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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만나드립니다 Oct 07. 2017

[진로 인터뷰] 공공기관분야 배수현 한의사 3편

보람과 힘든 점, 그리고 인생그래프

연구자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Q. 이 일을 하시면서 보람과 힘든 점이 궁금합니다!


보람을 느낄 때는 R&D 과제를 관리하면서 연구자에게 사소하지만 도움이 될 때예요. 
처음에 입사해서는 R&D 과정을 관리하기 위한 규정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요. 연구비 사용내역에는 무엇이 있는지, 평가는 어떻게 하는지 등등이요. 그런데 10개월 정도 지나니까 그분들이 잘 모르시는 법률이나 관련 분야에 대해 조언을 드릴 수 있게 되었어요. 연구자분들이 고마워할 때는 더욱 보람을 느끼고요.

연구자님들 궁금하실 땐 전화 주세요(훗)

힘든 점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이 빛을 발하지 못할 때인 것 같아요. 
저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데, 불평불만을 들을 때가 있어요. 규정에 따라서 과제를 관리해야 하다 보니 한 분 한 분의 사정에 맞춰드릴 수는 없거든요. 이 곳에서 하는 일은 생각보다 정말 중요해요. 연구 성과를 정리한 자료를 근거로 상위 부처에 ‘이렇게 좋은 성과가 나는 사업이니 예산을 늘려달라’라고 요구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들죠. 한의학이 발전하려면 연구를 계속해야 하잖아요? 우리가 없으면, 내가 하는 이 일이 없다면 모든 연구의 시작이 없겠구나 생각해요. 그런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 자부심이 생겨요. 아마 연구자들은 잘 모르실 거예요. 본인들이 연구를 하기까지 이런 많은 작업들을 저희가 하고 있는 줄을요. 


북극곰 : 맞아요. 연구비가 있어야 연구를 하니까요(웃음)

그렇죠. 그 예산을 받기 위해 저희가 들이는 노력이 얼마나 큰데요. 아시겠지만 한의약 예산은 너무 작고, 예산을 늘리기가 쉽지 않죠. 한의약 R&D의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아직은 많이 부족한 상황이에요.

여기 와서 제가 느낀 그런 현실이 그래요. 임상 경험이 있으니 입사해서 열심히 아이디어를 제안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부에서는 하나도 먹히지 않는 거예요. ‘한의학에 근거가 있냐.’라고 말하는 분도 계시고요.  

근거도 쌓아가고 있고, 연구도 많이 하는데 표준화가 덜 되어있고 혁신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으니까 부정적인 시선이 많아요. 그걸 바꾸는 게 힘든 작업이지만, 저희를 포함해서 많은 곳에서 애써주고 계세요. 정말 중요한 일이니까 어쨌든 저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나가야죠.

북극곰 : 국회 대학생 보좌관으로 예산심의를 방청한 적이 있어요. 그때 행정부처가 정말 많은 일을 한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국정감사 시기에 공무원분들이 모두 밤을 새시더라고요. 


눈물 날 것 같아(웃음) 남의 얘기가 아니네요. 이게 딜레마인 게, 연구성과라고 하면 결국 돈으로 직결되거든요. 그런데 R&D는 돈을 위한 장사가 아니잖아요. 사업성이 있다면 제약회사에서 할 수 있지 굳이 정부출연금으로 할 필요는 없죠. R&D는 가시적인 성과는 없지만 필요한 연구를 지원해야 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성과 위주의 한의학 연구가 과연 R&D인가하는 고민이 있어요. 


물론 정해진 예산이 있으니 이해는 가요. 한의약 R&D가 획기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노벨의학상이라도 하나 나오거나(웃음) 한미약품처럼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킬 한약 제재가 나오면 상황이 좀 바뀔 텐데. 사실 그런 연구와는 예산 규모 자체가 달라요. 그런데 똑같은 성과를 내기는 힘들죠.




