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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만나드립니다 Nov 15. 2018

[진로인터뷰] 약다방봄동 이상엽 디렉터

한의학의 새로운 봄날을 기다리며

[약력]

-동신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 졸업
-차서신호체계연구소(ChaSeo Rules Institute) 연구원
-(주)카페방하 대표
-약다방봄동 디렉터
-일철학학교 디렉터
+
-디자인 대학 PaTI(Paju Typography Institute) 스승
-동의미학당(東醫美學堂) 원장
-동의생명과학 개발자 콘퍼런스(EMSDC) 의장
-<문화일보> "인문학 건강론" 칼럼니스트
-EBS <2시의 인문학> “사람다움의 자연학” 강연자

                                                                                                    

 화창한 한 여름날, 저희는 홍대에 위치한 약다방봄동에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청춘시대’의 주인공들이 사는 숙소인 벨 에포크의 배경이 된 곳이라 신기한 마음으로 입성했는데요. 그곳에서 (주)카페방하 대표 및 약다방봄동 디렉터를 맡고 계신 이상엽 한의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약다방봄동 말고도 BT(Bio Technology)를 이용한 분야 중 하나인 전자침(전자약 electroceuticals) 개발, 일반인을 위한 한의학 콘텐츠에 바탕을 둔 분야별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셔서 정말 놀랐는데요, 지금 그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학창 시절에서 오늘까지


Q. 대표님께서 하시는 일과 하루 일정을 알려주세요!


A.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일정이 특별히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해외 출장도 잦고, 각종 미팅도 정말 많아요. 다만 매주 수요일 아침에는 약다방봄동본점에서 한의사와 직원 모두 함께 약차 연구와 메뉴판 공부를 하는 기획 회의, 식물학교가 있고, 저녁에는 한의사들과 함께하는 R&D 모임이 있어요. 또 목요일에는 학술 세미나가 있고요.
 요즘은 10월 중순에 롯데백화점 강남점에 저희 카페가 새로운 컨셉으로 들어가게 되어서 관련한 미팅을 계속 가지고 있네요. ‘아이스크림 테라피, 클리니컬 아이스크림 시리즈’라는 새로운 컨셉으로 입점 준비 중이어서 요즘은 계속 처방으로 아이스크림을 개발하는 연구를 주로 진행하고 있어요.
     
Q. 학창시절의 어떤 경험이 지금의 일을 하게 만들었나요?

A. 저희는 한의학 생태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학창시절 때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어느 시절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요즘 사람들을 보면 소비 패턴과 삶의 방식이 과거와 달리 상당히 광범위하게 바뀌고 있어요. 하지만 이용자들의 변화 속도에 비해서 전문가들은 이에 민첩하게 대처하지 못해 많이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처럼 보였고, 저희는 한의학이라는 그 자체로서의 학술적 소프트웨어와 그것을 문화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인 의료 서비스라는 하드웨어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어요. 
 한의계라고 불릴만한 연관 시장의 규모가 너무 작았고, 한의원이나 한방병원 등 이외에 한의학이라는 소프트웨어로 새로 만들어지는 생태계가 부재한 상태에서 이걸 병원에서만 제공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우리가 기성의 서양식 병원이라는 틀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미 짜 놓은 동선에서만 우리 역할을 증명해야 하는 게 화가 나고 억울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예과 1학년 때부터 같은 고민을 하던 사람들을 모아 몸과 한의학이라는 작은 모임을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서로 이 모임을 ‘회사’라고 부르며 한의학에서 한의학다운 소프트웨어만 추출해서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에 제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것이 지금까지도 더 많은 사람과 연구하며 새로운 것들을 생각하고 있지요. 아마 저희가 지금 하는 일들을 모두 다 알게 되면 많은 사람이 정말 놀랄 거로 생각해요.

