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환기되지 않는 사진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일요일 오후,
아내는 밀린 업무를 했고, 나와 선호는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간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한 탓에 tv를 보면서 졸기도 했다.
2시간 즈음이 흘렀다.
마침 아내도 업무를 다 마쳐서, 다 같이 집 근처 공원의 흙 놀이터로 향했다.
무덥고 습한 날씨 탓에 땀으로 옷이 젖었다.
그럼에도 선호는 그깟 더위 따위는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는다는 듯이 흙놀이터에 도착하자마자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내도 망설임 없이 흙 놀이터로 들어갔다.
선호와 함께, 더위를 머금은 흙과 함께, 더위와 흙을 머금은 땀과 함께.
나는 놀이터 밖에서 사진을 찍었다.
오랜만에 50mm 렌즈를 가지고 온 것은 좋은 핑계가 되었다.
35mm 렌즈 보다는 꽤나 멀리서 찍어야 선호와 아내를 한 프레임 안에 담을 수 있으니까.
선호는 아빠도 같이 들어와서 놀자고 했다.
그제야, 카메라를 내려두고 흙을 밟았다.
흙의 촉감, 나뭇가지인지 명확지 않은 뾰족한 것들을 밟을 때의 약간의 따가움을 느꼈다.
그저 밖에서 사진만 찍었다면, 훗날 수만 장의 사진 중 오늘의 사진을 본다 한들,
오늘 느낀 발바닥의 촉감은 환기되지 않을 것이다.
환기될 기억이 없으니.
환기될 기억이 없는, 단지 기록으로서의 사진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기억이 억압되는 것을 넘어, 기억할 것이 없는, 오로지 기록만이 남아있는 사진은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
선호와 함께 집에 돌아와, 선호가 인내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자(생뚱맞은 질문처럼 보이지만 유치원 숙제였다는 사실),
엄마, 아빠가 오는 것(퇴근하고 집에 오는 것)과 주말이요.
라고 답했다.
사진기를 내려놓고, 기억을 공유하자.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기억이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