인생그래프


Q. 인생 그래프를 그린다면, 거의 포기할 뻔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리고 포기하는 대신 어떻게 행동하셨나요?


여기 와서 3개월은 너무 행복했어요. 인생에 가장 재미있는 시기였죠. 적성에 맞는다는 걸 느끼고, 출장 가는 것도 너무 신나고. 제 꿈에 한 발짝 다가갔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특히 저는 전공자니까 더 잘하고 싶고, 욕심도 있었어요. 


그런데 3개월이 지나니까 정말 힘든 시기가 왔어요. 여기서는 제가 제일 말단 직원이고, 많은 걸 포기하면서 일하는데도 인정도 못 받고 싫은 소리를 많이 듣는 게 힘들더라고요. 7개월 되던 때가 절정이었는데, 사업을 잘 진행하고 싶어서 연구자에게 규정대로 엄격하게 대했는데, 정말 심한 소리를 들었어요. 도를 넘은 발언에 자존감이 바닥을 쳤죠. 내가 왜 이걸 하겠다고 모진 꼴을 당해야 하나, 회의감도 들었고요. 돈이 아니라 오로지 성취감이나 사명감 때문에 일하는데 그게 무너지니까 더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겠더라고요. '정말 그만둬야 되나'하는 생각을 하루에 열두 번씩 하고, 말이 없어지고 우울했어요. 저희 팀에서 제 별명이 ‘슬픔이’였어요.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는ㅎㅎ 

입사 3개월 차의 기쁨이와 7개월 차의 슬픔이 @인사이드아웃

그때 제가 계속 일할 수 있었던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는 저 스스로 1년만 버티자는 생각을 했어요. 두 번째로는 같이 일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팀장님과 팀 선생님들이 다들 너무 좋으신 분들이세요. 저보다 오래 근무하신 선생님은 자기도 다 겪은 일이라며 본인의 경험담을 얘기해 주시고, 자매처럼 저를 챙겨주고 술도 마시면서 제 심정을 다 이해해주셨어요. 아무래도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 고충을 좀 더 알잖아요. 진짜 와 닿고 필요한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우리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비록 알아주지 않지만 우리가 없으면 연구 진행에 엄청 차질이 생길 텐데 자부심을 가지고 해야 한다. 지금 그만두면 너무 아깝지 않냐’면서 딱 2년만 해보자고 붙잡아주셔서 이렇게 인터뷰도 하게 됐네요. 그때 그만뒀으면 지금 이런 말씀을 못 드렸겠죠(웃음)

비협조적인 연구자들은 여전히 있고 여전히 일은 많고. 여전히 외부에서는 한의학에 우호적이지 않고 환경이 변한 건 하나도 없지만, 내가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너무나 훌륭한 연구자들도 많이 계시고, 우리는 아직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내가 좀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고요.


남극곰 : 와, 정말 팀원 분들이 정말 좋으시네요.




꿈꾸는 학생들에게 전하는 말


Q. 한의대를 다니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다른 분야의 친구들과 활발히 교류하는 걸 추천해요.
 지금 보니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대학생 때는 무궁무진하게 교류할 수 있는데, 사회에 나오면 이미 신분이 정해져서 위치 대 위치로 만나기 때문에 제한이 있어요. 


특히 저는 학사도 한의학, 석사도 한의학, 주변에 온통 한의사뿐이라 창의적인 부분이 많이 부족하더라고요.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잖아요.
그리고 한의사끼리만 이야기를 해봤자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국회의원, 정부 부처, 고위 공무원들과 같은 한의사가 아닌 사람을 움직여야 하는데 그 사람들의 생각은 너무 다르거든요. 


꼭 공공보건이 아니더라도 능력 있고 똑똑한 분들이 여건이 된다면, 본인의 의지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많은 자리에 진출했으면 좋겠어요. 다들 임상만 하시면 이런 중요한 일들은 누가 하겠어요. 그래서 저는 후배들이 보건 분야에 생각을 가지고 찾아와 주는 것이 반가워요. 후배들이나 한의계의 분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길을 닦고 싶은 게 제 소망이에요.


