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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만나드립니다 Oct 15. 2023

대만드 창립자, 북극곰과 남극곰을 만나다! - 2편

#100회 인터뷰 특집 #창립자 인터뷰 #보건학 #의학교육학

"남극곰의 story"

#통일의료 #국제보건 #건강형평성 #Integrative & Holistic approach #좋은어른 #교류를 통한 성장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일반수련의 과정 수료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석사 졸업 (Delta Omage Honor Society)

NYC DOHMH Primary Health Equity Data Analyst 근무




Q. 석사 시절 관심 있었던 보건통계, 의료체계, 행동변화, 난민의 주제 중, 현재 가장 집중하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현재는 보건 통계와 의료 체계 두 개요. 많이 줄었죠? 행동 변화는 막상 수업을 들어보니 막대한 분량의 이론을 배경에 두고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제가 흡연을 막고 싶어서 금연 캠페인을 하고 싶다고 가정할게요. 그러면 어떤 이론적 배경을 끌고 와서 그것에 맞게 intervention을 계획하고, 대상자가 어떻게 금연을 하게 될 것인가를 예측하고, 제 예측대로 됐는지 모니터링하게 되는 이론적인 프로세스가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 변화라는 주제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 주제는 제가 건드리기에는 그 범위가 크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리고 보건 통계는 방법론이고, 난민은 분야니까, 난민을 보건 통계 쪽으로 연구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난민이라는 주제에 관심은 있지만 아직은 방법론에 더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Q. 강의를 듣고 주제들에 대한 학술적인 특성들을 알게 되면서 나에게 어떤 주제들이 맞는지 배우면서 깨닫게 되는 건가요?


네. 그게 존스홉킨스의 특징이자 장점이죠. 하버드의 경우 아예 과를 나눠서 입학을 하기 때문에 여러 학과에서 정해진 인원을 조금씩 뽑아요. 존스홉킨스의 경우 전체적으로 몇백 명가량을 뽑고, 그 안에서 각 분야를 더 듣고 싶은 사람을 나눠요. 그 과정에서 인원수 제한도 거의 없기 때문에 여러 분야를 들어보고 자기가 더 공부해 보고 싶은 분야를 고를 수 있어요.




뉴욕에서의 직장생활



Q. 석사 과정 졸업 후, 작년(2022)에 뉴욕에서 취업하신 후 1년간 일 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21년 민족의학신문 인터뷰에 따르면, 학교 지원 시 MPH(Master of Public Health)를 취득하고 국제기구나 iNGO(international NGO)의 입사를 목표로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후 국제기구 입사 외에도 학교에 남아 연구를 지속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취업을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실 학교에 남아서 연구를 지속하는 방안도 일종의 취업이에요. 연구원으로 취업하는 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말씀하신 목표들은 모두 다 취업이었고, 취업의 반대는 박사 진학이 돼요. 그걸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우선 실무를 경험해 보고, 정말로 박사 과정에서 공부하고 싶은 주제가 생겼을 때 박사 과정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현실적인 이유에서는 석사 이후에 논문이 쌓여야 박사 진학을 할 수 있는데 제가 쓴 논문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요. 

  다음으로 취업 카테고리는 크게 학교와 제가 일한 공기업, 그리고 사기업으로 크게 나눌 수 있어요. 학교에 가지 않은 이유는 논문 쓰기 싫어서예요. 논문은 호흡이 길거든요. 한 번 쓰기 시작하면 1년에서 1년 반 이후에 결과가 나오는데 저에게는 이런 논문보다는 보고서가 잘 맞더라고요. 1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정도의 기간에 진행되기 때문에 보고서가 제 성격에 더 맞는 것 같아요.



Q. 구직 과정에서 중점적으로 고려했던 점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금도 단기적인 목표로 취업을 생각하신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떤 점들을 고려하고 계신가요?


과거에는 지역을 많이 봤어요. 미국 서부는 심적으로 멀게 느껴졌고 이사 비용도 많이 드니까 미국 동부를 주로 알아봤어요. 처음에는 워싱턴 DC 지역으로 지원서를 많이 쓰다가 뉴욕까지 쓰기로 마음먹고 뉴욕을 썼는데 그쪽으로 합격한 거죠.

