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미끌미끌하다, 미끌미끌한
물이 필요한 거 같은데?
선호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던 날.
선호가 식사를 앞두고, “물이 필요한 거 같은데?”라고 말했다.
나는 선호에게, “선호야, 이럴 때는 ”아빠, 나 목이 마른데 물 좀 주세요.“라고 명확하게 얘기하는 게 좋아.”라고 말했고,
선호는 이내 “아빠, 물 주세요.”라고 말했다.
언어라는 것은 언제나 미끄러지기 마련이라, 때때로 - 특히 현실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는 더 자주 -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대화를 효율적으로 만든다.
이 효율성이 때로는 사람을 구하기도 하고(심폐소생술을 할 때의 수칙을 생각해 보라), 때로는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기도 한다(직장 내 괴롭힘의 다양한 사례를 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할 때에는 우아함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고, 요즈음 이러한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타인의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부탁을 하고(하기 싫은 일이다), 그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이것도 때때로 하기 싫은 일이다)이 등가교환의 원칙-어쩌면 철저히 자본주의적인-에 부합하는데, 이는 자신의 우아함(“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건 천박한 짓이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을 지키기 위해 에둘러 표현을 하고, 그걸 알아챈 세심한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 주면, 감사함을 표하지 않아도 그만인 상황이 되기 때문에 그렇다.
특히나 선의로 베푼 호의가 잘못된 결과를 야기할 때에는 사마리아인이 오롯이 비난의 대상이 된다. 꽤나 부도덕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생각보다 더 흔하게 발생한다.
선호는 간이 짰는지, 식사 중에 물을 많이 마셨다.
어느새 내가 떠다 준 물 한 컵의 바닥이 보였고, 선호는 이내 나에게 말했다.
아빠, 물 가져와.
아… 아직 선호에게 알려줄 것이 많다.
과거 처우 협의를 할 때 들었던 말이 있다.
차라리 좀 명확하게 원하는 걸 말해주면 좋겠다는 말이다.
왜 그랬을까?
첫 번째, “왠지 돈 얘기를 적나라하게 하면 돈 밖에 모르는 돈치로 보이지는 않을까? 그렇게 보이고 싶지는 않은데.”
두 번째, “내가 먼저 원하는 걸 얘기하면, 협상에서 열위에 서지 않을까?”
세 번째, “어느 정도를 요구하는 게 적절할까? 혹시 협상이 아예 결렬되면 어쩌지?”
네 번째, “솔직히, 나도 직업인으로서의 나의 가치를 잘 모르는데?”
다섯 번째, “너무 직설적으로 말하면 무례한 게 아닐까?”
아마도 이런 생각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탓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내 가치를 -정확히 말하면, 내가 직업인으로서 제공하는 용역의 가치가 맞다. 사람에게 가치를 매긴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까.- 알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를 돈치로 보는 것도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나 사회 초년생의 첫 입사, 전혀 다른 성향의 회사로 이직-예를 들면, 공공기관에서 사기업으로의 이직-을 하는 경우는 연봉 협상을 할 때에 경험이 일천할 수밖에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 어려움을 겪었고, 솔직히 말해서 처우 협의, 협상을 잘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기에, 선호와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선호에게 아빠로서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과정에서, 나 스스로를 돌이켜 보게 된다.
결국 처우 협의의 첫 번째 원칙-어쩌면 일의 원칙-은, 명확히 말하되, 매너를 지키는 것이다.
“물이 필요한 거 같은데?”와 “아빠, 물 가져와.” 사이 어딘가에 분명히 sweet spot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