Q. 이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보세요. 걱정하지 말고. 너무 빨리 포기하지 마시고 계속 그 길을 찾아가셨으면 좋겠어요. 길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니까 자기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시면 좋겠어요. 그렇게 해야 우리끼리도 힘을 모을 수 있고요. 
(소곤소곤) 그런데 솔직히 이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대 : 그건 저희가 말씀드릴 수 있어요. 경제적 이유가 제일 크고, 두 번째가 결혼이에요. 해외에서 임상하시는 선배님께서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결혼하지 말아라, 라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셨어요.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고요.


먼저 경제적인 부분에 관련해서는 저희 내부에서도 처우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있어요. 사실 제 자신도 힘들게 일하다가 다시 임상으로 돌아가는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고요. 그런데 한 사람이 꿈을 포기하고 현실로 돌아간다면 그다음 사람이 꿈을 꾸는 것이 더 힘들어지니까 악순환이 아닐까요? 오히려 이런 자리에 많이 나올수록 우리의 목소리가 커지고, 그만큼 인정받게 되면 그땐 모든 문제들이 순차적으로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능력을 인정받고 좀 더 영향력 있는 위치로 올라가면 많은 분들의 동의를 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선순환이 되려면 많은 한의사들이 곳곳에 가서 한의학의 위상을 높여야겠죠. 저도 겁이 나는 건 마찬가지지만, 우린 아직 젊고 처자식도 없고 나이도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 길을 추천합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고, 임상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세상을 보실 수 있어요. 만일 제가 어려운 상황이 생겨 이 길을 포기한다 해도 후회는 안 할 것 같아요. 이 일을 하는 동안에 너무 즐거웠고 정말 많은 경험을 했으니까요. 

두 번째로 결혼은 우리가 어떤 배우자를 만나냐에 따라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열린 생각을 가진 분이라면 배우자가 가는 길을 적극적으로 응원하리라 생각되고, 저도 그런 배우자를 꿈꾸고 있어요. 저희 팀장님 같은 경우는 오히려 남편분이 팀장님을 더 지지를 해주세요. 당신은 이런 일을 해야 한다고, 공부도 더 하라고 그러시고요.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Q. 대신 만나드립니다 공식 질문인데요, 지금 하시는 일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한의학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더 쉽고 편리하고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거잖아요. 한의학의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21세기에 알맞게 현대적이고 새로운 모습도 필요하고요. AI 의사와 3D 프린터가 나오는 시대에 내가 할 일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연구들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가라, AI 허준! 나 대신 침을 놓아줘!

예를 들어 아직은 논쟁이 분분한 AI 허준? 침놓는 로봇을 발명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임상에서 하루에 수십 병씩 침을 놓을 때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어요. 사실 주사는 간호사가 놓고 약은 약사가 주는 데에 비해서 침은 한의사가 직접 한 땀 한 땀 놓는 거잖아요. 그런데 노력에 비해, 인력에 비해 수가를 인정받지 못하니 AI 허준을 개발해서 침을 대신 놓게 하는 거죠. 물론 아직은 현실성이 많이 떨어지고 부정적인 견해가 많지만 예를 들자면 그래요.


북극곰 : 그러면 AI 허임도 개발할 수 있겠네요?(웃음)


그럼요. 설령 나오지 않더라도 세상이 원하는 한의학의 모습을 갖추는데 내가 분명히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도 모르지만 그 밑에서는 어떤 모습으로도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거잖아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대신 만나드립니다가 만났으면 하는 분이 있다면요?


많은 분이 있지만 다 사이버 친구들이라.(웃음) 송영일 선생님을 추천하고 싶어요. 송영일 선생님은 군 복무 대신 국제협력의사로 우즈베키스탄에서 계셨어요. 저랑 현대중공업 사내 한의원에서 일하시다가 글로벌 협력의사로 다시 3년간 우즈벡 한방병원에 파견되셨고요. 한의학 세계화의 일선에서 일하고 계시니까 그쪽 얘기를 들으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분 이력이 독특한데, 한예종 영화과에 합격까지 하시고 지금은 휴학 상태라고 해요. 영화도 찍으셨거든요. 

Q.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기쁘네요. 우연한 기회에 연결이 되어서 생애 처음으로 인터뷰도 해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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