  지금은 업무 경험이 쌓였으니까 이걸 토대로 다음 스텝을 가야 해요. 지금까지의 업무 경험을 완전히 부정하고 다음 스텝을 갈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결이 맞는 쪽으로 알아보고 있어요.



Q. 그러면 흔히 말하는 ‘첫 번째 직장이 중요하다’는데 동의하시나요? 그것을 바탕으로 커리어를 넓혀가야 한다는 측면에서요.


일정 부분 동의하는데, 실제로 지원서를 쓸 때 지원하고자 하는 분야에 맞추어 같은 경력을 다르게 어필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제가 했던 일을 데이터 분석 쪽으로 어필한다면, ‘제가 이런저런 데이터를 분석했다’고 할 수 있죠. 보건 시스템 쪽이라면 ‘제가 이런 만성 질환 관리 제도를 어떻게 국가 시스템에 통합해야 할지 연구했다’고 말할 수 있고요. 이런 식으로 같은 경험도 다르게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분야로 진출이 완전히 닫혀 있지는 않아요. 

  한의학으로 예를 들면, 내가 이전 한의원에서 동씨침법을 썼으면 동일한 침법을 쓰는 다른 한의원으로 이직할 수 있겠죠. 동시에 이전 한의원에서 소화기 환자를 많이 봤으면 소화기 환자 위주로 진료하는 곳으로 옮길 수도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직장에서의 업무가 한 가지 요소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요소가 동시에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중 어떤 것을 어필할 것인지에 따라 방향을 다르게 잡을 수 있죠.



Q. 뉴욕시 보건국 (New York City Department of Health and Mental Hygiene, DOHMH)에서 근무하셨다고 밝혀주셨습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Public Health Solutions라는 NGO는 제가 월급을 받았던 기관이고, DOHMH는 제가 일했던 곳이에요. 제가 아웃소싱(outsourcing, 외주)처럼 일했기 때문에 발주 기관과 근무처가 달랐어요. 제가 일했던 곳의 정식 명칭은 말씀하신 대로 DOHMH(뉴욕시 보건국)이었고, 한국으로 치면 서울시청 산하의 시민건강국 같은 곳이에요. 그곳에서의 포지션은 Primary Care Equity Data Analyst였어요. 만성 질환 환자분들이 잘 관리되고 있는지를 반영하는 지표(indicator)를 설정하고, 그 지표에 맞는 기준을 설정한 후에 그에 맞춰 변수들을 뽑아 분석하는 게 주 업무였죠. 의료 형평성과 관련이 있는 포지션이었어요.


DOHMH


Q. 지표와 기준을 설정한 후 그것을 추적하는 것이라면 통계와 밀접한 분야인 것 같습니다. 포지션 이름에도 Data analyst가 들어가 있어서 보건학자이자 데이터 분석가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 같고요. 그러면 컴퓨터와도 친해야 하는 직무인 걸까요?


네 맞아요. 저는 사무직이었어요. R 언어를 주로 사용했고, SQL 언어를 사용해서 데이터를 불러와서 분석하고 그 결과를 돌리는 업무를 했죠. SQL은 많은 양의 데이터 중 필요한 것만 뽑아오는 프로그래밍 언어라고 보시면 돼요. R언어는 수업을 들으면서 배웠고, SQL은 유튜브에 많이 나오는 인도인 강사님들의 동영상으로 배웠어요. (웃음)



Q. 직장에서 겪은 일 중 가장 뿌듯했던 순간 & 반대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그 극복 방법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제가 담당했던 업무를 잘 정리해서 회사에 넘겨드리고 퇴사할 때였어요. 당시 그 부서에서 R언어를 다루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고 원래는 SAS 코드만 사용했는데 제가 그 코드를 전부 R로 바꿔서 정리했어요. 제가 다루던 데이터 자체도 아무도 보지 않은 소외된 데이터였는데, 그 데이터가 어떤 의미인지 분석한 후 R코드로 간결하게 잘 정리했죠. 제 후임자를 위해 인수인계하듯이 이 코드가 어떤 의미인지 일일이 작성해서 넘겨드렸어요. 그래서 퇴사하던 때가 가장 뿌듯했던 순간으로 기억나네요. (웃음)