                                                                           

Q. 어떻게 예과 때 모여서 그런 공부를 할 수 있으셨나요?


A.  저희는 배움에 있어서 내용 자체보다 배움을 나누는 형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잘 가꿔진 배움의 형식 안에서 새로운 학습의 동력원이 생성된다고 봤고 그 형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누가 더 한의학을 먼저 배우고 많이 알아서 가르쳐 주고 하는 스터디 모임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로 동등한 관계에서 어떻게 전에 없던 생산성을 도모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좋은 가치를 습득할 수 있는지, 우리는 왜 정기적으로 만나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등을 결정하고 체계를 만드는 것이 저희가 공유하는 핵심 과제였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한의계만의 독특한 문화권에서 벗어나 다른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에티튜드(attitude)를 배우려고 노력했어요. 모든 직업은 특히 그것이 전문직일수록 개인의 삶에 대한 에티튜드를 특정한 방식으로 제한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희는 이런 틀을 자꾸 확장하고 싶었고, 타 분야와 더 넓은 생태계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서도 우리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변화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거든요. 그래서 학부 때부터 나름대로는 모임 구성원들과 다양한 행사에도 참여하고 그들과 세미나도 하고 관계 확장을 위한 노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약다방봄동 이야기


Q. ‘약다방 봄동이 어떤 곳인지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A. 일단 이름은 한글이었으면 했고 한의학이 고전적인 이미지니까 엔틱하면서도 재미있는 느낌을 주는 이름을 고민하다 약다방 봄동이라고 짓게 되었어요. 봄동은 ‘노지에서 겨울을 보내 속이 들지 못한 배추’라는 사전적 의미도 있지만, 그것이 왠지 오늘날 동양학의 모습 같이 보이기도 하고 해서 동양학의 새로운 봄날’이라는 의미를 담아 봤고, 카페 내 진료소를 사업모델로 삼아 처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약다방 봄동을 찾아오는 연령층은 어떻게 되나요?

예스러움과 세련됨이 공존했던 약다방봄동 내부 @약다방봄동 제공


A. 정말 다양한 세대가 각기 다른 이유로 찾아오고 있어요. 홍대라는 공간적 특성상 젊은 커플들의 이색 데이트 장소로, 또 외국인들도 한국적인 체험을 위해 많이 방문하시죠. 미국 NBC판 ‘꽃보다 할배’ 로케이션 촬영도 예정되어 있었고, 문화체육관광부의 ‘한국의 웰니스 관광 25선’에 저희 카페가 선정되기도 했어요. 외국인들은 저희의 의료서비스를 한국만의 새로운 문화체험의 요소로 보고 이런 것들을 많이 원하는 것 같아요.

약다방봄동에서는 족욕 체험 또한 제공한다 @약다방봄동 제공

                                                        

Q. 카페 바로 밑에 한의원이 있는데 카페와 한의원을 함께 운영하는 데 있어서 장단점이 궁금해요!

A. 장점은 너무 많은데, 환상을 갖진 말아야 해요. 해서 굳이 단점부터 말씀드리자면, 의외로 한의원 경영에 카페 경영은 도움이 되지 않아요. 한의원 하나만 운영했을 때에 비해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두 배가 아니라 거의 열 배 가까이 되기 때문에 수지타산만 생각한다면 오히려 더 손해일 수도 있어요. 고전적인 한의원 진료의 형식을 원한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카페를 같이 운영하는 걸 추천하지 않아요. 진료와의 결합 방식, 카페 공간의 운영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해서 일도 몇 배로 힘들고, 사업장이 일반사업장, 의료사업장 두 개라 관리도 복잡할뿐더러, 카페가 있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특별히 의료의 전문성이나, 친근함을 잘 느끼지도 않습니다. 저희도 현재 매일 진료만 하는 선생님들은 없고 예약을 통해서만 환자를 받고 다른 곳에 비해서는 상담을 훨씬 더 많이 오래 하고, 침, 환, 약차 그리고 다양한 운동 처방을 위주로 진료를 하고 있어요.
   하지만 물론 장점도 너무 많아요. 그냥 단순/평범한 병·의원이 아니라 요즘 전 세계적으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Medical engineering이나 Medical science와 같은 측면에서 도전해보고 새로운 실험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카페는 괜찮은 플랫폼인 것 같아요. 또 제한된 전문직의 삶을 벗어나 다른 업종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그들과 구체적으로 협력하면서 느낄 수 있고요. 단순히 특이한 요식사업을 하나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차린 카페가 아니기 때문에 확실히 삶의 경험 반경이 계속 확장되어 간다는 느낌 하나만큼은 계속 누릴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한 장점이 있나요?


