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어생선구이를 먹으며
유년시절 가장 많이 먹었던 생선은 임연수였다.
어렸을 때에 무슨 생선인지 엄마에게 물었을 것이고, 엄마는 임연수라고 말했을 것이다.
사람 이름 같이서 왠지 모를 오싹함을 느꼈을까. 갈치, 고등이 못지않게 기억에 남아 있는 생선은 임연수-어쩌면 이면수-가 유일하다.
나는 임연수 구이가 제일 좋았다.
고등어구이는 등 푸른 부분의 식감이 좋지 않아서 하얀 뱃살만 쏙쏙 집어 먹었다.
갈치구이는 몸통의 양쪽에 생선 가시가 많고, 쉽게 부스러지고, 생선의 크기도 임연수나 고등어보다 크지 않았다.
우리는 삼남매였고, 전업주부였던 엄마가 삼남매의 식사를 챙겨줬기 때문에, 갈치를 구우면 4명-어쩌면 3명-이 나눠 먹어야 했다.
갈치의 크기가 크지 않은 이유는, 나눠먹는 사람의 수에 비애 갈치가 너무 비쌌기 때문일 수 있다는 사실은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야 알았다.
생선구이를 비롯해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먹을 때면, 엄마의 젓가락이 엄마 입으로 향하는 횟수는 많지 않았다.
세명의 자식들이 엄마 손만 보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손질이 쉬운 임연수 구이마저도 엄마는 많이 먹지 못했을 것이다.
가을에 알밤을 삶을 때도 그랬다.
토실한 알밤의 단단한 껍질이 까지고, 그 안의 얇은 나무 같은 껍질이 벗겨져 흰 살이 드러나면, 3개의 입이 앞다투어 마중을 나갔다.
그럴 때, 엄마는 고단함을 느꼈을까.
나는 엄마의 제사를 준비할 때, 생밤을 깔 때면 이따금씩 과거의 흐릿한 기억을 억지로라도 끄집어내곤 한다.
대학을 가서 자취를 한 이래로 임연수 구이를 먹은 기억이 없다.
결혼을 한 이후에도 고등어구이나 갈치구이는 먹었지만 임연수는 조리해서 먹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어렸을 때에는 임연수 구이가 제일 맛있고 흔히 먹는 구이라고 생각했는데,
성인이 되고, 엄마가 떠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나니 그저 고등어구이나 갈치구이를 더 많이 접하게 되었을 뿐이다.
학부 시절 자취집 근처에 <서해 생선구이>라고 하는 음식점이 있었다.
가끔 향우회 동기들, 선후배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던 곳이었다.
내가 속한 향우회는 선후배 규율이 강해서 신입생들이 해야 할 일들이 꽤나 많았다.
특히나 생선구이가 나오면 재빨리 숟갈과 젓갈을 이용해서 가시를 발라내야 했다.
생선별로 가시를 발라내는 비법을 전수받았다.
일단 갈치는 생선구이가 누운 상태에서 양쪽에 위치한 가시를 젓갈로 발라낸 후, 윗면과 아랫면 사이의 굵은 뼈대를 발라내면 된다.
꽁치구이는 생선의 배가 아래로 위치하게 하여 세운다음에, 숟가락으로 생선의 등 쪽을 살살 누른 후에 생선 뼈대 왼쪽과 오른쪽에 젓가락을 하나씩 끼운 후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어 내리면 살이 쉽게 분리된다.
강권하는 술과 일종의 폭력이 난무하던 시절에 배운 기술이라 그런지 여전히 생생히 기억이 난다.
도취적 영원성은 이처럼 교차된 시간의 우주에 속하기 때문에 영원무궁한 것은 아니다. 기억 속에서 시간 초월을 경험하는 도취의 순간이 지나면 다시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시간의 법칙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도취는 현재의 시간을 초월하는 경험이지만 짧은 시간 동안 지속하다가 사라지고, 현재와 과거의 두 감각이 겹쳐지는 데서 온 행복감은 곧바로 돌이킬 수 없는 손실과 상실의 감정, 죽음과 무에 대한 확신에 자리를 내어준다.