  힘들었던 때는 제가 주로 재택근무를 했는데, 뉴욕이 겨울이 짧았어요. 해가 4시 반부터 지기 시작하거든요. 해가 떠 있는 시간이 짧아지니까 사람이 많이 우울해지는데, 저는 뉴욕에 친구가 많이 없었어요. 석사 친구들은 볼티모어에 있고, 고등학교나 대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한국에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때 많이 외로웠는데, 그 당시에는 그냥 버텼던 것 같아요. 그 뒤에 서서히 괜찮아지면서 새벽에 수영도 다니고 교회에 새벽 기도를 나갔어요. 매일 하지는 못했지만, 6시에 새벽 기도를 다녀와서 7시에 수영을 갔고, 9시쯤에 출근했어요. 사람은 몸이 힘들면 잡생각이 없어지잖아요. 뉴욕이 해가 빨리 지는 대신 빨리 뜨니까 6시 30분 정도면 해가 다 떠 있어요. 그래서 아침에 햇살도 많이 받으려고 노력하고 앞서 말씀드린 치과의사 선생님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서서히 극복해 나간 것 같아요. 



전통의학과 보건학


Q. 블로그에 ‘침과 전통의학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 공중보건에 중요한 intervention이 될 수 있다.’, ‘저소득 국가에서 한약을 이용한 보건 프로그램을 실행해 보고 싶다.’고 적어주셨습니다. 한의학과 보건학은 어떤 부분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까요?


지금 주신 질문은 사실 두 개의 질문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한의학과 보건학의 상호보완성에 대해,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제가 한의학과 국제보건을 어떻게 같이 해나갈 수 있을지 질문을 주신 것 같아요.

  국제보건 분야에서 대부분의 질병 예방 프로젝트는 백신 공급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의학적으로 백신은 예방에 해당하지만, 한의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완전한 예방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전반적인 몸의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병균을 주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몸이 균을 이겨내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북한이 코로나 접종을 하지 않는다는 근거가 여기에 있기도 하고요. 백신을 접종하기에 적절치 않은 상태이지만 영양을 공급한다고 해서 질병 예방을 할 수는 없을 때 공백이 생기는 거죠. 저는 ‘그 공백을 한의학을 통해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지만 질문의 두 번째 지점, 한의학이 국제보건과 어떻게 융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은 저도 찾아가는 과정에 있어요. 이전에 보건학을 공부하셨던 선배님들께서도 한의학 전문가로서 보건 분야에서 일하시는 건 아니기 때문에 아직 명확한 롤모델은 없는 상황이에요.

  한의학과 국제보건이 겹치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한의학의 세계화예요. 예를 들면 베트남에서 금연 침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거죠. 우리나라 한의사들이 베트남 보건소에 가서 금연 침 치료를 해주고, 실제로 금연 효과를 경험한 사람들의 건강이 좋아졌다는 식의 접점이 있을 수 있겠죠. 두 번째는 현지의 전통의학 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는 것을 돕거나, 전통의학 치료자의 교육과 질 관리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 거예요. 그러한 전통 의료 전문가로서 한의학에 기여할 수도 있겠죠. 세 번째는 제가 찾아가고 있는 미지의 길이에요. 왜냐하면 저는 앞의 두 가지가 다 아쉬운 지점이 있거든요. (웃음)


북극곰 : 저도 그래요 (웃음)


  첫 번째는 어떻게 보면 특정 지역의 의료문화를 강제한다는 식민지성이 강조될 수 있어요. 두 번째는 우리가 전통 의학 전문가가 맞기는 하지만 그러한 문화적 맥락이 다른 나라에까지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한 지점에서 아쉬움이 있기 때문에 저는 계속 길을 찾아가는 중이에요.