Q. 한의원에 정기적으로 오는 환자분들은 별로 없나요?

A. 어느 정도가 많고 적은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한 가지 확실한 건 소위 장사 잘되는 한의원처럼 매일 환자로 북적이는 한의원을 하고 있진 않아요. 여기서 팁을 조금 드리자면 사실 저희는 기업 진료와 같은 일종의 직능단체별 집단 교육 시스템으로 대부분의 진료와 관련된 수익을 새로 만들어 내고 있어요. 국내뿐만 아니라 사실 해외기업에서도 사내 복지나 인력관리/개발 차원으로 저희에게 요청이 많이 오는데요, 사실 기업 입장에서 병원에 이런 요청을 하는 것은 한국의 제도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카페 모델로서 한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일종의 catering service처럼 제공하기 때문에 이런 사업이 가능해요. 요청이 들어온 기관에 저희가 직접 가서 병원에서만 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의학적 전문 지식을 가지고 상담을 하고 거기에 맞는 운동과 식품을 처방하는 거지요. 보통 한 기관을 찾아가면 저희가 한 번에 100~200명을 보는데 굳이 진료실이 아니라도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수요와 시장을 찾을 수 있어요.
   
Q. 카페를 창업하시게 된 계기와 여러 식품 중에서도 하필 차에 주목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A. 처음에는 굳이 카페를 고집하진 않았어요. 병원 외의 다른 형식에 대한 경우의 수를 많이 생각해 봤었는데, 일반인이 생각하기엔 한의사들이 저런 걸 왜 해? 라고 다소 황당해할 수 있는, 예를 들어 카센터, 보육원 및 유치원, 게스트하우스 등 많은 하드웨어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요. 무엇을 하든 거기에 적당한 공간이 나와 줘야 하는데 그런 리서치를 1년 넘게 계속하다 지금 동교동 이곳을 발견하고 얻은 후 이 공간은 카페가 적당하겠다고 생각해서 카페로 처음 시작하기로 했어요. 더욱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카페 내 진료소를 모델로 시작하기로 한 거지요. 또 카페를 단순히 차를 파는 공간으로만 보기보다는 다양한 프로젝트 및 커뮤니티가 열리는 공간으로 활용하여 이곳이 마을의 작은 학교 기능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인터뷰 중 제공해주셨던 약다방봄동의 메뉴 - 좌측 상단부터 홍시+정(精)주스, 대보(大補) 빙수, 유자+미(美) 요거트 -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

                                                                              

 차에 주목하게 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사용하는 한약재였어요. 과거 한약재 파동 이후 지금은 국가에서 GNP 하에 한약재의 관리와 보급이 이뤄지게 되었는데, 취지와 방향은 맞지만, 여기에 대한 충분한 준비 기간 없이 급하게 진행되다 보니 저희가 볼 때는 병·의원에서 공급받을 수 있는 한약재의 질이 하향 평준화가 되었어요. 아무리 질이 좋은 약재라도 국가관리 시스템 내에서 인증받은 도매업자들에게 받은 것이 아니면 그것을 병·의원용으로 사용하게 되면 현행법상 불법인 거에요.
 하지만 식품업자가 가령 산에서 채취한 귀한 자연산 도라지를 가지고 식품으로써 사용하면 그것이 의서에 등장하는 처방이더라도 식품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합법이에요. 전체 한약재 중 약 60~70%가 전면 또는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식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일반음식점인 카페에서는 굳이 한약재 도매상을 통하지 않더라도 저희가 사용하고 싶은 약재를 식자재처럼 편하게 사용할 수 있어요. 어떤 농장과 저희가 직접 거래할 수도 있고, 한의원에서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 산삼이라든지, 수령이 30년 된 자연산 황기 등도 구해지기만 한다면 쓰고 싶으면 쓸 수 있는 거예요.
 이렇게 식품으로서의 한약재의 본래 가능성을 다양하게 실험해보고 싶었어요. 동의보감 탕액편에만 봐도 漁部에 보면 다양한 물고기도 처방으로 쓰고, 獸部에 보면 노루고기 등 별의별 肉類도 처방으로 다 등장하잖아요. 한의원에서는 이런 걸 못하죠. 하지만 음식점이라면 전문적인 식견과 탐험 정신을 가지고 얼마든지 새로운 시도들을 자유롭게 해 볼 수 있어요.

