔는데 그날로 서울로 오게 됐다고 했습니다.

"삼촌, 왜 다시 고향 집으로 안 갔어요? “

나의 궁금함을 청년이 묻습니다.

내게 들려주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자는 척 눈을 감고서 그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잠을 미룹니다.

”집에 가면 죽는 줄 알았제. “

집에는 매일 술에 취해 때리기만 하는 아버지만 있고, 엄마는 서울로 도망갔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감옥 생활 합쳐보면 18년이라 했습니다.


청년은 ’그래서 그래서...‘로 계속 보챘지만, 법자는 내일로 미루고 하루 연속극을 마칩니다.


법자 삼촌이 청년을 친조카처럼 팔베개를 해주면서 ”자장가 불러줄 테니 그만 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러시아 남자 베이스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자장가를 부릅니다.     


”내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빛 되신 주 저 본향 집을 향해 가는 길 비추소서 “


법자의 묵직한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웁니다.

청년을 재우는 자장가가 아니라, 스스로를 달래고, 지나온 삶과 다가올 시간을 묵묵히 감당하기 위해 매일 밤 치러오던 자신만의 의식 같았습니다.     


”내 지은 죄 다 기억 마시고 주 뜻대로 늘 주장하소서 “   

  

쉽게 잠에 들지 못합니다.

자신의 첫 범죄를 기억하는 사람.

나는 그게 무얼까를 계속 되돌려 보아도 처음에 이르지 못합니다.

돌아누은 법자의 뒷모습에서 라스콜니코프의 모습을 뒤적이다 잠에 듭니다.


”밤 지나고 저 밝은 아침에 기쁨으로 내 주를 만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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