Q. 유병률이 높은 감염성 질환에 대해서는 한의학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저는 두 가지 케이스를 생각했어요. 첫 번째는 남미에서 HIV 환자에게 중의사들이 침을 놓아서 감염 부위를 관리했던 사례예요. 두 번째는 코로나 유행 시기에 한약을 처방했던 사례예요. 당시 전화 상담 센터를 열어서 환자들에게 한약을 처방했잖아요. 사실 백신이 개발되기 전, 대증 치료밖에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한의학으로 관리를 할 수 있었다고 봐요. 또 대증 치료적 측면에서 침술과 같은 술기를 쓸 수도 있고요. 이렇게 두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 ‘대신만나드립니다’의 창립자, 남극곰이 보건학의 바다를 항해하는 한의사 나음이 되기까지-

진솔한 이야기를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북극곰의 story"

#의학교육 #經歷과 進路 #한의과학자 #한방전문의 #창의성 #사상체질과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사상의학과 전문수련의 과정 수료

서울대학교 의학석사 (의학교육학 전공)

서울대학교 대학원 휴먼시스템의학과 의학교육학 박사과정




사상체질과 전문의


Q. 사상체질과 전문의신데, 한의사 국가고시와 전문의 국가고시는 어떠한 점이 다르고, 난이도는 어떠했나요? 전문의 시험 준비 과정이 궁금합니다!


사상체질과 전문의 국가고시에는 동의수세보원 등 원전이 포함된다는 것이 특수한 것 같아요. 그리고 난이도는 한의사 국가고시보다 어려웠고, 확실히 전문의가 알아야 하는 수준의 시험이라고 느꼈어요. 현재 한의사 국가고시는 문제해결 능력에 초점을 두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어요. 어떤 케이스를 제시하고 그에 대해 적절한 처방을 고르게 하는 거죠. 하지만 전문의 국가고시에서는 특정 지식이 없으면 풀 수 없는 문제들이 훨씬 많이 출제돼요. 시험도 객관식, 주관식, 서술형으로 구성되어 있고요. 특히 사상체질과는 한자를 외워야 하기 때문에 서술형 답안에 한자를 작성하기 위해 객관식 시험지를 뒤졌던 기억이 있네요. (웃음)

  학부생 수준의 시험은 동의수세보원 신축본과 교과서에서만 출제된다면, 전문의 국가고시는 갑오본, 신축본 등 동무의 모든 저서를 알고 있어야 풀 수 있는 난이도예요. 그래서 동의수세보원의 경우 조문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 다 외워야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의 국가고시는 답을 찍을 수가 없어요. (웃음) 그래서 특정 개념의 철학적인 배경에서부터 실제 임상까지 심도 있게 공부했던 것 같아요. 어떤 단어가 있으면 그 의미가 무엇일지 생각하는 과정도 많이 가졌어요. 최근에는 사상체질과의 CPG(임상진료지침)가 나와서 그것도 읽었어요. 

  다만 머리가 굳어서 그런지 잘 안 외워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제 한 몸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것이 참 어렵더라고요. 다른 일들을 하면서 공부 시간 확보를 하는 것이 확실히 힘들다고 느꼈어요.



Q. 한의사 국가고시는 CBT로 이루어지는데요, 전문의 시험도 같은 방식인가요?


아직은 아니에요. 전문의 시험은 OMR로 마킹하는 객관식과 주관식, 서술형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또, 구술시험(면접)도 있습니다. 저희는 두 분이 면접관으로 들어오셨어요. 저를 붙여주셨기 때문에 평생 감사드리기로 했습니다. (웃음)



Q. 전문의 시험은 보통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분위기인가요?


병원마다 다른 것 같아요. 예전에는 휴가를 쓰고 공부할 수 있었는데 전공의법 시행 이후로 여러 가지가 바뀌어서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저는 전공의 3년 차 1년 동안 휴가를 하나도 쓰지 않다가 마지막에 그 휴가를 전부 몰아 써서 12월쯤 겨우 공부를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부분이 가장 힘들었어요.