  또 하나는 기존 방식에 대해 저희가 문제의식이 많았어요. <內經>에 보면 ‘湯液醪醴’라는 편이 있는데 여기 제형 중 차와 같이 물에 가볍게 침출해서 먹는 제형을 ‘液劑’라고 하는데요, 탕제는 우려낸 밀도나 농도가 상당히 높아 하루에 복용할 양이 제한되어 있지만, 저희의 차 형태는 기능성 물을 마시듯 훨씬 편하게, 그리고 식품으로만 처방 구성이 되어 있어서 양에 제한이 없이 많이 섭취할수록 다다익선이에요. 우리가 이온 음료를 스포츠음료라고 인식하듯이, 약차도 음료 시장에서 하나의 고유한 장르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또 제대로 수치법을 지킨다면 약재를 오랫동안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너무 좋았고, 보통 한 재라고 하면 한 상자씩 한약을 지어가는 기존의 서비스 동선을 바꿔서 작고 가벼운 티백으로 약 한재를 처방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죠. 
   
Q. 차가 치료제로 기능할 수 있나요?

A. 탕제와 액제는 그 약성이 작용하는 기전이 달라요. 탕제가 필요한 활성 물질을 직접 체내에 투여하는 작용기전에 가깝다면, 액제는 특정한 활성 물질을 형성하는 신체 메커니즘을 조성하는 간접적 방식을 가지고 있어요. 따라서 처방을 구성할 때 제형에 따라 그 접근법도 달라지는데요, 현대인들에게 앞으로 어떤 방식이 좀 더 적합하고 효과적일지는 계속 고민해봐야 할 문제지요. 저희는, 한약은 갈수록 약이 아니라 식품이어야 한다는 관점에 좀 더 많은 무게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Q. 약다방 봄동의 디자인과 브랜딩이 정말 특이한 것 같아요. 처음 시작하실 때 어떤 점을 고려하셨나요?

A. 디자인이나 브랜딩에 있어서 가장 많이 고려했던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최대한 기성의 한의학적 이미지를 걷어내자였어요. 소위 ‘한방차’라는 이미지에 갇혀 버리면, 저희는 이것이 소비재로서의 미래 가능성은 무조건 실패한다고 생각했어요. 저희는 기존 한의학이 갖고 있던 낡은 의료적 이미지를 최대한 벗겨내고 싶었어요. 세계적으로 보면, 갈수록 더욱 전문화된 자연주의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기술적으로는 그것의 최전선에 있는 한의학이 문화적 주류에서는 갈수록 멀어지고 있잖아요.

 해서 제도적인 의료기관을 지칭하는 한의학이 아니라, 문화적/학술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생긴 의료를 지칭하는 동의학을 하나의 개념으로 잡고, 이것을 접한 사람들에게(는) 고급스럽다가 아니라 뭔가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요. 

약다방봄동의 약차 패키지 @약다방봄동 제공

                                                                            

  디자인 관련 작업은 운이 좋게 국내에서 디자인을 제일 잘하는 여러 분야의 분들과 친분이 있었어요.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PaTI(Paju Typography Institute)라는 디자인 학교에서 저희가 매년 전공 학생들에게 한의학 관점으로 인체에 관한 디자인 교육을 하는데, 거기에서 인연이 된 많은 디자이너분과 로고부터 패키지 디자인, 인테리어까지 협업을 해와서 지금의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네요.    



인터뷰를 마치며

                                                                             

