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은 역시 필름

20년 된 필름을 인화하며

by 단짠

20년도 더 전에, 빈티지 스타일을 추구하겠다며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과 옷을 사러 다니고, 각자 아버지들이 쓰시던 필름카메라를 들고 출사를 다녔었다.

친구들이 쓰던 카메라는 니콘 FM2랑 미놀타 필카였던 것 같고, 나는 캐논 eos 650을 썼다.


그때는 몰랐는데, 캐논에서 나온 최초 전자동 필름카메라라고 한다.

아버지는 당시 꽤나 고가였던 이 카메라를 신혼여행 즈음 사셨다.

기계는 좋아하셨지만 직접 다루지는 않으셨던 덕분에 15년 잔 즈음 내가 물려받아 쓸 때에 상태가 민트급이었다.


대학을 지방으로 옮기면서, 어쩌면 지나간 유행 탓에 빈티지 스타일은 딱히 매력이 없었다.


컨템포러리 브랜드-라 쓰고 솔타시라고 읽는다- 를 입을 즈음엔 니콘 D80을 사서 가지고 놀았다.


공중보건의 시절에는 매일 거의 같은 옷을 입고 관사에서 생활을 하며, 경박단소한 FUJI X10을 사서 형동생들과 종종 가지고 놀았다.


변호사가 되고, 체형이 점점 부드러워질 즈음 결혼을 했고, 그때부터는 폴로 옷을 즐겨 입는다. 결혼 준비할 때에 아내가 선물해 준 라이카 Q2, 이직할 때 퇴직금으로 산 M11은 선호와 아내와의 시간을 기록하는 데에 주로 쓴다.


최근에 디지털 파일로 보관되는 가족사진의 의미를 고민하다, 결국 가족사진은 필름으로 찍어 인화하여 보관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아버지가 사셨던 38년 된 eos650을 찾아 헤맸다.


장롱 깊숙이 보관되어 있던 카메라를 찾았다.

배터리는 방전되어 있어서 새로 구입하여 갈아 끼웠더니 잘 작동했다.

20년 전 즈음 찍어두었던 사진이 몇 장 있었고, 이어서 사진을 찍었다.


마침내 36장을 모두 채우고, 현상을 맡겼다.

2가지 종류의 기대 또는 설렘이 있었다.

이번에 새로 찍은 사진이 잘 나올까-여전히 카메라가 잘 작동할까-.

과거에 찍어두었던 사진에는 누가 있을까.


워낙 오래된 필름이라 현상 결과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카메라는 여전히 잘 작동했다.

오래전 찍은 사진에는 뽀글이와 춘자가 있었다.

기대했던 설렘이 있어서 좋았다.


역시 가족사진은 필름사진이 제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