Q. 사상체질과를 전공으로 삼은 이유와 사상체질과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많은 고민 끝에 사상체질과를 전공하게 되었는데,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저희 병원 사상체질과 교수님들이 그 분야의 전문가이자 좋은 스승이기도 했고요. 사상체질과 진료과장님께서 교육학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 감사하게도 제가 교육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해 주셨어요. 저 또한 사상체질과 교수님들께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공으로 삼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과적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상의학의 매력은 보편적이면서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거예요. 무엇보다 한 가지 방법론, 툴을 확실히 마스터 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한 매력인 것 같아요. 이제마라는 사람이 썼던 책을 외우다시피 했으니까 내 마음속에 흔들리지 않는 바이블이 있는 거죠. 새로운 툴을 찾아서 헤매야 한다는 불안감이 들지 않아요. 임상 현장에서 사상의학의 매력은 처방에서 가장 강력한 것 같아요. 피드백에 강한 학문이라 특정 처방에 대해 어떤 피드백을 받아야 하는지 예상이 되고, 피드백을 확인하면서 그 처방을 수정할 수 있어요. 임상을 하면서 나의 체질 진단 혹은 처방이 세밀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것 같아요. 


Q. 사상체질과가 피드백의 성격이 강한 학문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어떤 처방을 썼을 때 소변량이 증가해야 한다든지, 대변 횟수가 몇 번 정도 돼야 한다든지, 혹은 전보다 수면의 질이 좋아져야 한다는 등의 지표들이 있어요. 환자가 다시 내원했을 때 이러한 지표들을 다시 확인하는 거죠. 그 약에 대해서 내가 원하는 정도의 반응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고, 설사 없더라도 그 즉시 처방을 바꾸지는 않아요. 치료 방향성이 정해져 있는 거죠. 이 약을 통해서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가 어디까지 변해야 하는지가 정해져 있어요. 만약 변화가 기대에 못 미친다면 처방을 유지할지 수정할지 판단해야 하고요. 피드백이 확실하다는 점이 사상의학의 큰 매력인 것 같아요.



Q. 수련 생활 중에 가장 뿌듯했던 순간,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그 극복 방법이 궁금합니다!


뿌듯했던 순간은 저 자신이 성장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에요. 우선, 제가 신경 써서 개발한 실습 교육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이 동기부여가 되고 즐겁게 수업에 참여할 때 뿌듯했어요. 한의사로서는 환자들과의 라포가 점점 쌓이는 것이 느껴질 때 뿌듯했어요. 제가 휴가 갔을 때 “선생님 어디 가셨어요?”라고 물어봐 주시는 것도 감사했고요.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는 커리어에 관련된 책을 읽고 있었어요. 그 책에서 ‘사람이 동기 부여가 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최악을 피하려는 것으로 동기부여가 되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으로 동기부여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지금까지 제가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병원은 그에 알맞은 공간이 아니었어요. 환자가 죽으면 안 되는 공간, 즉 최악을 피하는 공간인 거죠. 그런 곳에서 일을 하려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일단 포스트잇에 논문 언제까지 제출하기, 환자 무사히 퇴원시키기 등 해야 할 일들을 적고 그걸 핸드폰 뒤에 붙인 후 매일 보면서 '그래, 오늘 이거 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제가 당장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면서 업무에 집중하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려 했고요. 그 외에도 작은 행복을 찾기 위해 집에서 식물도 키우고 연말에는 의국에 크리스마스 장식도 하면서 수련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또 힘들었던 두 번의 순간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인턴 때 암 환자의 임종을 처음 목격했을 때예요. 그때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죽음과 죽어감'과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으면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어요. 그 이후 또 한 번은 제가 보던 암 환자분이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눈을 감지 못하셨어요. 수액으로 연명하고 있는 상태에서 환자분이 돌아가시지 못하더라고요. 다들 걱정하는 상황에서 2~3주가량 보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사람이 죽는 게 왜 이렇게 힘들지, 내가 알기로는 살리는 게 힘든 건데 죽는 과정도 왜 이렇게 힘들까'라는 생각도 들면서 저도 마음이 어렵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처음으로 환자분 아드님이 오셨는데, 방문하신 아드님을 본 후 그날 새벽에 돌아가셨어요. 그때 처음으로 사람이 의지로 움직이는 존재라는 것을 느꼈어요.