- 윤미애, <벤야민과 기억> 173~174쪽
모든 사람에게 유년의 순간은 일생에 단 한 번 있는 순간이고 되돌아갈 수 없는 순간이다. 세상과의 가슴 설레는 만남, 환상과 상상력을 통해 세상과 친화적 관계를 맺었던 유년 시절은 개인의 삶에서 복원될 수 없는 과거다. 문명화 과정에서 태곳적 인간의 지각과 행동 방식이 약화 내지 소멸하였듯이, 우리는 사회화 과정을 통해 점차로 유년의 고유한 경험 세계를 잃어간다. 그런 만큼 유년기 기억은 향수, 상실감, 감상에 빠지기 쉽다. 벤야민은 유년에 대한 애절한 기억을 경계하는데, 그것은 감상이나 상실감에 빠지는 소모적인 기억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세상과 처음 만난 순간으로서 유년의 경험을 지나간 것으로가 아니라 그 의미에 있어 완결되고 복구되어야 하는 원천적인 것으로 해독하는 것이다.
- 같은 책, 193~194쪽
지난주 토요일 저녁에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했다.
아버지 댁 근처 백청우 칼국수, 항아리 보쌈, 육미옥 돼지갈비 모두 자주 먹다 보니 새로운 게 먹고 싶었다.
고민을 하다 선호가 좋아하는 생선구이집을 검색해 보니 이목동에 위치한 <풍어생선구이정식>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댁의 고장난 3중문을 고치느라 온몸이 땀에 젖어 찬물로 간단히 씻은 후 급하게 음식점으로 향했다.
모듬구이를 시켰고, 갈치구이, 삼치구이, 고등어구이 그리고 임연수 구이도 나왔다.
그 맛이다.
엄마가 해줬던 임연수 구이다.
어릴 적 누나들과 함께 먹었던 그 임연수 구이의 향과 맛이 느껴졌다.
임연수 구이의 향을 맡기 전, 임연수 구이 한 덩어리를 입에 넣기 전,
과거의 그 어느 날 - 누나들, 나 그리고 엄마가 함께했던 어느 날- 의 공기, 습도, 온도, 무드가 갑작스레 환기됨으로써 과거와 현재가 겹쳐질 때에 느껴질 수 있다는 “도취적 영원성”이 나를 찾아와 주기를 내심 바랐지만, 임연수 구이가 역시나 마들렌과는 꽤나 큰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덕분에, 돌이킬 수 없는 손실과 상실의 감정, 죽음과 무에 대한 확신이 엄습하지는 않았다.
몸이 익힌 옛날의 기술을 발휘했다.
엄마가 종종 해주었던 갈치보다도 훨씬 큰 갈치구이 가시를 능숙하게 발라냈다.
익산 대학로 앞 술집에서 소주와 함께 먹던 바삭한 삼치구이도 발라냈다.
고등어구이도 가시를 발라내어 이번엔 등부위도 함께 먹었다.
아버지도 꽤나 맛있게 드셨고, 아내도 선호도 나도 그랬다.
선호는 내일 또 오자고 했다.
‘쏴아아’
든든히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선호와 아내는 먼저 차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와 테이블에 앉아 담배 한 대를 태웠다.
“아버지, 이렇게 둘이 있으니까 운치있고 좋다.”
학부 시절 종종 가던 서해 생선구이 집은 어느 날 폐업을 했다.
예전부터 내가 좋아했던 음식점들, 장소들이 높은 빈도로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느끼곤 했다.
나의 취향이 마이너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저 내가 더 애착이 있었기 때문에 유달리 상실을 인지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아버지, 아내 그리고 선호에게 잘 발라낸 생선 살을 건네줄 때 느낌이 좋았다.
살면서 내 삶을 혐오하거나 하찮게 여긴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지만, 요즈음 나의 삶에 대해 애착을 느끼는 시간이 더욱 많아지는 것 같다.
그래서 훗날 (누군가는) 상실을 인지할 수도 있겠다.
언제가 비냄새, 담배냄새, 빗소리가 들리면, 오늘의 감각이 되살아나면 좋겠다.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그날의 무드가 온전히 환기되기를.
곧이어 돌이킬 수 없는 손실과 상실의 감정, 죽음과 무에 대한 확신이 엄습한다 하더라도 그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