 Q. 인생 그래프를 그렸을 때 뿌듯했던 순간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다면?

A. 사실 전 인생을 아직 그렇게 길게 산 것도 아니고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도 아니라 Up&Down이 크지 않아요. 그래도 지금 여기서 인터뷰를 하다 보니 기억나는 뿌듯했던 순간은, 이곳 카페 공간을 처음 만들었던 때에요. 그전까지는 동료들과 줄곧 학술적인 세미나만 하다가 처음으로 여기에서 사회적인 행위를 시작했기 때문에 감회가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이곳은 원래 가정집이었기 때문에 저희가 공사를 시작할 때 철거부터 직접 진행했어요. 그때 처음 벽지 붙이기 전에 저희가 공부했던 책을 찢어서 벽지 안에 발랐거든요. 우리의 간절한 기운과 염원을 담아서 여자분들은 책을 한 장씩 찢고 남자분들은 페이지에 풀칠해서 벽에 붙이고 있었어요. (웃음)
비관적인 것은 잘 생각이 안 나는데 왜냐하면 제가 동료들의 비관을 이건 비관이 아니다라는 설득 작업을 주로 하는 역할이거든요. 사업을 하다보면 정말 끊임없이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생기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주로 이건 전화위복의 기회다’, ‘이건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얘기를 지금도 많이 해요.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하다 보니까 아직 저 스스로 ‘그만두고 싶다’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굳이 혼자 작게 실망을 했던 기억을 한 가지 꼽자면 작년에 한의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저희 모임을 소개도 하고 미래 한의학적 소프트웨어 개발자 육성을 하고 싶어 강연을 하러 갔었는데 follow-up이 잘 안 되었던 일이 생각나네요. 그래서 그 연장 선상으로 내년 안에 전국의 한의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동의생명과학 개발자 콘퍼런스를 계획하고 있어요.

Q. 한의대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A. 대체 사람이 건강하다는 것뭔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볼 때 진짜 한의학의 매력은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건강을 만들어내는 학문이라는 데에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의학을 공부한다는 이유로 여전히 너무 질병에만 매달리고 관심이 있는 건 아닐까요?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건강이에요.

지금 현대 병리학 사전에 등재된 질병 종류만 하더라도 아마 수만 가지가 넘을 텐데, 건강은 그보다도 더 크고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알고 있는 건강 개념은 너무 빈약하고 초라하죠. 그냥 아프다는 사람 안 아프게 해주면 되는 거 아니야? 이 정도로만 수백 년도 넘게 건강 개념을 방치하고 있는 것 같아요. WHO(세계보건기구)에서도 건강을 신체적, 정신적, 영적 안녕에 이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역량까지 포함하여 정의하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는 이러한 실제적인 건강개념을 적극적으로 설계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한의학이라는 소프트웨어에 맞는 하드웨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 지점에 미래 한의학 연구자들의 엄청난 블루오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대표님이 하시는 일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요?

A. 전 세계 학자들이 이야기하기를, 20세는 물리학의 시대였다, 그 흐름이 지금의 IT의 시대를 만들었고, 바야흐로 21세기는 생물학, BT(Bio-technology)의 시대일 것이라고 해요. 수 세기에 걸쳐 엄청난 발전을 거듭한 물리학과 달리, 생물학에서는 아직 수학적 법칙성이라든지 물리적 정밀함이 없기 때문에 현재는 다소 초보적 단계의 BT 분야이지만, 머지않아 저희는 BT 분야를 매개로 해서 기존의 산업 생태계 규모 전체를 능가하는 완전히 새로운 산업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의학의 사유체계로 새로운 BT 분야의 언어체계를 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가 코딩이 중요해지니까 기계어를 외국어 배우듯이 배우잖아요. 마찬가지로 생체신호를 코딩하고 프로그래밍하기 위한 언어체계가 저는 어떤 표준이 확립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미래가 도달했을 때, 그 언어의 설계에 관해 저희가 경쟁력을 가진 많은 학술 분야나 문화 사업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우리가 핵심적 원천기술, originality를 가지고 전 세계를 호령하는 걸 꿈꾸고 있어요.         

                                                                                                                

Q. 다음에 저희가 만나봤으면 하는 분이 있으신가요?

A. 친한 동생 중에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입사한 강성진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혹시 WELT라는 회사를 아시나요? 매년 베를린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가전박람회인 IFA 2018에도 올가을 참가했었는데, 벨트 가운데 버클에 센서가 있는 웨어러블 헬스 기기를 만드는 회사의 창업자이자 대표인데요, 아주 능력 있고 열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젊은 의료인이라서, 한의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여러분도 만나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저의 친한 친구인데, 서울대 의대를 졸업 후 동 대학원 인류학과 석사를 따고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최근에 의료인류학으로 박사를 딴 박영수 님도 추천합니다. 의료 인류학자시죠(medical anthropologist). 각국의 보건 의료계 종사자들의 생태계에서 오늘날 의료행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전하는지를 인류학적으로 연구하고 계시는데, 이러한 분야도 여러분들이 알아간다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한의대생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 인터뷰 요청에 응해주신 이상엽 디렉터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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