  두 번째로는 수련의 하면서 환자는 환자대로 보고, 의학교육학 석사는 석사대로 했던 기간이에요. 임상과 연구 두 가지를 같이 하던 상황이 정말 힘들었어요. 학위논문을 쓸 때는 퇴근하고 다시 도서관에 가서 논문을 썼어요. 학부생 때 국립중앙의료원에 계신 김주희 정신과 교수님을 인터뷰했을 때 교수님께서 '수련 기간이 긴 터널 같았고, 그 터널에 나의 조력자는 우리 지도 교수님밖에 없었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수련 기간 내내 생각나더라고요. 긴 터널 같은 수련 기간 동안 ‘내가 왜 수련을 하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결국에는 장기적인 목표 때문에 이 수련을 하는 거고 이 시간은 지나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의학교육학 박사과정


Q. 전문의 과정 중 해당 과의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타 대학의 대학원 과정을 병행하게 된 계기와 병행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는 인턴을 시작하기 전부터 의학교육학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실 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 가려고 텝스도 보면서 준비했는데 기존 계획과는 다르게 인턴을 시작하게 됐어요. 인턴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의학교육학 책을 읽고 자료를 찾아보면서 관심을 이어갔는데, 다행히 저희 과 교수님은 이런 공부를 병행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는 분이셨어요.

  어느 날 연구 서류를 제출하러 가는 길에 저희 과 과장님을 횡단보도에서 마주쳤는데, 제가 예전부터 대학원에 가고 싶다고 얘기했던 걸 기억하시고 이번에 대학원 지원했냐고 여쭤보시더라고요. 그 당시 사상의학을 공부하느라 정신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원하지 못했었거든요. 그 후 혹시 몰라서 대학원 원서 접수 기간을 찾아봤는데, 유일하게 서울대학교 대학원 원서접수가 아직 열려 있더라고요. 그래서 고민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원서를 접수하고 그 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방을 예약했어요. 그러곤 노트북을 들고 들어가서 연구 계획서랑 자기소개서를 쓴 다음 월요일에 제출해서 합격할 수 있었어요. 

  대학원에 합격한 후에 저희 과 교수님께 진학을 허락받기 위해서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까지 참고해 가면서 편지도 썼어요. 대학원에 합격하기까지 준비한 과정,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수련에 어떻게 임할 것인지를 큰 글씨로 빼곡히 두 장 정도 적어서 외래 끝나고 드렸죠. 교수님이 그 자리에서 바로 읽으시더니 ‘그래 잘해봐 이 선생.’하고 허락해 주셔서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어요.



Q. 휴먼시스템의학과의 세부전공으로 의학교육학을 공부하고 계시는데, 해당 전공에서 어떤 수업을 들으시나요?


원래는 의학교육학과가 의학과 소속이었는데 휴먼시스템의학과라는 새로운 트랙이 생겼어요. 그래서 세부 전공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저는 석사 과정에 이어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니, 휴먼시스템의학도 추가로 배우고 있어요.

  의학엔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이 있었는데 이제는 3개의 기둥으로 의학을 받쳐야 한다는 관점에서 휴먼시스템의학, 즉 Health System Science(HSS)라는 새로운 다학제 학과가 생긴 거예요. 전체적인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환자들이 건강해질 수 없다는 내용을 다루면서 Holistic approach를 하는 과예요. 대학원 면접에서 대학원 학과장님이 ‘너는 원래 Holistic approach 하는 한의대에서 왔는데 여기서 뭘 배우려고 하냐.’고 물어보셨는데 한의사들이 인체에 대한 Holistic approach를 한다면 여기서는 행정, 제도, 교육, 재정, 보건의료 시스템이 전부 포괄된 개념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환자를 진료할 때 그 사람의 경제적인 사정부터 치료 이후의 삶까지 폭넓게 고려해야 한다는 거죠.


한의학이 인체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처럼 휴먼 시스템 의학과에서는 그 사람의 전반적인 것을 모두 고려하는 거네요.

네, 환자와 보호자를 둘러싼 사회까지를 포괄하는 의학이죠. ‘Health Systems Science’을 나타낸 그림을 보면 구성이 정말 잘 되어있어서 한의대 예과 1학년부터 이걸 가르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바탕에는 Systems Thinking이 있는데요, Systems Thinking을 하기 위한 14가지 습관을 보면, ‘전혀 상관없는 두 가지가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에 대해 의심해보는 것’이 있어요. 서양의 관점에서 어떻게든 이 사고를 해보려고 노력한 산물인 것 같아서 공부해도 재밌을 것 같아요.



Q. 의학교육학에 언제부터 관심이 있으셨나요?


제가 본과 1학년 때는 TF팀 처럼 인원을 모아서 교육 관련 활동을 하다가, 본과 2학년 때는 상설기구로 만들기 위해 교육과정 심의위원회를 학생회 산하기구로 창립하고 제가 위원장이 됐어요. (웃음) 그 후부터 위원회 차원에서 교육과정을 모니터링하고 교육 세미나도 열었어요. 남극곰, 미어캣과 함께 셋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면서 재밌게 활동했죠. 

  또 기존 교육과정에서 본과 3학년까지는 4학년 때 하는 임상 실습을 모니터링 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는데, 제가 4학년일 때 이 문제의 뿌리를 뽑고 싶었어요. 그래서 4학년 동기 몇 명을 모아서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하고 임상 실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어요. 그 답변을 토대로 설문지를 개발해서 동기 전원에게 설문조사를 시행했더니 동기들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전부 보기에 들어가 있다.’고 해서 뿌듯하고 재밌었어요. 이후 설문조사 결과를 정리한 보고서를 쓰고, 그걸 학장님, 교육부장님, 교수님들께 전달해 드렸죠. 지금도 그때 만든 설문지가 쓰인다고 들어서 뿌듯하더라고요이 경험으로 제가 연구하고 싶은 분야가 교육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Q. 의학교육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보다 나은 의학교육을 위해 어떤 부분들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는 역량 중심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학생이 어떤 역량에 도달하기를 원해서 교육하는 것인지를 먼저 설정하고, 그에 따라 교육 과정을 만든 후에 각 수업을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아요.

  사실 그보다도 가치관과 철학이 중요해요. ‘왜 이 교육을 하는가?’라는 물음이죠. 각 학교에서는 미션이나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정해져 있는데, ‘우리가 양성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가 제대로 정해져야 그에 맞게 교육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의료인을 만들고 싶은 건지, 국제사회로 진출하는 의료인을 만들고 싶은 건지, 우리 기관이 추구하고 공유하는 가치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해요. 


핵심 가치가 바로 서면 거기에 필요한 역량들이 정해질 것이고, 그럼 그 역량들을 개발하기 위한 교육과정이 자연스럽게 짜이겠네요.


교육, 실습 과정뿐만 아니라 어떻게 평가할 건지도 정해지죠. 대만드 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게 대만드에 열심히 기여한 친구가 병원에 지원하려 할 때, 학점이 안 좋아서 속상하다고 말했던 거예요. 그 친구를 학교에서, 그리고 대만드에서 봤을 때 훌륭하게 성장했고 유의미한 성과를 만든 친구인데 필기시험으로만 학생을 평가하다 보니 학점에 이러한 역량이 반영되지 않은 거예요. 굉장한 책임감과 문제 해결력이 있는 친구인데 그런 것들을 평가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Q. 올해 초, 한의신문에 한의학 교육 개선을 위한 한의학 교육 학회가 출범됐다는 소식이 실렸는데요! 여기 멤버로 함께하게 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한의학과 의학교육학 전공자로서 교육과정 개선에 기여하고 싶었고, 한상윤 교수님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조력자로 함께 하게 되었어요. 학회를 창립할 때 대만드를 단체로 설립한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됐죠. 8월 말에 학회지 1호가 나왔는데 앞으로 다양한 활동을 해나가면서 저도 많이 배워나갈 것 같아요. 



Q. 대만드, 전문의 과정을 거치시고, 현재는 교육학회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앞으로 더 넓혀가고 싶은 지평이 있으신가요?


저는 감히 말하자면 대만드의 사단법인화를 하고 싶고, 또 다른 새 브랜드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꼭 그게 한의학에 한정되지 않더라도 한의학에 포함될 수 있는 어떤 브랜드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언젠가 시도해 보고 싶네요. (웃음)



‘자신만의 길을 찾아서‘라는 말을 의인화한다면 남극곰과 북금곰의 모습일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만남이었습니다. 대만드를 창립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앞으로 남극곰과 북극곰이 나아갈 길을 대만드 동물들이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Interviewee. 남극곰, 북극곰

Interviewer : 앵무새, 기린, 페럿, 유니콘

Writer & Editor : 앵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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